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임
정치인, 간호학자, 교육인, 국제 활동가, 여성운동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3:37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간호학자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며 한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간호학 교육 혁신과 전문직 학문으로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한국 최초로 간호 분야 대학원 과정을 개설했습니다. 보건복지 정책가로서 전국민 의료보험 전환과 기초생활보호 제도 마련 등 사회복지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습니다. 국제간호협의회 회장 등 국제 무대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한국 간호학의 위상을 높이고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사회적 리더로서 재산의 일부를 기부하는 등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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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
[김모임, 일제강점기 경성부에서 태어나다]
일제강점기 경성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훗날 대한민국의 보건복지부 장관이자 저명한 간호학자로 성장하여 한국 사회와 국제 간호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됩니다.
김모임은 1935년 5월 23일 일제강점기 경기도 경성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삶은 대한민국 현대사와 함께하며 보건의료, 사회복지, 여성,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1959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졸업 및 학사 학위 취득]
연세대학교 간호대학을 졸업하며 간호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간호학자로서 첫걸음을 떼는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1959년 연세대학교 간호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전문 간호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하와이주립대학교에서 보건학 석사,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보건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1969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 임용]
모교인 연세대학교 간호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어 후학 양성과 간호학 발전에 헌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간호 교육의 중요한 주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69년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본격적으로 간호학 교육과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이후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학장과 보건대학원 원장을 역임하며 간호학을 전문직 학문분과로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한국 최초로 간호 분야의 대학원 과정을 개설하고 간호사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RN-BSN 제도를 도입하는 등 간호 교육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1973
[존스 홉킨스 대학교 보건학 박사 학위 취득]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보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로써 그녀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간호학 및 보건학 전문가로서의 기반을 확고히 다졌습니다.
1973년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보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녀는 질병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간호 교육을 혁신하고, 한국 최초로 보건대학원에 국제보건학과와 의료법·윤리 협력과정을 신설하여 전문가 양성과 생명윤리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보건통계학 온라인 과정과 '보건행정정책 고위자 과정'을 신설하여 현장 인력과 정책가들에게 전문성 향상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1978
[대한간호협회 회장 역임]
대한간호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한국 간호사들의 권익 향상과 간호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국내 간호 분야의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1978년 대한간호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한국 간호계의 중추적인 인물로 활동했습니다. 그녀는 간호학의 전문성 강화와 간호사의 사회적 역할 확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며, 다양한 정책 제안과 활동을 통해 한국 간호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79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부회장 역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여성 권익 향상과 사회 참여 확대를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폭넓은 사회 활동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1979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권익 보호에 힘썼습니다. 이후 한국여성정치연맹 총재 등을 역임하며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와 여성 지도자 양성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1981
[제1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치 활동 시작]
제1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국회에서 보건복지와 여성정책 분야에서 활발한 입법 활동을 펼치며 한국 사회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제11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보건복지와 여성정책에 관한 많은 입법과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학자와 교육인을 넘어 실제적인 사회 변화를 이끄는 정치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1982
[대한가족계획협회 부회장 역임]
대한가족계획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인구 보건과 가족 계획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보건복지 전문가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2년 대한가족계획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건강한 가정과 사회를 위한 가족계획 사업에 기여했습니다. 이후 대한가족계획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이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했습니다.
1985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학문적 업적과 사회 공헌을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영예였습니다.
1985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간호학 교육과 연구, 보건 정책 수립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로, 이후 그녀의 활발한 사회 활동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1989
[국제간호협의회(ICN) 회장으로 선출되며 세계 간호학계 리더로 활약]
국제간호협의회(ICN) 제21대 회장으로 선출되며 '세계 최초' 아시아인 회장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한국 간호학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드높인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89년 국제간호협의회(ICN) 제21대 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아시아인으로는 '세계 최초'이자 한국인 최초로 국제간호협의회 회장이 되어 세계 간호학계에 한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국제 보건 증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 시기를 통해 그녀는 WHO 간호정책 고문 등으로도 활동하며 국제 무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91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학장 및 여성정치연맹 부총재 역임, 국제적 인정]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한국여성정치연맹 부총재로도 활동했습니다. 또한 존스홉킨스 대학교 보건대학원 'Heroes of Public Health'에 선정되며 학문적 업적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91년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학장을 역임하며 간호 교육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같은 해 한국여성정치연맹 부총재로 활동하며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한 노력을 지속했습니다. 또한 존스홉킨스 대학교 보건대학원 'Heroes of Public Health'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으며 그녀의 학문적 성과가 국제적으로 공인받았습니다.
