박상대

생물학자, 교수, 학술인, 과학기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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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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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 교수, 학술인, 과학기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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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대 교수는 한국 분자세포생물학의 토대를 다진 선구자이자 세계적인 DNA 손상 회복 연구의 권위자입니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고, 한국분자생물학회와 학술지 'Molecules and Cells'를 창간하며 한국 생명과학의 세계화를 이끌었습니다. 과학기술 정책과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에도 헌신하여 한국 과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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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박상대 교수 출생]

대한민국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나 분자세포생물학 분야의 거목으로 성장할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1937년 8월 20일, 경상남도 김해에서 박상대 교수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훗날 한국 분자세포생물학의 선구자로 인정받으며 국내외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960

[서울대학교 학사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동물학과를 졸업하며 생물학 연구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1956년부터 1960년까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동물학과에서 학업을 마치고 학사 학위를 취득하여 전문 연구자로서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선천성이상질환 및 암세포 연구 최초 보고]

국내 최초로 선천성이상질환에서 이질염색질 및 염색체 이상과 DNA 합성 이상을 보고하고, 암세포 염색체의 방사선 감수성과 DNA 합성 양상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1960년대, 박상대 교수는 국내 최초로 선천성이상질환에서 이질염색질 및 염색체의 이상과 DNA 합성 이상을 보고했으며, 암세포 염색체의 방사선 감수성과 DNA 합성 양상에 대한 중요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주목받았습니다.

1962

[서울대학교 석사 학위 취득]

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물학과에서 이학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문적 깊이를 더했습니다.

1960년부터 1962년까지 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물학과에서 이학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심도 깊은 생물학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1967

[서울대학교 교수 임용]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로 임용되어 한국 생명과학 교육 및 연구의 한 축을 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1967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로 임용된 박상대 교수는 이후 2002년까지 서울대 동물학과, 분자생물학과, 생명과학부 교수를 역임하며 한국 생명과학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74

[이학박사 학위 취득]

미국 세인트존스대학 생물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국제적인 학술 역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970년부터 1974년까지 미국 세인트존스대학 생물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DNA 상해유도 복제 및 회복의 상관성 연구 등 국제적인 수준의 연구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UCSF 박사후 연구원 활동]

미국 UCSF 생명과학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 및 객원교수로 활동하며 DNA 상해유도 복제 및 회복의 상관성을 심도 있게 연구했습니다.

1974년부터 1976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SF) 생명과학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 및 객원교수로 재직하며 DNA 상해유도 복제 및 회복의 상관성을 연구, 이 분야의 세계적 선두주자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1975

[유전자재조합 기술 국내 도입 및 윤리 논의 선도]

언론을 통해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고, 실험실 안전 및 연구윤리에 대한 선구적인 논의를 제시하여 사회적 인식을 높였습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박상대 교수는 언론을 통해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국내에 적극적으로 소개했으며, 실험실 안전 및 연구윤리 등 시대를 앞선 논의들을 제시하여 생명과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80

[국내 유전공학 붐 주도 및 정책 설계]

유전공학 심포지엄 및 한국유전공학학술협의회 등을 통해 국내 유전공학 붐을 주도하고, 교육부 유전공학 심사평가 위원장을 역임하며 한국 유전공학 연구 지원의 설계자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 박상대 교수는 유전공학 심포지엄, 한국유전공학학술협의회 등을 통해 국내 유전공학 붐을 불러일으킨 주역으로 활동했습니다. 또한 교육부 유전공학 심사평가 위원장을 역임하여 한국 유전공학 연구 지원의 설계자 역할을 담당하는 등 국내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85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초대 소장]

서울대학교 유전공학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아 서울대의 유전공학 연구를 이끌었습니다.

1985년 박상대 교수는 서울대학교 유전공학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아 서울대학교의 유전공학 연구를 체계적으로 이끌며 이 분야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DNA 손상 회복 유전자 연구 선도]

20여 종의 DNA 복제 및 회복 관련 유전자를 분리하고 특성을 밝혔으며, 특히 재조합 회복 관련 유전자 Rhp51+의 구조와 발현 조절 기전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는 등 DNA 손상 회복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선두주자로 활약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박상대 교수는 20여 종의 DNA 복제 및 회복 관련 유전자를 분리하여 그 특성을 밝혔으며, 특히 재조합 회복 관련 유전자 Rhp51+의 구조와 발현 조절 기전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는 등 유전체 불안정성으로 인한 암 유발 기전의 분자생물학적 기초연구에 주력하며 이 분야의 세계적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87

[제1회 한국과학상 수상]

제1회 한국과학상 생명과학 분야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그의 탁월한 과학적 업적을 인정받았습니다.

1987년 제1회 한국과학상 생명과학 분야 대통령상을 수상함으로써, 박상대 교수의 혁혁한 과학적 업적과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기여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89

[한국분자생물학회 최초 설립]

의약학과 농수산학, 이학 분야를 아우르는 한국분자생물학회를 최초로 설립하여 한국 분자생물학 연구의 질적 도약을 꾀했습니다.

