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부대
군사 부대, 생물학 무기 연구기관, 생체 실험 시설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8- 15:56:49
731부대는 일본 제국 육군 소속의 비밀 생물전 연구기관으로,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중국 하얼빈에서 잔혹한 생체 실험과 생화학 무기 개발을 자행했습니다. 수많은 민간인과 포로들이 '마루타'라는 이름으로 비인도적인 실험의 희생양이 되었으며, 이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범죄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전후 미국이 731부대의 연구 자료를 확보하는 대가로 관련자들의 전범 책임을 묵인하면서 그들의 만행은 오랫동안 은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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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
[이시이 시로의 비밀 연구 부대 창설]
이시이 시로가 ‘육군 전염병 예방 연구소’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베이인허에 종마 수용소를 건설하고, 화학 및 생물학 작전을 위한 비밀 연구 그룹인 ‘토고 부대’를 조직했습니다.
1932년, 이시이 시로는 '육군 전염병 예방 연구소'의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얼빈 남쪽 100km 떨어진 베이인허에 종마 수용소(지역에서는 종마 요새로 불림)를 만들었습니다. 이와 함께 화학 및 생물학 작전을 위한 비밀 연구 그룹인 '토고 부대'를 조직하여 생체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1935
[핑팡으로 시설 이전 및 확장]
탈옥 및 폭발 사건으로 종마 수용소를 폐쇄한 이시이 시로는 하얼빈 남쪽 핑팡으로 이동하여 훨씬 더 큰 규모의 새로운 시설을 건설했습니다.
1935년, 종마 수용소에서 탈옥과 폭발 사건이 발생하자 이시이 시로는 시설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후 하얼빈 시에서 남쪽으로 24킬로미터 떨어진 핑팡으로 이동하여 이전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새로운 연구 시설을 건설하며 부대의 확장을 꾀했습니다.
1936
[731부대 공식 설립]
일본 제국 육군 소속 관동군 예하 비밀 생물전 연구개발 기관인 731부대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초기에는 '관동군 방역급수부' 등으로 불렸습니다.
1936년, 중화인민공화국 하얼빈에 일본 제국 육군 소속 관동군 예하 비밀 생물전 연구개발 기관인 731부대가 설립되었습니다. 공식 명칭은 '관동군 검역급수부'였으며, 초기에는 '관동군 방역급수부'나 '동향부대'로 불리다가 이후 '731부대'로 개명되었습니다. 이 부대는 히로히토 칙령으로 설립된 유일한 부대였습니다.
1937
[중일 전쟁 중 생화학 무기 개발 및 생체 실험]
중일 전쟁이 시작된 1937년부터 1945년까지, 731부대는 생물·화학 무기 개발과 함께 치명적인 생체 실험을 자행했습니다.
1937년에 시작된 중일 전쟁 기간 동안, 731부대는 1945년까지 생물·화학 무기를 개발하고 잔혹한 생체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공식적으로는 '헌병대 정치부 및 전염병 예방 연구소' 또는 '방역과 급수에 대한 임무'로 위장하며 활동했습니다.
1938
[헌병대의 '마루타' 특별 이송 규정 도입]
일본 헌병대는 '특별 이송취급' 규정을 도입하여, 소련 정보활동, 항일 관련자 등을 체포해 731부대로 보내 '마루타'로 사용하도록 지시했습니다.
1938년 8월 26일, 일본 헌병대는 '특별 이송취급'이라는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이 규정은 소련에 대한 정보활동을 한 사람, 반만항일(反滿抗日)에 관련된 자, 군과 국가에 대한 반항죄에 해당하는 자들을 체포하여 '특별취급'으로 규정하고 731부대로 보내 '마루타'(실험 재료)로 사용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1939
[하얼빈 항일 공작자들의 비극적인 죽음]
하얼빈 신시가헌병분대장의 명령으로 중국 공산당 소속 중국과 한국인 공작자 25명 이상이 체포되어 이시이부대(731부대)에서 독약을 주사받고 사망했습니다.
1939년 6월, 하얼빈시 신시가헌병분대장 소좌 아카기 모리미의 명령에 따라 하얼빈 교외에서 중국 공산당 아청현 위원회 소속 중국과 한국인 공작자 25명 이상이 회합 중 정찰에 의해 전원 체포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시이부대(731부대)로 이송되어 독약을 주사받고 사망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1940
1940년, 731부대는 연구소에서 키운 페스트균 벼룩을 저공비행으로 중국 닝보시에 살포했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한 페스트 전염으로 수천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대규모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1941
[창더 시와 허난성 페스트균 살포]
1940년에 이어 1941년에는 중국 창더 시와 허난성에도 페스트균을 살포하여 수많은 인명 피해를 야기했습니다.