1994
[세계보건기구 사사카와 보건상 수상으로 국제적 공로 인정]
세계보건기구(WHO) 사사카와 보건상을 수상하며 국제 보건 분야에서의 뛰어난 공헌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그녀의 국제적 활동과 리더십을 증명하는 중요한 수상입니다.
1994년 세계보건기구(WHO) 사사카와 보건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상은 인류 보건 증진에 크게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되는 권위 있는 상으로, 그녀가 국제 보건 분야에 미친 영향력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1996년에는 ‘Johns Hopkins Society of Scholar’에도 선정되며 다시 한번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습니다.
1995
[대한가족계획협회 회장 역임]
대한가족계획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가족 보건 및 계획 분야의 정책 수립과 실행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95년 대한가족계획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건강한 가족 문화 조성과 인구 보건 증진을 위한 사업을 이끌었습니다. 그녀는 소외된 농어촌 주민을 위한 보건진료원제도, 가정간호사업, 건강증진사업 개발에도 참여하며 실질적인 보건 서비스 확대에 기여했습니다.
1996
1996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활동하며 재난 구호, 보건 의료, 사회 봉사 등 다양한 인도주의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녀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눔과 봉사의 정신을 실천하며 사회적 귀감이 되었습니다.
1998
[제36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사회복지 제도 혁신 주도]
제36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한국 보건복지 정책의 비전과 방향을 설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재임 중 전국민 의료보험 전환, 기초생활보호 제도 마련 등 사회복지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국민 생활 안정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98년 5월 1일 제36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장관 재임 시 기초생활보호 제도를 마련하고 의료보험을 전국민 건강보험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사회복지제도의 획기적 개선을 이끌었습니다. 이외에도 의약분업 시행과 전국민 연금제도 확대로 현행 연금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한국 보건복지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임기는 1999년 5월 23일까지였습니다.
1999
[보건복지부 장관직 퇴임]
제36대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녀는 재임 기간 동안 한국 사회의 보건복지 시스템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1999년 5월 23일 제36대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퇴임했습니다. 장관으로서 그녀는 기초생활보호 제도 마련, 전국민 건강보험 전환, 의약분업 시행, 전국민 연금제도 확대 등 한국 보건복지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습니다.
2000
[한국여성정치연맹 총재 역임]
한국여성정치연맹 총재를 맡아 여성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고 여성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 개발에 힘썼습니다. 이는 그녀의 오랜 여성운동의 결실이었습니다.
2000년 한국여성정치연맹 총재를 역임하며 여성의 정치참여 및 정치인력 자원 양성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는 등 여성 지도자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녀는 여성 단체 협의회 김활란 여성지도자상을 비롯해 비추미 여성대상 등 다수의 여성 관련 상을 수상하며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2004
[적십자간호대학 학장 역임]
적십자간호대학 학장으로 취임하여 간호 교육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습니다. 그녀는 후학 양성을 통해 한국 간호학의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졌습니다.
2004년 적십자간호대학 학장으로 취임하여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다시금 이어갔습니다. 그녀는 연세대학교 간호학연구소 명칭이 '김모임간호학연구소'로 변경되고, 국제간호협의회(ICN)에서 'Kim Mo-Im Nursing Innovation and Policy Impact Award'를 창설하여 세계적인 지도자 발굴 및 양성을 진행하는 등 지속적으로 그녀의 업적이 기려지고 있습니다.
2015
[제11회 유일한상 수상, 나눔과 봉사 정신 인정받다]
제11회 유일한상을 수상했습니다. 재산의 10%인 26억 원을 모교인 연세대학교에 기부하고 나눔과 봉사의 삶을 살아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으로,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2015년 1월 제11회 유일한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는 재산의 10%인 26억 원을 모교 연세대학교에 후학 양성을 위해 기부하고, 남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며 인류 보건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이 수상은 그녀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봉사와 희생 정신의 상징이었습니다.
2024
[김모임 박사 별세]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그녀는 한국의 보건복지, 간호학, 여성 운동, 정치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지대한 공헌을 남기며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2024년 2월 28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김모임 박사는 평생을 한국 간호학 발전과 보건복지 증진,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를 위해 헌신했으며, 국제 무대에서도 한국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그녀의 업적은 학문과 실천을 겸비한 사회적 리더의 모범으로 남아 한국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