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길
지질학자, 교수, 과학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2:00
한국 지질학계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박동길은 지질학자이자 서울대학교 교수입니다. 광복 후 한국 지질학 재건에 앞장서 지질광산연구소(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초대 소장을 역임했으며, 대한지질학회 창립 및 초대 회장으로서 한국 지질학계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또한 동아시아 최초 다이아몬드 원석 발견 등 다양한 광물 탐사 및 개발 연구로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으며, 후학 양성과 수많은 학술적·실용적 업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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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
박동길은 1897년 8월 5일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 신대리에서 출생했다. 이후 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중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1925
박동길은 일본 오사카공업고등학교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하여 1925년 3월에 졸업했으며, 제약회사에 근무했다.
1930
박동길은 일본 북동부 센다이의 도호쿠 대학 이학부에 입학, 지질광물학과를 1930년 3월에 졸업했다.
1938
1938년 박동길은 화학적 방법에 의한 코발트광 검정법(일본특허 제169534호)을 개발했다.
1939
귀국 후 경성고등공업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1939년 경성광산전문학교가 문을 열자 4월부터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 1945년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1940
[알칼리 장석 광상 및 다이아몬드 원석 발견]
황해도 지역의 알칼리 장석 광상을 발견하고, 동아시아 최초로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하는 세계적인 업적을 세웠다.
1940년 황해도 지역의 알칼리 장석 광상을 발견하여 성가를 높였고,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술폰화유지제조법 발명, 함경북도 지역 안테신 발견, 알칼리 혼블렌드 발견, 화학적 방법 고광물 감정 및 유통성분 검출법 개발, 강원도 지역 하석광상 발견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1945
[지질조사소・연료선광연구소 소장 임명]
광복 후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 상무부에서 일본인이 빠져나간 지질조사소와 연료선광연구소를 통합하고, 박동길을 겸임 소장으로 임명했다.
광복 후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 상무부는 일본인들이 빠져나간 지질조사소와 연료선광연구소를 접수하고, 두 기관을 통합하기로 결정한 뒤 1945년 11월 박동길을 겸임 소장으로 임명했다.
1946
[지질광산연구소 통합 및 초대 소장]
지질조사소와 연료선광연구소가 지질광산연구소로 통합되었고, 박동길은 초대 소장으로 1951년까지 봉직하며 연구소의 기틀을 다졌다.
1946년 4월 두 기관은 지질광산연구소로 통합되었고, 중앙지질광물연구소 등 몇 차례 명칭 변경을 거쳐 현재의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으로 계승되었다. 박동길은 지질광산연구소와 중앙지질광물연구소의 초대 소장으로 1951년까지 봉직하며, 분단과 전쟁 등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연구소의 기틀을 다졌다.
1947
[대한지질학회 창립 및 초대 회장]
대한지질학회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학회 창립과 함께 초대 회장이 되어 1955년까지 재임하며 한국 지질학계의 기틀을 다졌다.
박동길은 대한지질학회를 창립하는 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47년 4월 학회 창립과 함께 초대 회장이 되었고 1955년까지 회장으로 재임하며 지질학계의 기틀을 다졌다. 대한지질학회는 뒷날 『태백산지구 지하자원 조사 보고서』(1962)를 발간하는 등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학문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었다.
1952
1952년 4월부터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로 일했으며, 정년 후에는 인하공과대학(현 인하대학교) 명예교수로 후학 양성에 주력했다.
1953
박동길은 『한국의 광물자원』(1953) 등의 연구서를 펴내 광물자원 개발을 위한 학문적 토대를 제공했으며, 지질 탐사를 통해 강원도 양양군 철산광상(철광석) 등 유용 자원을 발굴하여 산업화의 기틀을 닦았다.
1959
1959년 박동길은 대한민국학술원상을 수상했다.
1963
[청조소성훈장 및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저서 출판]
청조소성훈장(근정훈장 1등급)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하고, 『방사성 광물의 탐광』을 출판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1963년 청조소성훈장(근정훈장 1등급)과 8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또한 『방사성 광물의 탐광』(1963)을 출판하며 광물자원 개발의 학문적 토대를 지속적으로 제공했다.
1974
[대한민국학술원 부회장 역임 및 운암지질학상 제정]
대한민국학술원 부원장을 역임했으며, 대한지질학회는 그의 공적을 기려 '운암지질학상'을 제정했다.
1974년 7월부터 1978년까지 대한민국학술원 부회장을 역임했다. 대한지질학회는 1974년 그의 공적을 기려 <운암지질학상>을 제정하고, 매년 지질학계에 공헌이 큰 이에게 시상하고 있다.
1981
1981년 수당과학상을 수상했다.
1983
박동길은 1983년 2월 사망했다.
1983년 5월 사후에 5.16 민족상을 수상했다.
2019
박동길은 이 업적을 인정받아 2019년 과학기술유공자 자연분야에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