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섭 (약학자)

약학자, 생화학자,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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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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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약학계의 거목, 이상섭 교수는 미생물을 활용한 스테로이드 호르몬 생산이라는 혁신적인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 연구로 진통제 개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학장으로서 산학협력과 교육 시스템을 고도화하며 한국 약학의 미래를 설계했습니다. 그의 업적은 수많은 후학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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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이상섭 박사 출생]

대한민국의 저명한 약학자이자 생화학자인 이상섭이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태어났습니다.

1931년 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이상섭이 태어났습니다.

1954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학사 학위 취득]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약학 연구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1950년부터 1954년까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서 학사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55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생활 시작]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서 조교로 임용되어 후학 양성과 연구에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1955년부터 1996년까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서 조교, 전임강사,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과 연구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56

[서울대학교 대학원 약학석사 학위 취득]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생화학 분야의 약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전문성을 심화했습니다.

1954년부터 1956년까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생화학 분야의 약학 석사 과정을 이수하고 학위를 받았습니다.

1966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박사학위 취득 및 스테로이드 연구 개시]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미생물에 의한 스테로이드 분해 과정을 규명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국제적인 연구자로 발돋움했습니다. 이후 미생물의 효소반응을 이용한 유용한 유기화합물 생물변형 메커니즘 연구를 활발히 추진했습니다.

1962년부터 1966년까지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약학박사(생화학)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특히 미생물에 의한 스테로이드의 분해과정을 규명한 논문으로 인정받았으며, 이후 미생물의 효소반응을 이용한 유기화합물의 생물변형(biotransformation) 메커니즘을 밝히는 연구를 추진했습니다.

1968

[경구용 스테로이드 피임제 및 임신 진단약 개발]

동아제약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미생물 전환반응과 유기화학반응을 이용한 경구용 스테로이드 피임제 '피고로'와 임신 진단약 '프레그나'를 개발하고 국내 발명 특허를 출원하며 실용적인 연구 성과를 창출했습니다.

1968년 동아제약의 연구비 지원으로 미생물 전환반응과 유기화학반응을 이용해 경구용 스테로이드 피임제 <피고로>와 임신 진단약 <프레그나>를 개발하고 국내 발명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1969

[프로스타글란딘류 전합성 연구 착수]

1960년대 말부터 국소 호르몬인 프로스타글란딘류의 전합성 연구에 착수하여 곰팡이와 효모균을 활용한 새로운 합성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1960년대 말부터 국소 호르몬으로서 통증, 발열, 관절염 같은 염증 조절 등 다양한 생리 기능을 하는 프로스타글란딘류를 곰팡이와 효모균을 활용해 전합성하는 연구를 추진했습니다.

1970

[스테로이드 호르몬 생산 기술 국제적 확산]

그의 선구적인 연구에 기반하여 미국에서 스테로이드 호르몬 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한국 제약기업에도 스테로이드 생산 기술이 이전되는 등 연구의 산업적 파급력이 커졌습니다.

1970년대 미국에서 이상섭 박사의 연구에 기반하여 스테로이드 호르몬 생산이 시작되었고, 한국 제약기업에도 스테로이드 생산기술이 이전되었습니다.

1972

['약의 상' 수상]

경구용 스테로이드 피임제 '피고로'와 임신 진단약 '프레그나'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사회부로부터 '약의 상'을 수상했습니다.

1972년 동아제약과 함께 개발한 경구용 스테로이드 피임제 '피고로'와 임신 진단약 '프레그나'의 국내 발명 특허 출원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사회부로부터 '약의 상'을 수상했습니다.

1975

[프로스타글란딘류 연구 결과 국제 학술지 발표]

프로스타글란딘류 전합성 연구 결과를 미국의 권위 있는 화학회지에 발표하며 연구 성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곰팡이와 효모균을 활용한 프로스타글란딘류 전합성 연구 결과를 1975년 미국 화학회지에 발표했습니다.

