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흠
물리학자, 저술가, 과학평론가, 교육평론가, 수필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41:35
한국 1세대 물리학자이자 과학 대중화에 헌신한 인물입니다. 다양한 저서, 강연, 방송 출연을 통해 과학 발전을 대중에게 친근하게 알렸습니다. 한국물리학회 창립과 학술지 창간, 용어집 간행에 크게 기여했으며, 지적재산권 제도 도입에도 공헌했습니다. 특히 원자핵 구조와 핵반응 연구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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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하였으며, 유아기와 유년기를 경상남도 김해, 경상북도 경주, 황해도 배천에서 보냈습니다.
1946
중국 베이징 대학 교육학과에 다니다 중퇴하고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1951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53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 및 고려대 교수 임용]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같은 해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을 시작했습니다.
1960
[과학 대중화 활동 시작]
1960년대부터 40여 년에 걸쳐 대중 매체 기고, 저서 집필, 방송 출연 등 과학 대중화를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부터 꾸준히 40여 년에 걸쳐 매년 20-30여 회의 대중 매체 기고를 통해 첨단 과학기술을 쉽게 풀이하여 대중의 과학 이해를 도왔습니다.
1961
미국 로체스터 대학교 대학원에서 양자역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67
[한국 물리학계 영문 학술지 창간 주도]
물리학회 편집위원장으로서 한국 물리학계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영문 학술지 Journal of Korean Physics Society의 창간을 주도했습니다.
물리학회 편집위원장으로서 영문 학술지인 Journal of Korean Physics Society의 창간을 단행했습니다.
1972
과학 대중화를 위한 헌신을 국가적으로 인정받아 대한민국과학기술상(국무총리상)을 수상했습니다.
[물리학 용어 심의위원장 활동 시작]
10년 동안 물리학 용어 심의위원장을 맡아 물리학 용어집 간행을 주도하며 한국 과학 용어 체계 확립에 기여했습니다.
1972년부터 1982년까지 10년 동안 학회 산하 물리학 용어 심의위원장을 맡아 『물리학용어집』의 간행을 주도했습니다.
1977
[한국과학기술저작인연합회 창립]
한국과학기술저작인연합회 창립을 주도하고 초대 부회장을 역임하며 과학 저술인들의 권익 향상에 힘썼습니다.
한국과학기술저작인연합회 창립을 주도했고, 연합회의 초대 부회장(1977~1982)을 역임했습니다.
1982
한국과학저술인연합회 제2대 회장(1982~1988)을 역임했습니다.
1983
과학 대중화를 위한 헌신은 국가적으로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으며, 1970~80년대 KBS TV와 교육방송 라디오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여 과학의 발전상을 해설했습니다.
1984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창립 부회장]
사단법인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의 창립 부회장을 역임하며 지적재산권 제도를 한국에 받아들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사단법인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의 창립 부회장(1984-1989)을 역임하면서 지적재산권 제도를 한국에 받아들이는 데에도 기여했습니다.
1985
[한국물리학회 제11대 회장 취임]
한국물리학회 제11대 회장으로 봉직하며 학회 운영을 개선하고 물리학 실험교재를 편찬하는 등 학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 한국물리학회 제11대 회장으로 봉직하며 학회의 운영을 개선하고 물리학 실험교재를 편찬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1987
[삼성 컴퓨터 광고 출연]
물리학회 회장 재임 당시 삼성 퍼스널 컴퓨터 SPC-1500 광고에 출연하여 과학 기술 대중화에 이바지했습니다.
물리학회 회장 재임 당시 삼성 퍼스널 컴퓨터 SPC-1500 광고에 출연했습니다.
1988
동아출판사 동아원색대백과사전 광고에 출연했습니다.
1989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의 회장(1989-2003)을 역임하면서 지적재산권 제도를 한국에 받아들이는 데에도 기여했습니다.
1991
[서울특별시문화상 수상 및 재능교육 광고 출연]
서울특별시문화상을 수상하고, 재능교육 광고에도 출연하며 활발한 대외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서울특별시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재능교육 광고에도 출연했습니다.
1992
[고려대학교 교수 퇴임 및 명예교수 임명]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직에서 퇴임하고 명예교수 및 선문대학교 석좌교수로 임명되어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퇴임 후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명예교수 겸 선문대학교 물리학과 석좌교수로 재직했습니다.
1996
박찬호와 공동출연으로 나이키 광고에 출연했습니다.
1996년 1월부터 3월까지 자유민주연합 과학교육행정특임위원을 지냈습니다.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심의위원회 위원으로서 초중고 교과과정에 컴퓨터를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고, 문교부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2002
과학 대중화를 위한 헌신은 국가적으로 인정을 받아 대한민국과학기술훈장(혁신장)을 받았습니다.
2005
뇌종양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기 시작했습니다.
뇌종양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던 중 향년 79세로 타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