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혁
대학교수, 대학총장, 의학자, 관료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2:45
대한민국의 의학자, 교육행정가, 그리고 관료인 권이혁은 다음과 같은 족적을 남겼습니다.1923년 김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한국형 보건학의 개념을 정립하고 의학교육 체제를 혁신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서울대학교 총장, 문교부 장관, 보건사회부 장관 등 고위 직책을 역임하며 국가 교육 및 보건 정책에 크게 기여했습니다.또한 한국 과학기술 발전과 남북 과학기술 교류의 초석을 다지는 데 공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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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1923년 경기 김포에서 권이혁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훗날 서울대학교 총장, 문교부 장관, 보건사회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한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인물로 성장하게 됩니다.
1947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는 그가 향후 대한민국 의학계와 보건학 발전에 기여할 기반을 마련한 중요한 시작점이었습니다.
1951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여 전문성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기초 의학 연구와 임상 경험을 쌓아갔습니다.
1953
미국 정부로부터 미국자유훈장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의 학문적 성과와 국제적 기여를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56
[미네소타 대학교 보건학 석사 학위 취득]
미네소타 대학교 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새로운 의학 분야인 보건학에 대한 지식을 넓혔습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경험은 그가 한국에 보건학을 정착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1960
[서울대 의학 박사 학위 취득 및 한국 보건학 정립 시작]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한국 실정에 맞는 보건학을 연구, 개발하여 정립하며 국내 보건학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그는 건강인을 포함하는 인구집단의 건강을 다루는 새로운 의학 영역인 보건학의 학문적 개념과 이념을 한국에 처음 도입하고 실정에 맞는 보건학을 연구, 개발하여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한국 보건학의 기초가 마련되었습니다.
1962
주요 저서 중 하나인 ‘전염병관리’를 출간했습니다. 이는 국내 전염병 관리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관련 지식을 체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63
‘공중보건학’ 저서를 출간하며 한국 보건학의 학문적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이 책은 많은 학생과 연구자에게 보건학의 기본 개념을 제공하는 자료가 되었습니다.
1965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을 시작하며 오랜 기간 동안 후학 양성과 예방의학 및 보건학 분야의 연구를 이끌었습니다.
1967
‘인구와 보건’ 저서를 출간하며 인구 변화가 공중 보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중요한 학술적 논의를 이끌었습니다.
1968
[3.1문화상 수상 및 저서 출간]
3.1문화상을 수상하며 그의 학문적 업적과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도시인구에 관한 연구’를 출간했습니다.
3.1문화상을 수상하여 그의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았습니다. 이와 함께 ‘도시인구에 관한 연구’를 출간하여 도시화와 보건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1970
[서울대 의과대학장 역임 및 의학교육 혁신]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장으로 재직하며 한국 의학교육 체제를 전면 개편, 통합교과목을 신설하고 의학교육연수원을 설립하는 등 의학 교육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장(1970~1976)으로 재직하며 한국 의학교육 체제의 전면 개편을 추진, 국내 최초로 통합교과목(일명 'Block Lecture')을 신설하고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교육 원리를 연수하는 ‘의학교육연수원’을 설립하여 한국 의학 교육 발전에 결정적인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75
서울대학교 의학교육연수원장(1975~1976)을 역임하며 국내 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에 기여했습니다.
1976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장(1976~1978)을 역임하며 보건학 교육과 연구 발전을 위한 행정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1978
‘최신보건학’ 저서를 출간하며 한국 보건학 분야의 주요 교재이자 연구 자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저서는 1982년 대한민국학술원 저작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1979
서울대학교 병원장(1979~1980)을 역임하며 병원 경영과 환자 진료 시스템 개선에 힘썼습니다.
1980
[제15대 서울대학교 총장 취임]
제15대 서울대학교 총장에 취임하며 최고의 교육 행정가로서 모교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제15대 서울대학교 총장(1980년 6월 30일 ~ 1983년 10월 14일)으로 취임하여 대한민국의 최고 학부 수장으로서 교육 이념을 정립하고 대학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리더십은 서울대학교가 학문적 우수성을 유지하고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81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부위원장 및 학술회 정회원 활동]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부위원장 및 학술회 정회원으로 활동하며 국제 학술 교류와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부위원장(1981~1985) 및 학술회 정회원(1981)으로 활동하며 국내외 학술 교류와 연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1982
[‘最新保健學’ 대한민국학술원 저작상 수상]
저서 ‘最新保健學’으로 대한민국학술원 저작상을 수상하며 그의 학문적 성과를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대표 저서 중 하나인 ‘最新保健學’이 대한민국학술원 저작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한국 보건학 분야에서의 그의 독보적인 학문적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중요한 사건입니다.
