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축구 클럽, 프로 축구단, 스포츠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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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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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축구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1878년 창단 이후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불굴의 정신으로 성공 신화를 써왔습니다. '버즈비의 아이들'부터 '퍼거슨 시대'에 이르기까지, 프리미어리그 최다 우승과 잉글랜드 팀 최초 유러피언컵 우승 등 빛나는 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살아있는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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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

[뉴턴 히스 LYR FC 창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역사는 랭커셔 요크셔 철도 뉴턴 히스 지부의 실업팀인 '뉴턴 히스 LYR FC'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유니폼은 녹색과 노란색의 독특한 조합이었죠.

1878년 3월 5일, 랭커셔 요크셔 철도 뉴턴 히스 지부 실업팀으로 '뉴턴 히스 LYR F.C.'가 설립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유니폼은 현재와 달리 녹색과 노란색을 좌우 대칭으로 넣은 디자인이었다.

1892

[Newton Heath F.C.로 명칭 변경 및 풋볼 리그 참가]

클럽은 철도 지부와의 관계를 끊고 독립적인 'Newton Heath F.C.'로 이름을 바꾸며 풋볼 리그에 참가하여 프로 구단으로의 전환을 알렸습니다.

1892년, 클럽은 철도 지부와의 관련을 끊고 'Newton Heath F.C.'로 명칭을 변경하며 독립적인 클럽으로 변모하였다. 이와 함께 풋볼 리그(The Football League)에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190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개명 확정]

2500파운드의 부채 위기에서 J. H. 데이비스의 투자로 회생한 클럽은, 이탈리아계 후손 루이스 로카의 제안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며, 붉은색과 흰색의 새 유니폼을 채택하며 재창단합니다.

1902년 2500파운드의 부채로 클럽이 위기에 빠졌으나, J. H. 데이비스의 투자로 회생할 수 있었다. 이때 클럽의 명칭과 관련하여 여러 제안 중 루이스 로카가 제안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결정되었고, 4월 26일 개명이 확정되었다. 데이비스는 기존의 녹색과 금색 유니폼 대신 붉은색과 흰색으로 유니폼을 변경했다.

[어니스트 만그날 사무장 임명]

제임스 웨스트 감독 사임 후 어니스트 만그날이 사무장으로 임명되어 팀의 1부 리그 승격을 목표로 삼았고, 선수 영입을 통해 팀 재건에 나섰습니다.

1902년 9월 28일, 제임스 웨스트가 감독직을 사임한 후 어니스트 만그날이 사무장으로 임명되어 1부 리그로의 승격 임무를 맡게 되었다. 만그날은 해리 모거, 딕 더크워스, 존 피켄, 찰리 로버츠 등을 영입하며 팀을 강화했다.

1906

[1부 리그 승격]

어니스트 만그날 사무장의 지휘 아래 선수단을 개편한 맨유는 1905-06 시즌 2부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하며 마침내 1부 리그 승격에 성공합니다.

어니스트 만그날의 지휘 아래 찰리 로버츠 등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한 맨유는 1905-06 시즌 2부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하여 마침내 1부 리그로 승격하였다.

1908

[클럽 역사상 최초 리그 우승]

1부 리그 승격 후 2년 만에 맨유는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강팀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190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클럽 역사상 최초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팀의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했다.

1909

[FA컵 최초 우승]

리그 우승에 이어 맨유는 잉글랜드 축구의 최고 권위 있는 대회인 FA컵에서도 첫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 최고의 클럽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잉글랜드 축구계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1910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 시대 개막]

'꿈의 극장'이라 불리는 올드 트래퍼드로 홈구장을 이전하며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개막전은 리버풀 FC와의 경기로 치러졌습니다.

1910년 2월 19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버풀 FC를 상대로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첫 경기를 치르며 새로운 홈구장 시대를 열었다. 이 경기장은 영국 축구장의 아버지라 불리는 건축가 아치볼드 레이치가 설계했다.

1911

[풋볼 리그 1부 우승]

홈구장을 올드 트래퍼드로 이전한 맨유는 1910-11 시즌 또 한 번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강팀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했습니다.

1910-11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팀의 성공적인 시대를 이어갔다.

