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우 영감
시사만화, 네컷 만화, 만화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9- 00:21:51
대한민국 언론사상 최장기 연재 기록을 세운 대표 시사만화입니다. 김성환 화백이 1950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50년간 연재하며 시대를 풍자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2012년에는 원화가 문화재로 등록되며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기록이자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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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고바우 영감> 첫 연재 시작]
<고바우 영감>이 주간지 <만화신보>에서 처음으로 독자들에게 공개되며 연재를 시작했다. 이는 한국 시사만화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대장정의 첫걸음이었다.
김성환 화백의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이 1950년 주간지 <만화신보>를 통해 세상에 첫선을 보이며, 50년에 걸친 긴 여정의 막을 올렸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만화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시작점으로 기록된다.
1955
[동아일보 연재 개시]
<고바우 영감>이 동아일보로 연재처를 옮겨 본격적으로 대중과 만나기 시작하며, 대한민국 언론사상 최장기 연재의 서막을 열었다.
주간지 <만화신보>를 통해 첫선을 보였던 <고바우 영감>이 1955년 2월 1일, 동아일보에서 네컷 만화 연재를 시작했다. 이는 한국 언론사상 전무후무한 최장기 연재 기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고바우 영감>이 전국적인 인기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1980
<고바우 영감>이 1980년에 동아일보를 떠나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겨 연재를 이어갔다. 연재 지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며 시사만화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1987
1987년 5월, <고바우 영감>은 연재 1만회를 돌파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는 대한민국 언론사상 전례 없는 기록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풍자와 해학으로 대중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이 기록은 <고바우 영감>의 역사적 위상을 확고히 했다.
1992
김성환 화백은 1992년 조선일보에서 정년 퇴직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바우 영감>의 연재를 멈추지 않고 문화일보로 옮겨 다시금 독자들과 만났다. 이는 화백의 꺾이지 않는 창작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자, <고바우 영감>의 끊임없는 생명력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2000
[<고바우 영감> 연재 종료]
1만 4139회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기며, 50년간 대한민국 현대사의 희로애락을 담아냈던 <고바우 영감>의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2000년 9월 29일, <고바우 영감>은 1만 4139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50년에 걸친 긴 연재를 마쳤다. 이는 대한민국 언론사상 최장기 연재 네컷 만화 기록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연재 종료 소식은 많은 독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탄생 50주년 기념 우표 발행]
<고바우 영감>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하여 우표가 발행되며, 국민 만화로서 그 위상과 대중적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고바우 영감> 탄생 50주년을 맞은 2000년 11월 1일, 한국조폐공사에서 기념 우표가 발행되었다. 이는 <고바우 영감>이 단순한 만화를 넘어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2012
[<고바우 영감> 원화 문화재 등록 예고]
문화재청이 <고바우 영감> 원화를 대한민국 현대사 연구 및 학술적, 사료적 가치를 인정하여 문화재로 등록 예고하며 그 역사적 의미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문화재청은 2012년 12월 20일, <고바우 영감>의 원화 1만 743매를 작품성, 캐릭터 가치, 현대사 연구를 위한 학술적, 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이는 만화가 단순한 오락이 아닌 중요한 문화유산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사례 중 하나로, <고바우 영감>의 위상을 한층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