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휘
의학자, 전염병 임상학자, 의사, 교육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4:20
대한민국의 선구적인 전염병 임상학자이자 교육자.
* 국내 최초로 열대열 말라리아를 발견하며 전염병 연구의 기틀을 마련.
* 한국전쟁 당시 방역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전염병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음.
*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인제대학교 등에서 46년간 의학교육에 헌신하고 인제의과대학 초대학장 역임.
* 의학개론을 국내 의과대학 최초로 신설하는 등 한국 의학교육 현대화에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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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
[전염병 임상학자 전종휘, 함경북도 성진군에서 태어나다]
함경북도 성진군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백인제, 장기려 등 스승과 선배들과 학문적 교류를 이어갔다.
전종휘는 1913년 함경북도 성진군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며, 이곳에서 스승 백인제와 선배 장기려를 만나 학문뿐 아니라 종교와 생활철학도 공유하며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1935
[경성의학전문학교 졸업 및 전염병 전문병원 근무 시작]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전염병 전문병원인 경성부립순화병원의 부수보로 근무하며 임상 경험을 쌓았다.
전종휘는 1935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전염병 전문병원인 경성부립순화병원의 부수보(副手補)로 근무했는데, 당시 경성은 전염병 환자가 해마다 약 2천여 명 발생하던 도시였다.
1936
[국내 최초 열대열 말라리아 발견 및 임상 사례 연구 발표]
경성부립순화병원 근무 중 일본뇌염 및 열대열 말라리아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 사례 연구 4편을 일본 학술지에 발표했다. 특히 열대열 말라리아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것으로, 한국 전염병 연구의 선구적인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경성부립순화병원에 근무하면서 일본뇌염 및 열대열 말라리아로 입원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4편의 임상 사례연구를 일본 학술지에 발표했다. 이중 열대열 말라리아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었으며, 이는 우리나라 전염병 연구에 중요한 기틀을 다진 선구적인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1937
[경성제국대학 부수 및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조교수 재직]
경성제국대학 부수(1937~1942년) 및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조교수(1940~1942년)로 재직하며 학문적 경력을 이어갔다.
전종휘는 1937년부터 1942년까지 경성제국대학 부수(副手)로 근무했으며, 1940년부터 1942년까지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조교수로도 재직하며 교육과 연구 활동을 병행했다.
1945
[경성제국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 취득]
경성제국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는 그의 의학자로서의 학문적 깊이를 확립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전종휘는 1945년 경성제국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의학자로서의 학문적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1946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재직 시작]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1964년까지 재직하며 교육 활동에 전념했다. 이 시기 한국 의학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4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1964년까지 약 18년간 재직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한국의 의학 교육과 연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50
[한국전쟁 중 전염병 방역 활동 주도 및 최고 권위자 인정]
한국전쟁 중 보건부의 방역보건위원, 육해공 3군의 방역자문교수, 서울시와 부산시의 방역위원, 육군출혈열연구반 위원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전염병 방역 및 치료에 헌신했다. 그는 학문 연구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장에서 전염병 퇴치에 앞장서 자타공인 최고의 권위자가 되었다.
전종휘 교수는 한국전쟁 중에는 보건부의 방역보건위원, 육해공 3군의 방역자문교수, 서울시와 부산시의 방역위원, 육군출혈열연구반 위원 등 전염병과 관련하여 다방면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전염병을 학문으로만 연구한 것에 그치지 않고, 전염병이 유행하는 현장에 직접 참여하여 방역과 치료는 물론 그 원인을 밝히며 자타공인 전염병의 최고 권위자가 되었다.
1964
[대한감염학회 회장 및 가톨릭대학교 교수 겸 성모병원 원장 역임]
대한감염학회 회장으로 취임하고 (1977년까지)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1978년까지) 부속 성모병원 원장을 역임하며 한국 의학계의 리더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1964년부터 1977년까지 대한감염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같은 해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1978년까지 재직했고, 이 기간 동안 부속 성모병원 원장직도 수행하며 한국 의학계의 중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1966
1966년 삼일문화학술상을 수상했다.
1970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1975
1975년부터 1980년까지 대한면역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면역학 분야의 발전에 기여했다.
1977
1977년 대통령 표창장을 수상했다.
1979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초대학장 부임 및 '의학개론' 국내 최초 신설]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초대학장으로 부임하여 (1993년까지) 의학교육의 기틀을 다지고, 국내 의과대학 최초로 의료인문학 교육에 해당하는 '의학개론'을 신설하는 등 한국 의학교육의 현대적 기반 마련에 헌신했다.
정년퇴직 후 1979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초대학장으로 부임해 1993년까지 재직하며 의학교육의 기틀을 다졌다. 특히, 오늘날 의료인문학 교육에 해당하는 의학개론을 국내 의과대학 최초로 신설하기도 하는 등 한국 의학교육의 현대적 기반 마련에 헌신했다.
1993
[일선에서 물러나 회고록 저술 및 고문의사 활동]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직에서 물러나 회고록 저술과 축령복음병원 등에서 고문의사로 활동하며 여생을 보냈다.
1993년 일선에서 물러나 회고록 저술과 축령복음병원 등에서 고문의사로도 활동하며 사회에 기여했다.
1999
[전염병 연구 공로 인정, 성곡학술문화상 자연과학 부문 수상]
일생을 전염병 연구와 의학교육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성곡학술문화상 자연과학 부문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일생을 전염병 연구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성곡학술문화상 자연과학 부문을 수상했다.
2007
[대한민국의 전염병 임상학자 전종휘 사망]
향년 94세로 사망했다. 그는 평생을 한국 의학 발전과 전염병 퇴치를 위해 헌신한 인물로 기억된다.
2007년 향년 94세로 사망했다.
2010
[한국 의학 발전 공로로 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선정]
한국 의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의학회가 헌정한 '명예의 전당'에 사후 선정되었다. 이는 그의 업적이 한국 의학사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임을 의미한다.
2010년에는 한국 의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의학회가 헌정한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