1922

[2부 리그 강등]

맨유는 1922년에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이는 잠시의 시련일 뿐이었습니다.

1922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부 리그로 강등되는 경험을 했다.

1925

[1부 리그 복귀]

강등의 아픔을 딛고 맨유는 1925년 1부 리그로 복귀하며 다시 한번 상위 리그에서 경쟁을 시작했습니다.

192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부 리그에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1931

[다시 2부 리그 강등]

1부 리그 복귀 후 6년 만에 맨유는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되며 '요요 클럽'이라는 별명을 얻게 될 정도로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1931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또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되며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는 '요요 클럽'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1939

[1부 리그 안정기 진입]

1938-39 시즌 14위를 기록한 이래 맨유는 1부 리그에 안정적으로 머물기 시작하며 오랜 혼란기를 벗어났습니다.

1938-39 시즌 14위를 차지한 이후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부 리그에 안정적으로 머물기 시작하며 팀의 기반을 다졌다.

1941

[올드 트래퍼드, 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파괴]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가 나치 독일의 폭격을 받아 심하게 파괴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1941년 3월 11일,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폭격으로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후 1949년에 재건설에 착수했으며,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장을 임시로 사용해야 했다.

1945

[맷 버즈비 감독 선임, '버즈비의 아이들' 시대 개막]

맷 버즈비가 감독으로 부임하며 선수 선발, 이적, 훈련 방식 등 전권을 요구했고, 클럽은 이를 수용했습니다. 그는 유스 팀 선수들을 중용하며 '버즈비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황금기를 열었습니다.

1945년, 맷 버즈비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는 자신의 선수 선발권 및 선수 이적, 훈련 방법 등에서의 전권을 요구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의 요구에 동의했다. 버즈비는 유스 팀 선수들에 주목하여 1956년 팀 평균 나이가 22세에 불과했음에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 선수들은 '버즈비의 아이들'로 불리며 클럽 역사의 전환점을 가져왔다.

1948

[FA컵 우승]

맷 버즈비 감독 부임 후 맨유는 1947, 48, 49년에 리그 2위를 차지하는 등 꾸준한 성적을 거두었고, 1948년에는 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맷 버즈비 감독의 지휘 아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48년 FA컵을 우승하며 팀의 첫 번째 성공 시대를 열었다.

1956

['버즈비의 아이들' 리그 우승]

맷 버즈비 감독은 어린 유스 선수들을 중용하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팀 평균 나이 22세의 '버즈비의 아이들'과 함께 103골을 기록하며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맷 버즈비 감독이 육성한 유스 팀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버즈비의 아이들'은 팀 평균 나이가 22세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1956년 시즌 103골을 기록하며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클럽 역사상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58

[뮌헨 비행기 참사 발생]

유러피언컵 준결승행을 확정하고 귀국하던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가 뮌헨에서 이륙 실패로 충돌, 선수 8명과 코칭스태프 등 총 15명이 사망하는 클럽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고를 겪었습니다.

1958년 2월 6일, 유러피언컵 준결승행을 확정하고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귀국하던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가 중간 경유지인 뮌헨에서 이륙 중 실패하여 공항 경계벽에 충돌했다. 이 사고로 선수 8명과 코칭스태프를 포함해 총 15명이 사망했으며, 버즈비 감독 또한 중상을 입었으나 구조되었다.

1963

[FA컵 우승]

뮌헨 참사의 아픔을 딛고 재건에 힘쓴 맨유는 데니스 로 등의 영입과 젊은 선수 육성으로 다시 전력을 강화하여 1963년 FA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뮌헨 비행기 참사 이후 맷 버즈비 감독이 팀을 다시 정비하고 데니스 로 등을 영입하며 젊은 선수 육성에 주력한 결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63년 FA컵을 들어 올렸다.

1964

[데니스 로, 발롱도르 수상]

맨유의 핵심 공격수였던 데니스 로가 1964년 유럽 최고의 축구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클럽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1960년대 버즈비 시대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유럽 올해의 선수(발롱도르)를 3명이나 배출하는 기록을 세웠는데, 그 시작으로 1964년에 데니스 로가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1965

[리그 우승]

조지 베스트 등의 활약에 힘입어 맨유는 1965년과 1967년에 걸쳐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국내 최강팀으로 군림했습니다.