1989년 박상대 교수는 의약학, 농수산학, 이학 분야를 아우르는 한국분자생물학회를 최초로 설립하여 한국 분자생물학 연구의 질적 도약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현재 이 학회는 외국 회원을 포함하여 15,000명이 활동하는 국제 연구교류의 장으로 성장했습니다.

['Molecules and Cells' 창간]

우리나라 생명과학 분야 최초의 SCI 등재 학술지인 'Molecules and Cells'를 창간하고 초대 편집장을 역임하며 한국 생명과학 연구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박상대 교수는 1989년 한국 생명과학 분야 최초의 SCI 등재 학술지인 'Molecules and Cells'를 창간하고 초대 편집장을 역임하며 국내 생명과학 연구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98

[대한민국 학술원상 수상]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수상하며 그의 학문적 성과와 공로를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1998년 박상대 교수는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수상하여 국내 최고 권위의 학술상 중 하나를 받으며 그의 뛰어난 학문적 업적과 교육적 공헌을 널리 인정받았습니다.

2000

[세포신호 및 이질염색질 연구 추진]

세포 신호에 따른 유도 발현 유전자의 조절 기전, 그리고 여러 생명 현상의 플랫폼 역할을 담당하는 이질 염색질의 유전자 발현과 제어(silencing)의 상호 연관성을 규명하는 연구를 추진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박상대 교수는 세포 신호에 따른 유도 발현 유전자의 조절 기전, 그리고 여러 생명 현상의 플랫폼 역할을 담당하는 이질 염색질의 유전자 발현과 제어(silencing)의 상호 연관성을 규명하는 작업을 추진하며 연구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2002

[서울대학교 교수 퇴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직에서 퇴임하며 35년간의 교육 및 연구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1967년부터 시작된 서울대학교에서의 교육 및 연구 활동을 2002년에 마무리하고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직에서 퇴임했습니다.

[국민훈장 녹조근정훈장 수훈]

국민훈장 녹조근정훈장을 수훈하며 국가와 사회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2002년 박상대 교수는 국민훈장 녹조근정훈장을 수훈하여 그의 탁월한 학문적 업적과 국가 발전에 대한 헌신적인 기여를 인정받았습니다.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선임]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임되어 부회장과 명예회원을 역임하며 한국 학술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했습니다.

2002년부터 박상대 교수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이후 부회장, 명예회원직을 역임하며 학술계의 중요한 리더로서 꾸준히 활약했습니다.

[국제백신연구소(IVI) 지원 활동]

국내 최초의 UN 지원기관인 국제백신연구소(IVI) 유치 과정과 출범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으며, 이후 한국후원회 회장, 고문, 수석고문으로 활동하며 연구소의 안정적 성장을 뒷받침했습니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박상대 교수는 국내 최초의 UN 지원기관인 국제백신연구소(IVI) 유치 과정과 출범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습니다. 이후 한국후원회 회장, 고문, 수석고문직을 맡아 연구소의 안정적 성장과 국제적 위상 제고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003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 역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국가 기초과학기술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연구 환경 개선에 힘썼습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박상대 교수는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국가의 기초과학기술 연구 정책 개발과 추진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07

[한국과학기술원한림원상 수상]

한국과학기술원한림원상을 수상하며 그의 지속적인 학술적 기여를 인정받았습니다.

2007년 박상대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원한림원상을 수상하여 그의 꾸준한 연구 활동과 학술적 성과에 대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1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역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회장을 역임하며 과학기술인의 권익 신장과 과학기술 정책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박상대 교수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회장을 역임하며 과학기술 전담 정부조직 부활과 과총 지역연합회 활성화 등 과학기술인의 권익 신장과 과학기술 정책 개발 및 추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2014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수훈]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수훈하며 그의 과학기술계에 대한 공헌을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2014년 박상대 교수는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수훈하여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국가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2016

['여성생명과학자상' 국내 최초 제정]

사재를 출연하여 국내 최초로 '여성생명과학자상'을 제정하여 여성 과학기술인의 사기 진작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는 미래 세대 양성과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과 헌신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2016년 박상대 교수는 사재를 출연하여 국내 최초로 '여성생명과학자상'을 제정했습니다. 이 상은 여성 과학기술인의 사기 진작에 크게 기여했으며, 그의 미래 세대 양성과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에 대한 각별한 노력을 상징합니다.

2022

[대한민국 국가과학기술유공자 선정]

대한민국 국가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되어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그의 지대한 공헌을 국가적으로 기렸습니다.

2022년 박상대 교수는 대한민국 국가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되어, 한국 분자생물학의 1세대 대표 연구자로서 오늘날 한국 생명과학이 있게 한 그의 선구적 업적을 국가적으로 기리고 예우했습니다.

2024

[박상대 교수 작고 및 안장]

향년 86세로 작고하여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그의 빛나는 업적과 유산은 한국 과학기술계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2024년 4월 20일, 박상대 교수가 향년 86세로 작고했습니다. 그의 업적을 기려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한국 분자세포생물학의 선구자로서 남긴 발자취는 후대에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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