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기업가, 공학자, 제약인, 바이오 경영인, 사회 공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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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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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공학자, 제약인, 바이오 경영인, 사회 공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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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기업가이자 공학자로, GC녹십자 회장을 역임하며 필수의약품 국산화를 주도했습니다. B형 간염 백신, 수두 백신 등 세계적 수준의 백신 개발에 성공하며 국민 보건 증진과 국가 보건 안보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와 한국혈우재단 설립으로 사회 환원을 실천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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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허영섭 출생]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의 기업가이자 공학자로 성장했습니다.

1941년 10월 9일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났습니다.

1960

[경기고등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며 학업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1960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64

[서울대학교 공학사 취득]

서울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여 공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64년 서울대학교 공학사(금속공학)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졸업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1968

[아헨 공과대학교 디플로마 취득]

독일 아헨 공과대학교에서 금속공학 디플로마를 취득하며 전문성을 강화했습니다.

1968년 독일 아헨 공과대학교 금속공학과에서 디플로마(금속공학)를 취득했습니다.

1970

[GC녹십자 입사 및 박사과정 수료]

독일 아헨 공과대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귀국하여 극동제약(현 GC녹십자)에 입사, 공무부장 등을 거쳐 경영에 참여했습니다.

1970년 독일 아헨 공과대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병역을 마치기 위해 급히 귀국한 뒤 선친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던 극동제약(이듬해 녹십자로 상호 변경, 현재의 GC녹십자)에 입사했습니다. 이후 공무부장, 관리부장, 기획실장을 거쳐 총무담당 상무, 전무이사를 역임하며 회사 경영에 깊이 관여하게 됩니다.

1980

[GC녹십자 대표이사 사장 취임]

GC녹십자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여 회사를 이끌기 시작했으며, 2009년까지 회장직을 역임했습니다.

1980년 GC녹십자의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여 2009년까지 사장 및 회장직을 수행하며 회사의 성장을 주도했습니다.

1983

[B형 간염 백신 '헤파박스' 개발]

12년간의 연구 끝에 B형 간염 백신 <헤파박스>를 개발하여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국내 B형 간염 보균율을 크게 낮추는 데 기여했습니다.

당시 많은 제약회사가 해외 약품을 복제 판매하는 데 주력했지만, 그는 '만들기는 힘들지만 반드시 필요한 필수의약품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1983년 12년간의 연구 끝에 B형 간염 백신인 <헤파박스>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된 것으로, <헤파박스>로 인해 연간 매출이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B형 간염 환자들은 수입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저렴한 값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한국의 B형 간염 보균율은 13%에서 선진국 수준(2~3%)으로 떨어졌습니다.

1984

[목암생명공학연구소 설립 및 은탑산업훈장 수훈]

B형 간염 백신으로 얻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대한민국 과학기술처가 승인한 제1호 순수 민간연구법인인 목암생명공학연구소(현 목암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은탑산업훈장을 받았습니다.

B형 간염 백신으로 거둔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의미에서 1984년 목암생명공학연구소(현재의 목암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이 연구소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처의 승인을 받아 설립된 제1호 순수 민간연구법인으로, 유전공학 등 첨단 생명기술을 활용해 각종 질병의 예방과 진단 및 치료방법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같은 해 은탑산업훈장을 수훈했습니다.

1987

[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 이사장 취임]

1994년까지 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 이사장을 역임하며 유전공학 분야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987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 이사장을 역임했습니다.

1988

[유행성 출혈열 백신 '한타박스' 개발]

유행성 출혈열 백신 <한타박스>를 개발하여 국민 보건 증진에 기여했습니다.

1988년 유행성 출혈열 백신 <한타박스>를 개발했습니다.

1990

[한국혈우재단 설립]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는 혈우병 환자들을 위해 한국혈우재단을 설립하여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과 혈우병 예방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90년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는 혈우병 환자들을 위해 한국혈우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이 재단은 혈우병 환자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관절수술과 재활치료를 활성화시키고,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시킴으로써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응고인자, 간염,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등에 대한 정기 무료 검사, 보인자 검사를 통해 혈우병 예방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91

[한국생물산업협회 초대 이사장 취임]

1997년까지 한국생물산업협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며 국내 생물산업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991년부터 1997년까지 한국생물산업협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습니다.

1992

[모란장 수훈]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모란장을 수훈하며 국가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모란장을 수훈했습니다.

1993

[수두 백신 개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두 백신 개발에 성공하여 다시 한번 필수의약품 국산화 및 국민 보건에 기여했습니다.

1993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두 백신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또한 플라즈마네이트, 알부민 등 수입에 의존하던 필수 의약품을 국산화했으며, 고부가가치 의약품인 혈전 용해제 <유로키나제>를 개발하여 해외 수출도 본격화했습니다.

1997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취임]

1999년까지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국내 제약 및 바이오 산업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2000

[인도네시아 정부상 수상]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사트리아 바크티 수하다 카르티카상을 수상했습니다.

2000년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사트리아 바크티 수하다 카르티카상을 수상했습니다.

2001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취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으로 취임하여 국내 경제계에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2001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2002

[아헨 공대 명예 세너터 위촉]

모교인 독일 아헨 공과대학교의 명예 세너터로 위촉되었습니다.

2002년 독일 아헨 공과대학교의 명예 세너터로 위촉되었습니다.

2003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 취임]

제4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여 산업 기술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2003년 제4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2007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 취임]

제3대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으로 취임하며 한국과 독일 간의 경제 협력 증진에 힘썼습니다.

2007년 5월 제3대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2009

[계절독감백신 자체 생산 및 과학기술훈장 수훈]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계절독감백신을 자체 기술력으로 생산·공급하여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백신을 개발했으며, 국가 보건안보를 지켰습니다. 또한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수훈했습니다.

2009년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계절독감백신을 자체 기술력으로 생산·공급했습니다. 인플루엔자 범유행으로 전세계가 패닉 상태에 빠졌을 당시,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백신을 개발하고 적시에 공급하여 인플루엔자 진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세계적인 백신 공급 부족으로 국제 백신 가격이 치솟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우선 공급 원칙을 지켜 국가 보건안보를 지켰습니다. 같은 해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수훈했습니다.

[허영섭 타계 및 유산 기부]

향년 68세로 타계했으며, 자신의 주식과 유산의 3분의 2를 장학재단과 연구재단에 기부하며 사회에 대한 마지막 기여를 했습니다.

2009년 11월 15일 68세로 타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식과 유산의 3분의 2를 장학재단과 연구재단에 기부하며 생명과학 발전과 인재 양성을 위한 마지막 사회 환원을 실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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