1960년대 초반 팀을 재정비한 맷 버즈비 감독의 지휘 아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65년에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1966

[보비 찰턴, 발롱도르 수상]

맨유의 전설적인 미드필더 보비 찰턴이 1966년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클럽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또 다른 스타로 빛났습니다.

1966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보비 찰턴이 유럽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클럽의 위상을 높였다.

1967

[리그 우승]

조지 베스트 등의 활약에 힘입어 맨유는 1965년과 1967년에 걸쳐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국내 최강팀으로 군림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67년에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뛰어난 성적을 이어갔다.

1968

[잉글랜드 축구팀 최초 유러피언컵 우승]

뮌헨 비행기 참사 10년째 되는 해, 맨유는 벤피카를 꺾고 잉글랜드 클럽 사상 최초로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을 들어 올리며 비극을 영광으로 승화시키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196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벤피카를 4:1로 꺾고 드디어 유러피언컵을 들어 올렸다. 이는 뮌헨 비행기 사고 10년째 되는 해였으며, 잉글랜드 클럽 사상 최초로 해당 대회를 우승하는 위대한 기록을 세웠다.

[조지 베스트, 발롱도르 수상]

'맨체스터의 영웅' 조지 베스트가 1968년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맨유는 1960년대에 세 명의 발롱도르 수상자를 배출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196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타 플레이어 조지 베스트가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클럽은 1960년대에 데니스 로(1964), 보비 찰턴(1966)에 이어 세 번째 발롱도르 수상자를 배출하는 영광을 안았다.

1969

[맷 버즈비 감독 사임]

뮌헨 참사 극복과 유러피언컵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맷 버즈비 감독이 1969년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버즈비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196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감독 맷 버즈비가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그의 시대가 마무리되었다. 리저브팀 감독이자 전 맨유 선수였던 윌프 맥기니스가 뒤를 이었다.

1974

[2부 리그 강등 및 '골든 트리오' 이탈]

토미 도허티 감독 체제에서 맨유는 1974년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으며, 이 시기에 조지 베스트, 데니스 로, 보비 찰턴 등 '골든 트리오'가 팀을 떠났습니다.

토미 도허티 감독은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하려 했으나, 1974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결국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이 시기에 클럽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조지 베스트, 데니스 로, 보비 찰턴 등 '골든 트리오'가 팀을 떠나며 암흑기를 맞았다.

1975

[1부 리그 복귀]

강등 직후 맨유는 다음 시즌 곧바로 1부 리그로 복귀하며 저력을 보여주었고, FA컵 준우승을 차지하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974년 강등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다음 시즌에 곧장 1부 리그로 복귀했으며, 스티브 코펠의 데뷔와 함께 FA컵 준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977

[FA컵 우승]

토미 도허티 감독의 지휘 아래 맨유는 숙적 리버풀을 2:1로 꺾고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팬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1977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버풀을 2:1로 꺾고 FA컵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토미 도허티 감독은 불륜 사건에 휘말려 해임되었다.

[데이브 섹튼 감독 부임]

토미 도허티 감독 해임 후, 데이브 섹튼이 1977년 여름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그의 수비적인 전술은 팬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토미 도허티 감독의 해임 후, 1977년 여름 데이브 섹튼이 그의 자리를 이었다. 섹튼은 수비적인 전술을 구사하여 버즈비와 도허티의 공격 전술을 선호했던 서포터들로부터 인기를 얻지 못했다.

1981

[론 앳킨슨 감독 부임]

데이브 섹튼 감독의 부진한 성적 끝에 론 앳킨슨이 감독 자리에 올랐고, 브라이언 롭슨을 당시 잉글랜드 역대 최고 이적료를 경신하며 영입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데이브 섹튼 감독이 1981년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자, 론 앳킨슨이 감독 자리에 올랐다. 그는 웨스트 브롬에서 브라이언 롭슨을 당시 잉글랜드 이적료 기록을 깨면서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데려왔다.

1983

[FA컵 우승]

론 앳킨슨 감독 체제에서 맨유는 1983년 FA컵을 차지하며 다시 한번 우승의 맛을 보았습니다.

