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희
생명공학자, 기업인, 정책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4:25
한문희는 한국 생명공학 및 생명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스티튜션 빌더입니다. 그는 생명공학 관련 법 제정, 연구소 설립을 통해 연구 기반을 구축했으며, 바이오벤처를 이끌며 산업 발전을 선도했습니다. 한국 생명공학을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이끈 '한국 생명공학의 대부'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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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
1934년 12월 25일 일제강점기 경성부에서 태어났다.
1957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학 이학사를 취득했다.
1959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물학 이학석사를 취득했다.
1964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 대학원 생물학 이학박사를 취득했다.
1970
[생명과학 연구성과 창출 및 기술 확산 기여]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효소공학, 응용미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130여 편의 학술논문과 50여 편의 국내외 특허를 발표하며 생명과학 연구개발 및 기술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기초연구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효소공학, 응용미생물학 및 생명공학 분야에서 130여 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고, '리파마이신 유도체의 생물학적 공정' 등 국내외 특허 50여 편을 획득했다. 또한 '산업사회의 발전과 생명과학의 역할' 등 90여 편의 기술동향 총설논문 또는 정책기고문을 발표하며 생명과학 연구개발 육성을 위한 정책 도출과 기술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1974
[KIST 응용생화학연구실장 및 유전공학센터장 역임]
KIST에서 응용생화학연구실 실장과 유전공학센터 센터장을 맡아 한국 생명공학 연구의 초석을 다졌다. 이 시기에 이성화당 생산 효소공정 개발 및 항결핵제 국산화에 기여했다.
1974년부터 1985년까지 KIST 응용생화학연구실 실장과 유전공학센터 센터장을 역임했다. KIST에 유치과학자로 초청되어 원당 수입대체 문제 해결을 위해 이성화당(인조꿀) 생산 효소공정을 개발하여 산업화를 촉진했으며, 항결핵제(리파암피신) 국산화를 위해 리파마이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국내 바이오벤처기업 1호인 유한화학(주) 창업에 성공했다.
1981
[생명공학 정책 보고서 작성]
생명과학기술 분야의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작성, 국내 생명공학 분야가 정부 주요 정책 의제로 포함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는 유전공학육성법 제정 및 유전공학센터 설립으로 이어졌다.
생명산업 분야가 전통 기술에 치우쳐 있다고 판단하여 "생명과학과 생물공업기술의 육성을 위한 연구개발계획수립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1981년에 작성했다. 이 보고서에 따라 생명공학 분야 최초 연구비가 책정되었으며, 정부의 주요 정책 의제에 포함되었다. 그 결과 유전공학육성법(현 생명공학육성법) 제정 및 유전공학센터(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설립이 이루어졌다.
1985
1985년부터 1990년까지 KIST 부설 유전공학센터(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소장을 역임했다.
1985년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1989
1989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1992
[STEPI 연구기획관리단 전문위원 및 단장 역임]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연구기획관리단 전문위원 및 단장을 맡아 국가 과학기술 정책 수립에 기여했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STEPI 연구기획관리단 전문위원/단장을 역임했다.
1997
1997년에 대한민국 과학기술상 과학상을 수상했다.
2000
2000년부터 2012년까지 프로테오젠(주)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008
[한국바이오협회 명예회장 취임]
한국바이오벤처협회(현 한국바이오협회)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어 한국 바이오 산업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한국바이오벤처협회(현 한국바이오협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