1978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학장 취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학장으로 취임하여 1981년까지 역임하며 약학 교육 및 연구 발전의 중요한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978년부터 1981년까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학장을 역임하며 학과의 행정과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1981

[산학협력 모델 구축 및 교육연구재단 설립]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학장 재직 중 종합약학연구소와 교육연구재단을 설립하여 대학이 제약산업계를 지원하고 산업계가 재단을 후원하는 성공적인 산학협력 모델을 구축, 약학 교육연구 발전의 토대를 다졌습니다.

1981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종합약학연구소와 교육연구재단을 만들어 대학은 연구소를 통해 제약산업계를 지원하고, 산업계는 주식 기부로 재단을 지원하도록 하는 산학협동의 좋은 사례를 만들어 약학의 교육연구 발전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불가리아 국제학술행사 초청]

냉전 시대인 1981년 불가리아 건국 1300주년 기념 국제학술행사에 초청받아 강연하며 그의 연구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냉전시대인 1981년 불가리아 건국 1300주년 기념 국제학술행사(The 1st International Conference on Chemistry and Biotechnology of Biologically Active National Products)에 초청되어 강연했습니다.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위촉]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위촉되며 국내 최고 권위의 학술기관에서 활동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는 그의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중요한 사건입니다.

1981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활동하며 국가 학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한국생화학회 회장 취임]

한국생화학회 회장으로 취임하여 1982년까지 학회를 이끌며 국내 생화학 분야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981년부터 1982년까지 한국생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1983

[대한약학회 회장 취임]

사단법인 대한약학회 회장으로 취임하여 1984년까지 약학계의 발전을 위한 학술 활동과 정책 제안에 힘썼습니다.

1983년부터 1984년까지 사단법인 대한약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1984

[대한민국학술원 저작상 수상]

대한민국학술원 저작상을 수상하며 그의 학문적 깊이와 연구 성과를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1984년 대한민국학술원 저작상을 수상했습니다.

1988

[캡사이신 수용체 모델 제시 및 진통 작용 연구]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의 진통 작용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캡사이신 수용체의 존재를 가정하며 수용체 모델을 제시하여 진통제 개발의 새로운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 많은 캡사이신 유사체를 합성하여 진통작용과의 상관성 연구를 통하여 캡사이신 수용체의 존재를 가정하고 수용체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1989

[제5차 FAOB Seoul Congress 성공적 개최]

아시아대양주생화학자연합(FAOB) 한국대표로서 제5차 대회를 서울로 유치하고 조직위원장으로서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많은 석학들을 초빙, 국내 최대 규모의 바이오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한국 생화학계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아시아대양주생화학자연합(FAOB)의 한국대표로서 제5차 대회(1989년)를 유치하고 조직위원장으로 6년간의 준비 끝에 노벨상 수상자 3명을 비롯한 많은 석학들을 초빙하여 국내 최대 규모의 바이오 학술대회인 제5차 FAOB Seoul Congress를 치러냈습니다.

1995

[서울대학교 40년 근속상 수상]

서울대학교에서 40년간 근속한 공로를 인정받아 40년 근속상을 수상했습니다.

1995년 서울대학교 40년 근속상을 수상했습니다.

1996

[국민훈장 목련장 수훈]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는 그의 평생에 걸친 업적에 대한 국가적 최고의 예우입니다.

1996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훈했습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임명]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약학과 명예교수로 임명되어 후학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1996년 6월부터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약학과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997

[캡사이신 수용체 복제로 신약 개발의 길 열림]

그가 제시한 캡사이신 수용체 모델을 바탕으로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진이 캡사이신 수용체를 복제하는 데 성공, 새로운 유형의 진통 약물 개발이 추진되기 시작하며 그의 연구의 실질적인 파급력을 입증했습니다.

1997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진이 이상섭 박사의 캡사이신 수용체 모델을 바탕으로 캡사이신 수용체를 복제함으로써 새로운 유형의 진통약물 개발이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1998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 역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으로 2001년까지 재직하며 국내 과학기술 정책 수립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으로 활동했습니다.

2019

[제1회 윤광열 약학공로상 수상]

제1회 윤광열 약학공로상을 수상하며 한국 약학계에 기여한 평생의 공로를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2019년 제1회 윤광열 약학공로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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