론 앳킨슨 감독의 지휘 아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83년 FA컵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85

[FA컵 우승]

론 앳킨슨 감독은 1985년에도 FA컵을 우승하며 팀을 이끌었지만, 리그 우승에는 실패하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론 앳킨슨 감독 체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85년에도 FA컵을 차지하며 성공을 이어갔다. 그러나 1985-86 시즌 리그 초반 10연승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리버풀에 내주었다.

1986

[알렉스 퍼거슨 감독 부임]

론 앳킨슨 감독의 성적 부진으로 맨유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젊은 감독 알렉스 퍼거슨을 선임하며,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금기를 열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론 앳킨슨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해임된 후, 1986년에 알렉스 퍼거슨이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1991

[UEFA 컵위너스컵 및 FA 커뮤니티 실드 우승]

알렉스 퍼거슨 감독 체제에서 맨유는 1991년 UEFA 컵위너스컵과 FA 커뮤니티 실드를 우승하며 유럽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입증했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지휘 아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91년 UEFA 컵위너스컵과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유럽 무대에서 성공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1992

[EFL컵 우승]

맨유는 1992년 EFL컵(리그컵)에서 우승하며 퍼거슨 감독 시대의 우승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1992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EFL컵에서 우승하며 알렉스 퍼거슨 시대의 트로피 수집을 계속했다.

1993

[프리미어리그 원년 우승]

새로운 시대의 프리미어리그 개편 원년, 맨유는 초대 챔피언에 오르며 퍼거슨 감독 시대의 압도적인 지배력을 예고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개편 당시 원년 구단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92-93 시즌 프리미어리그 1위를 차지하며 초대 우승팀의 영예를 안았다. 이는 퍼거슨 감독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우승이었다.

1994

[FA컵 우승]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이어 맨유는 1994년 FA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 대회 강팀으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했습니다.

1994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FA컵에서 우승하며 국내 대회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1996

[FA컵 우승]

맨유는 1996년 FA컵에서 다시 한번 우승하며 퍼거슨 감독 체제에서 꾸준히 트로피를 수집했습니다.

1996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FA컵에서 우승하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성공적인 시대를 이어갔다.

1999

[역사적인 트레블 달성]

맨유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프리미어리그, FA컵, UEFA 챔피언스리그 3개 주요 타이틀을 모두 석권하는 '트레블'이라는 경이로운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 해 프리미어리그, 잉글랜드 FA컵 3개의 주요 타이틀을 석권하여 이른바 '트레블'을 달성하는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2004

[FA컵 우승]

맨유는 2004년 FA컵에서 우승하며 꾸준히 국내 대회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2004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FA컵에서 우승하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 시대의 영광을 이어갔다.

2006

[EFL컵 우승]

맨유는 2006년 EFL컵에서 우승하며 또 다른 국내 트로피를 추가했습니다.

2006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EFL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07

[세계 스포츠 구단 가치 1위 기록]

조선일보의 세계 스포츠 구단 평가에서 맨유는 1달러의 평가를 받아 전 세계 축구단 중에서 1등을 기록하며 그 압도적인 브랜드 가치를 입증했습니다.

2007년, 조선일보의 세계 스포츠 구단 평가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달러의 평가를 받아 전 세계 축구단 중 1위를 기록하며 그 엄청난 가치를 증명했다.

2008

[FIFA 클럽 월드컵 및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맨유는 2008년에 FIFA 클럽 월드컵과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우승하며 세계와 유럽을 동시에 제패하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200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FIFA 클럽 월드컵과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며 세계 및 유럽 무대에서 최고의 팀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2009

[EFL컵 우승]

맨유는 2009년 EFL컵에서 우승하며 퍼거슨 감독 시대의 영광을 이어갔습니다.

20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EFL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0

[EFL컵 우승]

맨유는 2010년 EFL컵에서 다시 한번 우승하며 컵 대회 강팀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2010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EFL컵에서 우승하며 컵대회에서의 강세를 이어갔다.

2011

[프리미어리그 최다 우승 기록 경신]

2010-11 시즌 프리미어리그 1위를 차지하며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상 19번째 1부 리그 우승을 기록, 기존 리버풀이 가지고 있던 기록과 같은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2010-11 시즌 프리미어리그 1위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상 19번째 1부 프로축구리그 우승을 기록하며, 기존에 리버풀 FC가 갖고 있던 기록과 같은 기록을 경신했다.

