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섭

권투 선수, 올림픽 메달리스트,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스포츠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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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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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 선수, 올림픽 메달리스트,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스포츠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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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복싱의 전설, 신준섭은 1984년 LA 올림픽 미들급에서 한국 복싱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역사를 썼습니다. 이후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추가하며 뛰어난 기량을 증명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한국 복싱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의 끊임없는 도전과 활약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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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신준섭의 탄생]

전라북도 남원군 대산면 길곡리에서 신병일과 이병순 부부의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3년 6월 17일 전라북도 남원군 대산면 길곡리에서 신병일과 이병순 부부의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80

[권투에 입문하다]

남원농업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0년, 친구들의 권유로 권투를 시작했으며 김재봉에게 지도를 받았다.

남원농업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80년에 친구들의 권유로 권투를 시작했으며, 남원종합체육관에서 권투를 가르치던 김재봉에게 권투를 배웠다.

1982

[엘리트 선수로 발돋움]

체육특기생으로 원광대학교에 진학하며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되었다.

1982년 체육특기자로 원광대학교에 진학하였고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되었다.

[첫 국제 대회 동메달 획득]

핀란드 탐페레에서 열린 탐메르 국제 토너먼트에 첫 국제 대회로 출전하여 미들급 동메달을 획득했다.

1982년 10월 핀란드 탐페레에서 열린 탐메르 국제 토너먼트에 참가하며 국제 대회 첫 출전을 이뤘으며, 미들급 동메달을 획득했다.

1983

[킹스컵 은메달]

태국 방콕에서 열린 킹스컵에 참가하여 소련의 아실베크 킬리모프의 뒤를 이어 미들급 은메달을 획득했다.

1983년 4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킹스컵에 참가했으며, 소련의 아실베크 킬리모프의 뒤를 이어 미들급 은메달을 획득했다.

[국제 무대에서의 경험]

일본 도쿄에서 열린 AIBA 챌린지 매치에 참가하였으나 쿠바의 베르나르도 코마스에게 패했다.

1983년 5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 복싱 협회(AIBA) 챌린지 매치에 참가하였으며, 쿠바의 베르나르도 코마스에게 패했다.

[국제 월드컵 제패]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복싱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노에 크루차니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83년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노에 크루차니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84

[체육훈장 청룡장 수훈]

올림픽 금메달 획득의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1984년 올림픽 금메달 획득으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현역 생활의 첫 은퇴]

1984년 올림픽 직후 학업과 지도자 교육을 위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1984년 올림픽 직후 학업과 지도자 교육을 이수하기 위해 은퇴를 선언했다.

[대통령배 우승]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대통령배에서 소련의 세르게이 바실렌코를 꺾고 우승했다.

1984년 2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대통령배에서 소련의 세르게이 바실렌코를 꺾고 우승했다.

[로스앤젤레스 챌린지 매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AIBA 챌린지 매치에 참가했으나 쿠바의 코마스에게 다시 패했다.

1984년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AIBA 챌린지 매치에 참가하였으며, 쿠바의 코마스에게 패했다.

[대한민국 최초 올림픽 복싱 금메달!]

로스앤젤레스 하계 올림픽 미들급 결승에서 개최국 미국의 버질 힐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1984년 7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1984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올림픽 출전을 이루어냈다. 그는 첫 상대로 우간다의 패트릭 리한다를 5-0으로 꺾었으며, 캐나다의 릭 더프와 나이지리아의 제리 오코로두두를 4-1로 꺾었다. 준결승에서도 푸에르토리코의 아리스티데스 곤살레스를 4-1로 꺾었으며, 결승에서 개최국 미국의 버질 힐을 만나 3-2로 꺾으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5

[다시 링으로 돌아오다]

1985년 11월, 현역으로 복귀를 선언하며 다시 링에 오를 준비를 했다.

1984년 올림픽 직후 학업과 지도자 교육을 이수하기 위해 은퇴를 선언했으나 1985년 11월에 현역으로 복귀했고, 1986년에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1986

[국가대표 복귀]

현역 복귀 후 1986년에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국제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다.

1985년 11월에 현역으로 복귀했고, 1986년에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세계 선수권 대회 첫 출전]

미국 리노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으나 첫 상대인 동독의 헨리 마스케에게 패하여 탈락했다.

1986년 5월 미국 리노에서 열린 1986년 세계 아마추어 복싱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으나 첫 상대인 동독의 헨리 마스케에게 패하여 탈락했다.

[서울 아시안 게임 금메달]

서울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미들급 결승에서 태국의 나롱 인프롬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다시 한번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1986년 9월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1986년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으며, 결승에서 태국의 나롱 인프롬을 5-0으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선수 생활의 최종 마무리]

1986년 12월,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공식적으로 최종 은퇴를 선언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 이후 그 해 12월에 은퇴를 선언했다.

1987

[모교에서 지도자의 길 걷다]

모교인 원광대학교에서 조교와 강사로 일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선수 은퇴 이후 모교인 원광대학교에서 조교와 강사로 일했으며, 1992년부터 대한민국 권투 대표팀 코치를 맡기 전까지 활동했다.

1992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약]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권투 대표팀 코치를 맡아 국가대표 선수들을 지도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권투 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1996

[미국 애틀랜타에서 새로운 도전]

1996년 애틀랜타 하계 올림픽을 계기로 미국 애틀랜타로 이주하여 청소 용역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코치로 일하던 도중에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1996년 하계 올림픽을 계기로 애틀랜타로 이주하며 청소 용역 회사를 운영했다.

2018

[고향 팀 감독으로 복귀]

귀국 후 2018년에 남원시청 복싱팀 감독을 맡아 고향 팀을 이끌게 되었다.

귀국 후인 2018년에 남원시청 복싱팀 감독을 맡았다.

2021

[지역 스포츠 행정가로 활약]

2021년부터 전라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을 맡으며 지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2021년부터 전라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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