1941년, 731부대는 중국 창더 시와 허난성 지역에도 페스트균을 살포했습니다. 이는 이전 닝보시 살포와 유사하게 수천 명의 중국인들이 페스트 전염으로 인해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부대 명칭 '731부대'로 통합]
이시이 부대와 와카마쓰 부대가 통합되어 공식적으로 '관동군 방역 급수부' 또는 '731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41년부터 이시이 부대와 와카마쓰 부대는 합쳐서 '관동군 방역 급수부' 또는 731부대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대는 제국청년군, 대학 연구소, 헌병대의 지원을 받으며 활동했습니다.
1943
1943년 6월 25일, 함북 경성 출신인 한국인 한성진(1913년생)이 체포되어 731부대의 생체실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항일운동과 관련된 인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1943년 7월 31일, 함북 길주 출신의 한국인 김성서가 체포되어 731부대의 생체실험 희생자로 기록되었습니다. 그 역시 항일운동과 연관된 인물로 추정됩니다.
1943년 10월 1일, 소련 공산당 첩보원으로 활동하던 한국인 심득룡(1911년생)이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731부대의 생체실험 희생자 명단에 포함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1944
1944년 7월, 독립운동가 이청천이 일본군에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731부대의 생체실험 대상이 된 한국인 희생자 중 한 명으로 확인되었습니다.
1945
[미군 포로 대상 생체 수술 실험]
규슈제국대학 의학부 연구진이 격추된 미군 B-29 탑승원 포로 8명을 대상으로 폐 적출, 위 절제, 뇌수술 등 잔혹한 생체 수술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1945년 5월부터 6월까지, 규슈제국대학 의학부 제1외과 이시야마 후쿠지로와 그의 제자들은 격추된 미군 B-29 탑승원 포로 8명을 대상으로 끔찍한 생체 수술 실험을 자행했습니다. 이 실험에는 폐 전체 적출, 위 전 적출, 심장 마사지, 담낭 적출, 간장 절제, 뇌수술, 채혈 후 대용 혈액 주사 등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잔혹한 행위들이 포함되었습니다.
[부대 시설 파괴 및 실험 대상자 몰살]
소련군의 참전이 임박하자 731부대는 모든 시설을 폭파하고, 당시 살아있던 수백 명의 실험 대상자들을 몰살시킨 후 철수했습니다. 이는 부대 활동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945년 8월 9일부터 13일까지, 소련군의 대일 참전이 임박하자 731부대는 자신들의 만행이 강탈당할 것을 우려하여 모든 부대 시설을 파괴하고, 당시 생존해 있던 수백 명의 수용인들을 모두 몰살시킨 뒤 급히 철수했습니다. 본부동을 제외한 주요 건물들은 공병대에 의해 폭파되었습니다.
[731부대 산하 수용소 수용자 학살]
731부대 산하 '삼도화학연구소'라고 불렸던 가목사시 만발둔 동북부 수용소에서 일본군이 수용자들을 대량 학살했습니다.
1945년 8월 12일 심야, 흑룡강성 가목사시 만발둔 동북부에 위치한 731부대 특별 분대 산하 수용소(대외적으로는 '삼도화학연구소'로 불림)에서 일본군이 수용자들을 대량 학살했습니다. 이 학살 와중에 이광덕, 하가훈, 장인천, 이우지 등 극소수의 인원이 기적적으로 탈출했습니다.
[731부대 산하 수용소 생존자 극적 탈출]
일본군의 수용자 학살이 자행되는 와중에, 731부대 산하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던 이광덕 등 4인이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1945년 8월 12일 심야에 시작된 일본군의 수용자 학살 속에서, 8월 13일 중화민국 길림성 중국국민당 당무 제3독도구 108지부 서기 이광덕, 당원 하가훈, 110지부 서기 장인천, 중국공산당원 이우지 등 총 4인의 수용자가 가목사시 만발둔 동북부에 위치한 731부대 특별 분대 산하 수용소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947
[미국, 731부대 페스트 벼룩 실험 보고 받음]
미국에서 파견된 노버트 H. 펠이 731부대의 페스트 벼룩을 이용한 잔혹한 생체 실험 내용을 본국에 상세히 보고했습니다.
1947년 6월 30일, 미국에서 파견되었던 노버트 H. 펠은 731부대가 '페스트 벼룩'을 개발하고 이를 인간에게 실험한 잔혹한 내용, 즉 벼룩 번식법과 쥐를 통한 감염, 그리고 1㎡당 벼룩 20마리가 있는 방에서 실험 대상자 10명 중 6명이 감염되고 4명이 사망한 사실 등을 본국에 상세히 보고했습니다.