[알렉스 퍼거슨 경 스탠드 명명]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25주년을 기념하여 올드 트래퍼드의 북쪽 스탠드가 '알렉스 퍼거슨 경 스탠드'로 명명되며 그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2011년 11월 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알렉스 퍼거슨 경의 감독 25주년을 기념하여 북쪽 스탠드의 이름을 '유나이티드 로드 스탠드'에서 '알렉스 퍼거슨 경 스탠드(Sir Alex Ferguson Stand)'로 변경하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2012

[쉐보레와 유니폼 후원 계약 체결]

맨유는 2014-2015 시즌부터 7년간 연간 8000만 파운드, 총 5억 5900만 파운드에 달하는 대규모 쉐보레 유니폼 후원 계약을 체결하며 상업적 가치를 입증했습니다.

2012년 8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쉐보레와 새로운 유니폼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은 2014-2015 시즌부터 총 7년간 연간 8000만 파운드, 총 5억 5900만 파운드를 받는 조건으로 체결되었다.

2013

[알렉스 퍼거슨 감독 은퇴]

2012-13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끝으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27년간의 위대한 여정을 마무리하며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는 맨유 역사상 가장 큰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2012-13 시즌을 끝으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27년간의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놓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에 한 시대를 마무리 지었다.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 부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뒤를 이어 에버튼을 이끌던 데이비드 모예스가 6년 계약을 맺고 맨유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며 '포스트 퍼거슨' 시대의 막을 올렸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물러난 다음날, 2013년 7월 1일부터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6년 계약을 맺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직을 수행하게 된다고 발표되었다.

2014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 경질]

모예스 감독 부임 후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타이틀 방어 실패와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미확보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2014년 4월 22일 전격 경질되었습니다.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 부임 이후 프리미어리그 타이틀 방어 실패,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미확보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2014년 4월 22일 결국 모예스 감독이 경질되었다. 라이언 긱스가 임시 감독으로 부임했다.

[루이 판 할 감독 선임]

모예스 감독 경질 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출신의 루이 판 할이 3년 계약을 맺고 맨유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라이언 긱스가 수석코치로 임명되었습니다.

2014년 5월 19일, 경질된 데이비드 모예스와 임시 감독 라이언 긱스의 뒤를 이어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출신의 루이 판 할이 3년 계약을 맺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라이언 긱스는 팀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아디다스와 프리미어리그 최대 규모 용품 후원 계약 체결]

맨유는 2015-2016 시즌부터 10년간 독일 아디다스로부터 매년 7500만 파운드, 총 7억 5000만 파운드에 달하는 프리미어리그 최대 규모의 용품 후원 계약을 체결하며 클럽의 막강한 상업적 가치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2014년 7월 1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15-2016 시즌부터 10년간 독일 스포츠용품 제조업체 아디다스로부터 매년 7500만 파운드 규모의 후원을 받게 되는 계약을 체결했다. 총액은 7억 5000만 파운드에 달하며, 이 후원 금액은 프리미어리그 최대 후원 금액으로 1위를 차지했다.

2016

[FA컵 우승]

루이 판 할 감독 체제에서 맨유는 FA컵에서 크리스털 팰리스를 꺾고 12년 만에 FA컵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퍼거슨 감독 은퇴 후 첫 우승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루이 판 할 감독의 지휘 아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크리스털 팰리스를 꺾고 12년 만에 FA컵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알렉스 퍼거슨 경 은퇴 이후 팀의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리그에서는 5위,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탈락으로 판 할 감독은 해임되었다.

[조세 무리뉴 감독 선임]

루이 판 할 감독 해임 후, 첼시,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 등에서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스페셜 원' 조세 무리뉴가 구단과 3년 계약을 맺고 맨유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2016년 5월 27일, 루이 판 할 감독 해임 후 첼시,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레알 마드리드 CF 등에서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조세 무리뉴가 구단과 3년 계약을 맺으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을 맡아 지휘하게 되었다.

