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영

유도 선수, 지도자,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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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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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선수, 지도자,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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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유도계의 살아있는 전설, 전기영. 올림픽 금메달, 세계선수권 3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하며 세계 유도계를 호령했다. 은퇴 후에는 용인대학교 유도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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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

[유도 영웅의 탄생]

유도의 전설, 전기영 선수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태어난 전기영은 대한민국 유도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1985

[유도와의 첫 만남]

대성중학교 1학년 때 본격적으로 유도에 입문하며 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전기영은 충북 청주의 대성중학교 1학년 시절, 본격적으로 유도를 시작하며 그의 화려한 선수 경력의 서막을 열었다.

1990

[유망주 전기영, 기린장 수훈]

어린 시절부터 유도에 두각을 나타낸 전기영은 체육훈장 기린장을 수훈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유도 유망주였던 전기영은 체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았다.

1993

[국제 무대 데뷔전 금메달 쾌거]

파리 오픈 78kg급 결승에서 윤동식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1993년 2월 파리 오픈 78kg급에서 윤동식 선수를 결승에서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하며, 세계 유도계에 그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가대표 선발, 세계 무대로]

김병주, 윤동식 등 쟁쟁한 선수들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세계 선수권 출전 기회를 잡았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991년 세계 유도 챔피언 김병주, 윤동식 등 강자들을 제치고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출전권을 획득했다.

[요시다 꺾고 첫 세계 챔피언 등극!]

캐나다 해밀턴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78kg급 결승에서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요시다 히데히코를 꺾고 생애 첫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캐나다 해밀턴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78kg급 결승전에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일본의 요시다 히데히코를 경기 종료 30초 전 업어치기 절반으로 꺾고 압도적인 실력으로 생애 첫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994

[체중 조절 난항, 체급 변경 결정]

평소 체중 조절에 어려움을 겪으며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대표 자리를 맞수 윤동식에게 내주는 아쉬움을 겪었다. 이후 86kg급으로 체급을 올리는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늘 체중이 85kg를 넘어서 체중 조절에 고생했으며, 결국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는 윤동식 선수에게 대표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이 경험을 계기로 그는 86kg급으로 체급을 올리는 전환점을 맞았다.

[체육훈장 거상장 수훈]

세계 챔피언으로서의 기량과 국가대표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체육훈장 거상장을 수훈했다.

뛰어난 유도 실력과 국가대표로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체육훈장 거상장을 받았다.

1995

[체급 올려 세계선수권 2연패, 2체급 석권!]

체급을 올린 후, 일본 지바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5경기 연속 한판승을 기록하며 대회 2연패와 2체급 석권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특히 결승에서 요시다 히데히코에게 다시 한판승을 거뒀다.

86kg급으로 체급을 올린 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5경기 모두 한판승으로 상대를 제압하며, 대회 2연패와 동시에 두 체급을 석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결승전에서는 다시 만난 요시다 히데히코를 경기 시작 2분 46초 만에 업어치기-밭다리후리기 연계 기술로 한판승을 거두며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아시아 유도 선수권 금메달 획득]

뉴델리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86kg급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아시아 최강자임을 입증했다.

1995년 뉴델리에서 열린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86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아 무대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획득!]

애틀랜타 올림픽 86kg급에서 1회전 판정승 외 모든 경기를 한판승으로 장식하며 금메달을 획득, 올림픽 챔피언의 영광을 안았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86kg급에서 1회전 마르크 하위징아 선수와의 경기에서 3-0 판정승을 거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경기를 한판승으로 이기며 금메달을 획득, 꿈에 그리던 올림픽 정상에 올랐다.

[아시아 선수권 동메달]

호찌민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86kg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1996년 호찌민에서 열린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86kg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아 무대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1997

[세계선수권 3연패! 유도 역사에 새긴 대기록]

프랑스 파리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초반 3연속 한판승을 포함, 상대들을 압도하며 금메달을 획득, 세계선수권 3연패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다.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초반 3연속 한판승을 포함하여 모든 상대를 여유롭게 압도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로써 세계선수권 대회 3연패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세우며 유도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동아시아 경기 대회 은메달]

부산 동아시아 경기 대회 86kg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7년 부산에서 열린 동아시아 경기 대회 86kg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서의 꾸준한 기량을 선보였다.

1999

[전설적인 유도 선수 생활 은퇴]

한국마사회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며 정든 매트를 떠났다.

1999년 한국마사회 소속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하며, 화려했던 유도 선수 경력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3

[경기대학교 박사 학위 취득]

경기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문적인 역량을 쌓았다.

은퇴 후 학업에 매진하여 2003년 경기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전문성을 강화했다.

2005

[용인대학교 유도학과 교수 임용]

용인대학교 유도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개교 51년 만에 비 용인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유도학과 교수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2005년 용인대학교 유도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이는 1953년 개교 이래 51년 만에 처음으로 용인대학교 출신이 아닌 인물이 유도학과 교수로 부임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최고 영예, 체육훈장 청룡장 수훈]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최고 등급의 체육훈장인 청룡장을 수훈했다.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최고 등급의 체육훈장인 청룡장을 수훈했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코치 참여]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참가하며 후배 양성에 힘썼다.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에 대한민국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참여하여 선수들을 지도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코치 참여]

베이징 하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참가하며 선수들의 선전을 도왔다.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에 대한민국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참가하여 후배 선수들의 기량 향상과 좋은 성적을 위해 노력했다.

2016

[영화 '형' 유도 해설자 특별 출연]

영화 '형'에 유도 해설자 역으로 특별 출연하며 대중에게도 친숙한 모습을 보였다.

2016년 개봉한 영화 '형'에 유도 해설자 역으로 특별 출연하여 색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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