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식
과학자, 섬유공학자, 발명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2:38
윤한식 박사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명예 석좌연구원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과학자입니다. 그는 고강도 아라미드 펄프를 개발하며 세계적인 과학자로 우뚝 섰고, 이 연구는 『네이처』에 실려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쉬지 않는 연구 열정으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대한민국 섬유공학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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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윤한식 박사는 1929년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났다.
1949
1949년 서울대학교 섬유공학과에 입학하여 학사 과정을 시작했다.
1955
1955년 서울대학교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1955년부터 1961년까지 부산사범학교에서 물리 교사로 근무했다.
1961
1961년 기술 개발에 대한 열망으로 부산 대원염료공업사의 연구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1964년까지 일했다.
1964
1964년 부산 범아합성화학공업사의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기술상무로 일했으나, 회사는 자금난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1967년 문을 닫았다.
1967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연구원 영입]
한국 최초 정부출연연구소인 KIST의 선임연구원으로 영입되어 산업 현장의 기술 문제 해결에 매진했다.
1967년, 다년간의 기업 현장 연구개발 경험을 인정받아 한국 최초의 정부출연연구소인 KIST에 선임연구원으로 영입되었고, 입사 후 산업 현장의 기술 문제 해결을 위해 1979년까지 노력했다.
1973
1973년 미국 듀폰이 400~500℃의 고온에서도 타지 않고 5㎜ 굵기 실로 2t의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기적의 섬유 '아라미드'를 처음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세계시장은 듀폰의 아라미드 섬유인 케블라(Kevlar)가 석권하고 있었다.
1974
1974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방문과학자로 연구 활동을 했다.
1976
1976년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1978
1978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섬유공학과에 입학하여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1979
1979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책임연구원 및 석좌연구원으로 승진하여 1989년까지 연구 활동을 이어갔다.
1980
1980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섬유공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0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섬유공학과에 입학하여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1982
[아라미드 펄프 독자 제조공정 개발 성공]
3년간의 연구 끝에 순수한 화학반응만으로 섬유를 만들 수 있는 독자적인 아라미드 펄프 제조공정을 개발, 생산에 성공했다. 이는 기존 듀폰 공정보다 효율적이고 저렴했다.
1982년 윤한식 박사와 연구팀은 3년간의 연구 끝에 독자적인 아라미드 펄프 제조공정을 개발하여 생산에 성공했다. 그가 개발한 공정은 방사 과정 없이 순수한 화학반응만으로 섬유를 만들 수 있어, 듀폰의 케블라 생산 공정보다 단순하고 생산 효율이 높으며 비용이 저렴하다는 강점이 있었다.
1984
198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섬유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코오롱에 아라미드 펄프 기술 이전]
지속적으로 연구를 지원해준 코오롱에 개발한 아라미드 펄프 제조 기술을 이전했다. 이후 코오롱은 연구팀과 공동 연구를 통해 국내 최초로 아라미드 섬유 필라멘트사를 시생산했다.
1984년, 윤한식 박사의 결심으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해 준 코오롱이 아라미드 펄프 제조 기술을 넘겨받게 되었다. 이후 코오롱과 연구팀은 공동연구를 통해 파일럿 설비를 설치하고 국내 최초로 아라미드 섬유의 필라멘트사를 시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1984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훈했다.
1985
1985년 과학기자클럽이 수여하는 제1회 올해의 과학자상을 수상했다.
[아라미드 펄프 미국 특허 획득]
개발한 아라미드 펄프와 제조 공정에 대해 미국 특허를 획득했다. 이는 영국, 일본, 독일 등 7개국에도 특허가 출원되며 국제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윤한식 박사는 개발한 아라미드 펄프와 제조 공정을 각각 미국에 특허 출원했으며, 1985년 4월 특허를 획득했다. 미국 외에도 영국, 일본, 독일 등 7개국에 특허를 출원하며 개발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았다.
1986
기술 구매에 실패한 듀폰은 윤한식 박사가 개발한 아라미드 펄프가 자신들의 기술을 도용하여 개발되었다는 이유로 특허 소송을 제기했으며, 이 소송은 1986년부터 시작되었다.
1987
[네이처(Nature)에 논문 게재]
아라미드 펄프 개발에 대한 논문이 국내 최초로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에 실리며 섬유 형성 과정의 새로운 이론을 제시,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아라미드 펄프 개발에 대한 논문은 1987년 국내 최초로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 (vol.326 no.6113)』에 실렸다. 아라미드 섬유가 형성되는 과정이 자연 속의 섬유 형성 과정과 동일하다는 이론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87년 대한섬유공학회 기술상을 수상했다.
1991
[듀폰과의 특허 소송 승소]
유럽특허청이 윤한식 박사 연구의 독창성을 인정하며 듀폰과의 5년간 이어진 특허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그는 직접 재판에 출두해 연구의 독창성을 설명하며 승소를 이끌어냈다.
1991년 12월 6일, 유럽특허청이 윤한식 박사 연구의 독창성을 인정하면서 1986년부터 5년간 끈질기게 이어진 듀폰과의 특허 소송이 마무리되었다. 그는 사건 해결을 위해 직접 유럽특허청 항소심판소 재판에 출두하여 통역도 어려워하는 연구 내용을 영어로 설명하며 연구의 독창성을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1992
[과학기술자 공로연금 제1호 종신 수혜자 선정]
정부가 신설한 과학기술자 공로연금의 제1호 종신 수혜자로 선정되며 섬유공학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공로를 국가로부터 인정받았다.
1992년 정부는 신설된 과학기술자 공로연금의 제1호 종신 수혜자로 그를 선정하며 섬유공학 연구에 일생을 바친 그의 공로를 인정했다.
1994
1994년부터 1999년까지 KIST 명예연구원과 호서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했다.
2008
2008년에 별세했다.
2022
2022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