2017

['미니 트레블' 달성 및 웨인 루니 통산 최다 득점 기록 경신]

무리뉴 감독 첫 해, 맨유는 FA 커뮤니티 실드, 유로파리그, EFL컵을 우승하며 '미니 트레블'을 달성했습니다. 또한 웨인 루니는 맨유 통산 250호 골을 터뜨려 보비 찰턴 경을 제치고 구단 역대 득점 1위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조세 무리뉴 감독이 맨유 감독으로 부임한 첫 해, 리그에서는 6위를 기록하였지만 FA 커뮤니티 실드, 유로파리그, EFL컵 우승을 이뤄내며 '미니 트레블'을 달성했다. 이 시즌 웨인 루니는 맨유에서 통산 250호 골을 터뜨려 보비 찰턴 경을 제치고 맨유의 역대 득점 1위에 올랐다.

[구단 가치 세계 2위 기록]

맨유는 1달러(약 2176원)의 구단 가치를 기록하며 전 세계 축구 클럽 중 두 번째로 높은 가치를 지닌 클럽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2017년 7월 13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달러(2176원)의 구단 가치를 기록하여 두 번째로 높은 가치를 지닌 축구 클럽으로 이름을 올렸다.

2018

[유럽에서 세 번째로 비싼 풋볼 클럽 선정]

KPMG로부터 지난해보다 5% 상승한 28억 유로(약 871원)로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비싼 풋볼 클럽으로 선정되었습니다.

2018년 5월 23일, 글로벌 회계·컨설팅 회사 KPMG로부터 지난해보다 5% 상승한 28억 유로(약 871원)로 레알 마드리드(29억 유로)와 FC 바르셀로나(30억 유로)를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비싼 풋볼 클럽으로 선정되었다.

[조세 무리뉴 감독 경질]

선수 영입 갈등, 불화설, 성적 부진 등 잡음이 끊이지 않던 무리뉴 감독은 리버풀 원정 경기에서 1:3으로 패한 뒤 2018년 12월 18일 경질되며 그의 맨유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18-19 시즌 선수 영입 과정에서의 갈등, 선수들과의 불화설, 성적 부진 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던 조세 무리뉴 감독은 2018년 12월 17일 리버풀과의 더비 매치 원정경기에서 3:1로 패한 뒤, 다음 날인 12월 18일 경질되었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임시 감독을 맡았다.

2019

[올레 군나르 솔샤르 정식 감독 승격]

임시 감독으로 부임 후 17경기 14승 2무 1패의 호성적과 파리 생제르맹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는 '파리의 기적'을 선보이며, 솔샤르는 2019년 3월 28일 맨유의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습니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임시 감독으로 부임한 이래 17경기 동안 14승 2무 1패를 기록하는 호성적을 거두었으며, 2019년 3월 7일 파리 생제르맹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2차전 경기에서 3-1 승리를 거둬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5시즌 만에 8강에 오르는 '파리의 기적'을 선보였다. 이에 힘입어 2019년 3월 2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였다.

[해리 매과이어 영입 및 첼시전 4-0 대승]

역대 최고 이적료를 경신하며 해리 매과이어를 영입한 맨유는 2019-20 시즌 리그 개막전 첼시와의 홈 경기에서 무려 25년 만에 4-0 대승을 거두며 성공적인 시즌 출발을 알렸습니다.

2019-20 시즌을 앞두고, 맨유는 로멜루 루카쿠와 에레라 등을 내보내고 대니얼 제임스, 에런 완비사카를 영입했다. 특히, 취약 부분인 중앙 수비 강화를 위해 해리 매과이어를 역대 최고 이적료를 갱신하며 영입에 성공했다. 2019년 8월 12일 첼시와의 리그 홈 개막전 경기에서 무려 25년 만에 4-0 대승을 거두었다.

2020

[브루노 페르난데스, 오디온 이갈로 영입 및 11경기 무패 행진]

겨울 이적 시장에서 브루노 페르난데스와 오디온 이갈로를 영입한 맨유는 두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분위기 반전에 성공, 11경기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팀을 재정비했습니다.

2020년 1월 겨울 이적 시장 때, 스포르팅에서 뛰던 브루노 페르난데스와 상하이 선화에서 뛰던 오디온 이갈로를 데려왔다. 브루노와 이갈로의 영입 효과로 맨유는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며 11경기 무패를 달렸다.