[미국, 731부대 자료 확보 및 전쟁범죄 묵인 권고]
미 육군 샌더스 중령이 731부대 관련자 신문 보고서를 미 국방부에 제출하며, 그들이 제공한 생체실험 자료의 가치를 강조하고 전쟁범죄자 처벌 대신 사면을 권고했습니다.
1947년 12월 12일, 미 육군 생물전연구 기관 캠프 데트릭의 샌더스 중령은 731부대 관련자 신문 보고서를 미 국방부에 제출했습니다. 그는 보고서에서 일본 과학자들이 수백만 달러와 오랜 세월을 거쳐 얻은 인체실험 자료의 막대한 가치를 강조하며, '인체실험은 양심의 가책이 되므로 우리 쪽 연구소에서는 얻을 수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또한, '스스로 이런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하여 사실상 731부대원들의 전쟁범죄를 묵인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955
[이시이 시로, 731부대 실체 술회 (반성 없음)]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가 스승의 장례식에서 731부대의 설립 경위, 엄청난 규모, 그리고 일본 의학계 엘리트들의 참여에 대해 술회하며 반성 없는 태도를 드러냈습니다.
1955년 12월, 731부대장을 역임했던 이시이 시로는 교토 대학 시절 지도교수였던 기요노 겐지의 장례식장에서 이시이 기관(731부대)의 설립 경위와 규모, 목적 등에 대해 술회했습니다. 그는 4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전선과 전염병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324개의 연구소를 만들고 일본 최고의 의학자, 과학자들이 참여한 세계 최대의 생체실험센터를 운영했음을 자랑하듯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패전으로 연구가 중단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만 드러냈을 뿐, 잔혹한 생체실험에 대한 어떠한 반성이나 언급도 없었습니다.
2001
[731부대 유적지 전시관 개방]
하얼빈에 남아있던 731부대의 본부 건물 등이 복원되어, 일제 만행을 고발하는 '침화일군 제731부대 유적지' 전시관으로 개방되었습니다.
전쟁 이후 중학교로 사용되던 731부대의 건물은 2001년부터 중국 하얼빈 시내 남동쪽에 위치한 핑팡취 신장다제 25호에 '침화일군 제731부대 유적지'로 복원되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일제 만행을 고발하고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05
[731부대 희생자 명단 공개]
하얼빈 일보가 731부대 생체실험 대상자 1,463명의 명단을 발굴, 공개하며 희생자들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2005년 8월 2일, 하얼빈 일보가 731부대 생체실험 대상자 1,463명의 명단을 발굴하여 공개했습니다. 이 명단에는 한국인 희생자 6명(심득룡, 이청천, 이기수, 한성진, 김성서, 고창률)을 비롯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어 731부대의 잔혹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습니다.
2018
[731부대 탈출 생존자 하가훈 사망]
731부대 산하 수용소에서 탈출했던 생존자 중 한 명인 하가훈(이름을 종연으로 바꿈)이 향년 99세로 사망했습니다.
2018년 1월 20일, 항일전쟁 시기 731부대 산하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했던 4명의 생존자 중 한 명인 하가훈(탈출 후 '종연'으로 개명)이 요녕성 무순에서 향년 99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1945년 8월 12일 밤, 일본군의 수용자 학살 와중에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인물입니다.
[교토대 논문, 731부대 생체 실험 의혹 제기]
1945년 교토대에서 발표된 '개벼룩을 통한 페스트 매개 가능성' 논문에 대해, 인간에게 행해진 731부대의 생체 실험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2018년 3월, 1945년에 발표된 교토대학교 논문 '<개벼룩을 통한 페스트 매개 가능성>'이 731부대가 자행한 인체 실험의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가츠오 의대 니시야마 명예교수는 논문의 자세하고 사실적인 두통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실험 대상이 원숭이가 아니라 인간일 것이라고 주장하며 논문이 731부대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작성되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습니다.
[일본 교수들, 731부대 관계자 학위 취소 요구]
일본 교수들이 교토대가 731부대 관계자들에게 수여한 의학 박사 학위의 취소를 요청하며 일제 생체·세균실험의 진실 규명을 촉구했습니다.
2018년 4월, 일본 교수들이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생체·세균실험을 저지른 일본 관동군 731부대 관계자들에게 교토대학교가 의학 박사 학위를 수여한 것에 반발하여 학위 취소를 요청했습니다. 이는 일본 사회 내에서 731부대의 만행에 대한 진실 규명과 책임 추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