1983
청조근정훈장을 수상하여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가 다시 한번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제26대 문교부 장관 취임]
제26대 문교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국가 교육 정책을 총괄하며 한국 교육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제26대 문교부 장관(1983년 10월 15일 ~ 1985년 2월 18일)으로 취임하여 대한민국의 교육 정책을 총괄했습니다. 그는 교육 개혁과 인재 양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며 국가 교육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1984
‘보건인구학총론’을 출간하며 인구학적 관점에서 보건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1985
한국교원대학교 총장(1985년 3월 5일 ~ 1988년 2월 15일)으로 취임하여 유능한 교원 양성과 교육 연구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이는 그의 교육자로서의 철학을 구현하는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1988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사회와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평생에 걸친 헌신적인 노력을 기리는 최고의 영예였습니다.
[제22대 보건사회부 장관 취임]
제22대 보건사회부 장관으로서 국민보건체계 확립과 전 국민 의료보험 완비에 기여하며 국민 건강 증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제22대 보건사회부 장관(1988년 2월 25일 ~ 1988년 12월 5일)으로 취임하여 국민보건체계 확립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는 영양, 환경, 질병관리, 인구의학 등 주요 국민 보건 향상 관련 기술 및 정책 개발을 선도했으며, 특히 전 국민 의료보장체제 완비를 추진하여 국민 건강 증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1990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1990년 2월 ~ 1992년 4월)으로 취임하여 국내 과학기술 분야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과학기술인의 권익 신장과 과학기술 문화 확산에 힘썼습니다.
[남북 민간 과학기술 교류 시작]
남북 민간 과학기술 교류협의회를 창립하고 북한에 과학기술계 인사를 초청하는 등 민간 차원의 남북 과학기술 교류를 최초로 시작하며 평화적 교류의 물꼬를 텄습니다.
남북 민간과학기술교류협의회를 창립하고 ‘8.15범민족대회’에 북한 과학기술계 인사를 초청하는 등 민간 차원에서 남북 과학기술 교류를 최초로 시작했습니다. 이는 1991년 중국 옌지에서 남북한 과학기술인의 첫 공식 만남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991
[제3대 환경처 장관 취임]
제3대 환경처 장관으로 취임하여 환경 기술 연구 개발 지원 및 국제 환경 협력 강화를 주도했습니다.
제3대 환경처 장관(1991년 4월 26일 ~ 1992년 6월 26일)으로 재직하며 환경 기술 연구 개발 지원을 위한 예산을 신설하고 종합환경연구단지 조성, 오염 측정 장비 현대화 등 국책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또한 국제환경협약대책위원회 신설 및 산·학·연 합동 연구 체제 구축을 통해 저공해 기술 개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남북한 과학기술인 첫 공식 만남 성사]
중국 옌지시에서 열린 ‘91 중국 국제과학기술학술대회’에서 남북한 과학기술인의 첫 번째 공식 만남이 성사되었습니다.
그가 주도한 남북 과학기술 교류 노력의 결실로, 중국 지린성 옌지시에서 열린 ‘91 중국 국제과학기술학술대회’에서 남북한 과학기술인의 첫 번째 공식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1992
[과학기술 담당 부총리제 신설 건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으로서 과학기술 담당 부총리제 신설을 대정부 건의하여 과학기술인의 권익 신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재임 중 과학기술 담당 부총리제 신설을 정부에 건의했습니다. 이 건의는 2004년 과학부 부총리급 승격으로 실현되어 과학기술인의 위상과 권익 신장에 크게 기여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1995
1990년 추진했던 과학기술회관 건립이 1995년에 준공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국내외 과학기술 관련 학술 행사를 수용하고 과학기술 진흥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96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성균관대학교 이사장을 재직하며 사학 발전과 학교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04
‘인구보건환경’ 저서를 출간하여 현대 사회의 인구와 보건 문제, 그리고 환경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을 제공했습니다.
2006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선정 및 서재필 의학상 수상]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에 선정되고 제3회 서재필 의학상을 수상하며 그의 평생 업적을 기렸습니다.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에 선정되었고, 의학 분야의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아 제3회 서재필 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의 평생에 걸친 학문적,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2007
[보건대상 수상 및 저서 ‘온고지신’ 출간]
보건대상을 수상하며 보건학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온고지신’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보건대상을 수상하며 보건학 분야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헌신과 기여를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온고지신’ 저서를 출간하여 자신의 경험과 통찰을 공유했습니다.
2009
그의 배우자 정기자가 2009년에 별세하여 깊은 슬픔을 맞았습니다.
2016
제8대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2016년 3월 ~ 2020년 7월)에 취임하여 인류의 평화와 공영에 기여하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2020
2020년 7월 12일, 97세의 나이로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평생을 의학 발전과 교육, 국가 행정에 헌신하며 대한민국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