2022

[에릭 텐하흐 감독 선임]

랄프 랑니크 임시 감독 체제 이후, 아약스를 이끌던 에릭 텐하흐가 맨유의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며 팀의 재건을 위한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솔샤르 감독 이후 랄프 랑니크 임시 감독 체제에서도 성적이 좋지 않자, 2022-23 시즌을 앞두고 AFC 아약스를 이끌던 에릭 텐하흐를 맨유의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2023

[EFL 컵 우승]

에릭 텐하흐 감독 체제에서 맨유는 EFL 컵 결승전에서 뉴캐슬을 2-0으로 물리치고 6년 만에 우승 타이틀을 따내며 새로운 성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2023년 2월 27일, 에릭 텐하흐 감독 체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EFL 컵 결승전에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를 2-0으로 물리치고 6년 만에 우승 타이틀을 따냈다.

[프리미어리그 3위 및 챔피언스리그 진출 확정]

맨유는 첼시와의 홈 경기에서 4-1 승리를 거두며 프리미어리그 3위를 기록, 다음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확정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습니다.

2023년 5월 2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22-2023 프리미어리그 37라운드 홈 경기에서 첼시를 4-1로 꺾고 3위를 기록하며 다음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확정지었다. 최종전 풀럼전 승리로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FA컵 준우승]

프리미어리그 3위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맨유는 FA컵 결승에서 맨시티에게 1-2로 패하여 더블 달성에 실패하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2023년 6월 3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FA컵 결승에서 맨시티에게 1-2로 패하여 더블 달성에는 실패했다.

2024

[FA컵 우승]

최악의 시즌에도 불구하고, 맨유는 FA컵 결승에서 지역 라이벌 맨시티를 2-1로 누르고 13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반전을 만들어냈습니다.

2024년 5월 2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최악의 시즌(리그 8위)에도 불구하고 FA컵 결승에서 맨시티를 2-1로 누르고 13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시즌 후 마시알, 그린우드, 바란과 결별하고 텐 하흐 감독은 2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대규모 선수 영입 및 뤼트 판 니스텔로이 코치 합류]

랫클리프 체제에서 맨유는 레니 요로, 조슈아 지르크제이 등 대규모 선수 영입과 함께 과거 간판 골잡이였던 뤼트 판 니스텔로이를 코치진에 합류시키며 새로운 개혁을 예고했습니다.

2024년 8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릴 OSC의 레니 요로, 볼로냐 FC 1909의 조슈아 지르크제이, 바이에른 뮌헨의 마테이스 더 리흐트와 누사이르 마즈라위 등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또한 과거 맨유에서 활약했던 뤼트 판 니스텔로이와 르네 하케가 코치진으로 합류하며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2024-25 시즌 개막전 승리]

맨유는 2024-25 시즌 첫 경기인 풀럼과의 리그 경기에서 1-0 승리로 시즌을 시작하며 기대를 모았습니다.

2024년 8월 17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풀럼과의 2024-25 시즌 첫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시즌 첫 출발을 알렸다.

[에릭 텐하흐 감독 경질]

리그 14위까지 떨어지는 극심한 성적 부진으로 맨유는 2024년 10월 28일 에릭 텐하흐 감독을 경질하며 또다시 감독 교체를 단행했습니다.

2024년 10월 27일 웨스트 햄과의 리그 경기에서 1-2 패배로 리그 14위까지 떨어지는 등 성적 부진을 겪던 에릭 텐하흐 감독은 하루 뒤인 10월 28일 경질되었다.

[후벵 아모링 감독 선임 공식 발표]

텐하흐 감독 경질 후, 스포르팅 CP를 지휘하던 포르투갈 출신의 후벵 아모링이 2024년 11월 1일 맨유의 새로운 정식 감독으로 공식 발표되며 팀의 재도약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텐하흐 감독 경질 후, 2024년 11월 1일 스포르팅 CP를 지휘하고 있는 포르투갈 출신인 후벵 아모링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새로운 감독으로 공식 발표되었다. 그는 11월 11일에 팀에 합류할 예정이며, 그전까지 수석 코치인 판 니스텔로이가 감독 대행을 맡아 4승 1무의 성적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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