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화
첼리스트, 음악가, 교수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28:01
정명화는 1944년 경성부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저명한 첼리스트이다. 1969년 디트로이트 심포니 협연으로 데뷔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정 트리오'를 결성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및 명예교수를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도 기여했다. 열정적인 연주와 끊임없는 음악적 탐구로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큰 발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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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1944년 3월 19일, 일제강점기 경성부에서 태어났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의 누나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50
[6.25 전쟁 중 부산 피난]
6.25 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으나, 부모님의 열정으로 피아노를 트럭에 싣고 갈 정도로 음악 교육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았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부모님은 피아노를 손수 트럭에 싣고 갈 정도로 자녀들의 음악 교육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1969
1969년 디트로이트 심포니와의 야외 공연 협연을 통해 첼리스트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알렸다. 이는 그의 음악 경력의 중요한 시작점이 되었다.
1969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 두 동생과 함께 '정 트리오'를 결성하여 백악관에서 특별 공연을 펼쳤다. 이는 가족 음악가로서의 명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70
1970년 뉴욕에서 미래의 배우자인 구삼열을 만나 연인 관계로 발전하였고, 이후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1978
1978년, 남편 구삼열의 로마 발령으로 인해 이탈리아 로마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는 그의 삶과 음악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1993
19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기악과 교수로 임명되어 첼로 교육 및 후학 양성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교육자로서의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은 시기이다.
1999
1999년 12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로 위촉되어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자선 및 홍보 활동에 참여하며 사회적 영향력을 넓혔다.
2008
2008년 9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기악과 교수로서 정년을 맞이하여 오랜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임했다. 이후 명예교수로 위촉되었다.
[제2회 세계한인의 날 홍보대사 위촉]
제2회 세계한인의 날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세계 각지의 한인 동포들에게 한국의 위상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2008년 9월, '제2회 세계한인의 날'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전 세계 한인들의 화합과 유대 강화를 위한 행사에 참여하고 홍보 활동을 펼쳤다.
2008년 9월 개최된 '2008 윤이상 페스티벌'에 참석하여 고(故) 윤이상 작곡가를 기리고 그의 음악 세계를 조명하는 문화 행사에 참여했다.
2011
2011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로 위촉되어 퇴임 이후에도 학교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후학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