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 (양궁 선수)
양궁 선수, 체육인, 대학교수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7- 16:45:32
대한민국 양궁이 세계 최강의 자리를 굳히기 시작한 1988년, 그 중심에는 열여덟 살의 천재 신궁 박성수가 있었습니다. 서울 올림픽에서 개인전 은메달과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전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한 그는, 이후 아시안게임 평정까지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선수 생활 은퇴 후에도 그는 활시위를 놓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로서 후배들을 이끌고, 강단에서 이론을 전파하는 교수로 변신하며 한국 양궁의 질적 성장을 견인해 왔습니다. 이 연혁은 한 명의 선수가 어떻게 한 종목의 전설이 되고, 다시 그 종목의 뿌리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1970
대한민국 양궁의 황금기를 열어젖힌 박성수는 전라남도 영암군 출신입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전남 지역의 체계적인 엘리트 체육 시스템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이후 광주로 거처를 옮겨 본격적인 양궁 선수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1983
중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며 지역 내 유망주로 손꼽혔습니다.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디며 신체적 조건과 집중력을 길러나갔습니다.
이 시기의 꾸준한 훈련이 훗날 고교생 국가대표라는 영광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86
광주체육고등학교는 수많은 국가대표를 배출한 양궁의 요람입니다.
이곳에서 전문적인 코칭을 받으며 기술의 정교함을 더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선배들을 압도하는 실력을 보여주며 주목받았습니다.
1987
쟁쟁한 성인 선수들을 제치고 고등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당시 박성수의 선발은 양궁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세대교체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올림픽을 향한 집중적인 강화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1988
박성수, 전인수, 이한섭이 팀을 이뤄 이탈리아와 미국을 꺾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대한민국 남자 양궁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박성수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의 핵심 멤버로서 흔들림 없는 집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결승전에서 제이 바스에게 단 2점 차로 패하며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이는 한국 남자 양궁 개인전 사상 당시 최고의 성적이었습니다.
고교생으로서 세계 2위에 오른 박성수의 모습은 전 세계 양궁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올림픽에서 국위를 선양한 박성수에게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는 그의 탁월한 기량과 국가에 대한 헌신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고교생 신분으로 훈장을 받는 드문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1989
올림픽 영웅의 입학으로 조선대학교 양궁부는 전국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에도 꾸준히 국가대표 자격을 유지하며 각종 국내외 대회를 휩쓸었습니다.
그는 운동선수로서뿐만 아니라 학생으로서의 본분에도 충실했습니다.
1990
양창훈, 김선빈과 함께 팀을 이뤄 완벽한 경기력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올림픽에 이어 아시안게임까지 석권하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궁사임을 증명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박성수는 메이저 대회를 잇달아 정복하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1991
국제 양궁 연맹이 주관하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주력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며 꾸준한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박성수의 안정적인 기록은 한국 양궁이 세계 무대에서 독주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1992
당시 한국 양궁의 선발전은 본선보다 어렵기로 유명했습니다.
박성수는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부담감을 안고 다시 한번 사선에 섰습니다.
비록 바르셀로나 본선행은 좌절되었으나, 선발 과정 자체만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1993
고향인 광주를 대표하는 실업팀에 합류하여 지역 스포츠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실업팀 선수로서 연간 수많은 국내 대회를 소화하며 기록 행진을 계속했습니다.
팀 내에서도 압도적인 에이스로 군림하며 팀의 성적을 책임졌습니다.
4년간의 대학 생활을 마치고 성인 무대로 진출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대학 시절 그는 팀의 주장이자 맏형으로서 팀원들을 훌륭히 이끌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여러 실업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게 됩니다.
1994
비록 대회마다 결과는 달랐으나 박성수는 언제나 대표팀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그의 성실함은 후배 선수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양궁 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매일 수백 발의 화살을 날렸습니다.
1995
실업 무대에서도 그의 기량은 녹슬지 않았습니다.
거리별 기록과 종합 순위에서 상위권을 휩쓸며 국내 최고의 궁사 중 한 명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광주시청의 전성기를 이끌며 팀에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선사했습니다.
1997
선수 생활 중에도 이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양궁 기술과 심리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시작하며 향후 지도자로 나아갈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연구는 양궁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999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태극마크와 실업팀 에이스로 활약한 뒤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많은 팬이 아쉬워했으나, 그는 더 넓은 양궁의 세계를 위해 제2의 인생을 계획했습니다.
대한민국 양궁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전설의 첫 퇴장이었습니다.
자신이 성장했던 곳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만의 노하우와 섬세한 코칭으로 조선대 양궁부의 전력을 강화했습니다.
그의 부임 이후 조선대 양궁부는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2001
단순한 기술 지도를 넘어 양궁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해 매진했습니다.
지도자 생활과 연구를 병행하는 고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양궁 선수 출신으로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드문 전문가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2003
선수 시절 몸담았던 팀의 사령탑으로 돌아왔습니다.
데이터 기반의 훈련법과 선수 맞춤형 지도로 광주시청을 전국 최강팀으로 만들었습니다.
감독으로서의 리더십을 증명하며 행정적 감각도 키워나갔습니다.
2004
스포츠 스타 출신이 정규직 교수로 임용된 모범적인 사례로 꼽혔습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그의 강의는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양궁뿐만 아니라 생활 체육 전반의 발전과 후학 양성에 전념했습니다.
2005
오랜 연구 끝에 양궁 관련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거머쥐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것은 체육계에서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양궁 연구의 권위자로서 활발한 학술 활동을 이어갑니다.
2008
선배 올림픽 챔피언으로서 대표팀 선수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었습니다.
현장의 기류를 분석하고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수했습니다.
한국 양궁이 올림픽에서 금빛 화살을 쏘아 올리는 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헌했습니다.
2010
전남도립대학교에서 학생처장, 기획처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습니다.
학교 행정 전반을 경험하며 교육 시스템의 개선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의 행정력은 양궁을 넘어 대학 사회 전체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2013
선수와 감독 시절의 경험을 살려 지역 양궁 꿈나무 육성에 힘썼습니다.
효율적인 행정 처리를 통해 협회의 기틀을 탄탄하게 다졌습니다.
광주가 대한민국 양궁의 메카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15
고향에서 열린 국제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경기장 시설부터 운영 전반에 걸쳐 올림픽 챔피언의 안목으로 자문했습니다.
대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며 그의 행정적 능력은 다시 한번 빛을 발했습니다.
2016
해박한 이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양궁 경기의 흐름을 명쾌하게 해설했습니다.
대중에게 양궁의 규칙과 관전 포인트를 쉽게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통찰력 있는 분석은 양궁 종목의 인기를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2018
원로 체육인이자 교수로서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공정한 선발 시스템과 폭력 없는 훈련 환경 조성을 위해 앞장섰습니다.
박성수의 도덕적 위상은 체육계 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2021
후배들이 자신의 기록을 넘어 세계 정상을 지키는 모습에 큰 자부심을 나타냈습니다.
각종 인터뷰를 통해 한국 양궁 시스템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박성수는 여전히 한국 양궁 패밀리의 든든한 어른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2023
생활체육의 저변 확대와 고령화 시대의 스포츠 복지에 관심을 두고 연구 중입니다.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며 양궁뿐만 아니라 일반 체육학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의 연구는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2024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서 존경받는 학자로, 그가 걸어온 길은 수많은 운동선수의 이정표가 됩니다.
지역 사회 스포츠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여전히 자문과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박성수의 화살은 이제 금메달이 아닌, 한국 스포츠의 밝은 미래를 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