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구동

약학자, 과학자,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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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학자, 과학자,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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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약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선구적인 약학자 한구동 박사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초대 학장과 대한약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한국 식품 및 야생식물의 영양 가치를 규명하고, 온천 성분 및 희첨 성분 연구를 통해 세계적인 학술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대한민국 학술원 저작상, 황조소성훈장 등 다수의 상훈을 수상하며 평생을 학문과 국민 보건 향상에 헌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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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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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

[한국 약학의 선구자, 한구동 탄생]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나 한국 약학의 선구자로 성장할 기초를 다졌다.

1908년 10월 18일,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약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길 한구동의 삶이 시작되었다.

1927

[경성 제2공립고등보통학교 졸업]

경성 제2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7년 3월, 경성 제2공립고등보통학교(現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30

[위생시험소에서 국민 보건 연구에 헌신]

조선약학교를 졸업하고 해방까지 15년간 유일한 약학 연구기관인 위생시험소에서 민족의 식생활과 위생 연구에 매진했다. 이 시기에 155종 한국식품과 161종 야생식용식물의 영양학적 가치를 입증하고, 41개소 온천의 성분 규명 연구를 진행했다.

1930년 3월, 조선약학교를 졸업한 후 해방을 맞기까지 15년간 당시 한국 유일의 약학 관련 연구기관이었던 위생시험소에서 근무하며 민족의 식생활과 위생문제 연구에 매진했다. 특히 155종에 달하는 한국식품과 161종에 달하는 야생식용식물의 영양학적 성분을 연구해 그 가치를 밝혔고, 한반도 41개소 온천의 함유성분을 규명하여 치료적 이용의 척도를 제시하는 귀중한 연구 성과를 남겼다.

1946

[국립화학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기관 개편 이끌어]

해방 후 국립위생시험소를 관리하다가, 미군정이 이를 국립화학연구소로 개편했을 때 초대 소장으로 취임하여 새로운 약학 연구 기관의 기틀을 마련했다.

해방과 더불어 국립위생시험소를 관리하던 한구동은 이듬해 미군정이 이 기관을 질병관리본부의 전신인 국립화학연구소로 개편했을 때 초대 소장으로 취임하여, 새로운 국가 약학 연구의 방향을 제시했다.

1950

[서울대학교 교수 임용 및 초대 약학대학장으로서 약학 교육 기반 구축]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로 임용되었고, 동시에 약학대학이 서울대학교에 편입되면서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여 11년간 대학을 이끌었다. 6.25 전쟁 중에도 대학을 지키고 전후 복구 기간 동안 폐허 속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며 약학 교육의 기반을 다졌다.

1950년 1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서울약학대학이 서울대학교에 편입될 때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여 11년간(1950~1962) 학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6.25 전쟁 중에도 대학을 지키고 전후 복구기간 중에도 대학을 이끌면서 폐허와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학생들을 교육하며 대한민국 약학 교육의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

1952

[대한약학회 초대 회장으로 학계 리더십 발휘]

임시수도 부산에서 재출범한 대한약학회의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어 15년간 학회를 이끌며 한국 약학계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다.

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재출범한 현재의 대한약학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어 이후 15년간 회장직을 맡아 학회를 이끌며 한국 약학계의 학술적 발전과 구심점 역할을 공고히 했다.

1960

[한국 특산식물 신나무 타닌 구조 세계 최초 규명]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 특산식물 신나무 잎의 타닌 성분, 특히 Polygagallin의 화학구조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이는 중국과 일본의 약학 전문가도 밝혀내지 못했던 난제로, 학계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기간 동안 한국 특산식물인 신나무 잎의 타닌에 관한 연구를 포함한 10여 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신나무 잎의 타닌 중 구조를 규명한 Polygagallin은 중국과 일본의 약학 전문가도 그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던 물질로, 그의 연구는 ‘Acerginnala Max에서 분리한 신 Tannin Polygagallin의 화학구조’ 논문으로 발표되어 학계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1962

[국가 발전 기여로 황조소성훈장 수훈]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황조소성훈장을 수훈했다.

1962년 8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황조소성훈장을 수상했다.

1963

[서울대학교에서 약학박사 학위 취득]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약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학문적 깊이를 더했다.

1963년 2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약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자신의 학문적 전문성을 더욱 강화했다.

[학술문화 발전에 기여로 국민장 수훈]

8.15 해방 기념 학술문화훈장(국민장)을 수상하며 학술 및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1963년 8월, 8.15 해방 기념 학술문화훈장(국민장)을 수상하여 학술 및 문화 분야에 대한 그의 공헌이 국가적으로 인정받았다.

1968

[희첨 성분 연구로 국제 학계 주목]

서울대 생약연구소 교수로 취임(1966년)하여 혈압강하, 항염증 효능이 탁월한 희첨 성분 연구를 진행하고, 그 독창성과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국생약학회에 초청되어 강연했다.

1966년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의 전신인 생약연구소 교수로 취임하면서 혈압강하, 항염증 효능이 탁월한 약초인 희첨의 성분에 관한 연구를 이뤄냈다. 이 연구는 독창성과 학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1968년 미국생약학회 제9차 연례학술대회에 초청되어 강연하기도 했다.

1971

[이탈리아 밀라노 대학교와 공동 연구 및 국제 학술지 발표]

미국생약학회 강연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 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유기화학연구소에서 일류 연구진과 희첨 성분에 대한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 Tetrahedron Letters에 발표하며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올렸다.

미국생약학회 강연에서 발표된 희첨 성분 연구에 큰 관심을 보인 이탈리아 밀라노 대학교 약리학연구소 소장의 초청을 받아 유기화학연구소에서 일류 연구진과 협력하여 희첨 성분 공동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 결과는 영국에서 발간하는 권위 있는 유기화학분야 학술지 Tetrahedron Letters에 발표되며 세계적인 학술적 성과로 인정받았다.

[희첨 연구 집대성으로 대한민국 학술원 저작상 수상]

희첨 연구를 집대성한 업적으로 대한민국 학술원 저작상을 수상하며 그의 학술적 업적의 정점을 찍었다.

희첨 성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집대성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1년 7월 대한민국 학술원 저작상을 수상하며, 그의 평생에 걸친 학술적 업적의 가치를 국가적으로 인정받았다.

2000

[한국 약학 발전에 헌신한 한구동 박사 별세]

대한민국 약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한구동 박사가 9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2000년 10월 20일, 한국 약학의 토대를 다지고 발전에 평생을 헌신했던 한구동 박사가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업적은 후세에도 길이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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