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량
전략가, 정치가, 중국 역사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27:50
장량은 중국 전한 시기의 뛰어난 전략가이자 정치가입니다. 그는 소하, 한신과 함께 '삼걸'로 불리며 동양 문화권에서 참모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국 한나라의 멸망 후 진시황 암살을 시도하는 등 복수를 위해 노력했으며, 황석공으로부터 병법을 전수받아 탁월한 책략가가 되었습니다. 이후 한 고조 유방의 핵심 참모로서 천하 통일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유후에 봉해진 후에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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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멸망과 장량의 복수 다짐]
장량의 조국인 한(韓)나라가 진(秦)나라에 의해 멸망하여 그의 집안이 몰락하고, 장량은 조국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계기를 맞이했다.
장량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나라의 재상을 지냈지만, 기원전 230년에 한나라가 진나라에 멸망하면서 그의 집안은 몰락했다. 이때 아직 관직을 얻지 못했던 장량은 조국을 멸망시킨 진나라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진시황 암살 시도 (박랑사 사건)]
장량이 창해공과 함께 박랑사에서 진시황 암살을 시도했으나, 철퇴가 다른 수레에 맞아 암살은 실패하고 장량은 이름을 바꾸고 하비로 도피했다.
조국 멸망의 복수를 위해 장량은 전재산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창해공의 도움을 받아 박랑사에서 순행 중인 진시황을 노렸다. 무게 120근(약 30kg)의 철퇴를 던졌으나 시황제의 수레가 아닌 다른 빈 수레에 맞아 암살은 실패했고, 장량은 이후 이름을 바꾸고 하비로 도피하여 숨어 지냈다.
[황석공으로부터 병법 전수]
하비에서 도피 생활을 하던 중 황석공이라는 기이한 노인에게서 태공망의 병법서를 전수받아 탁월한 책략가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비에서 도피 생활을 하던 장량은 다리 위에서 신발을 주워달라는 등 세 번의 시험을 통해 황석공이라는 신비로운 노인에게 인정받아 태공망의 병법서를 전수받았다는 전설적인 일화가 전해진다. 이 시기를 통해 장량은 탁월한 전략적 지혜를 연마하게 되었으며, 항우의 숙부 항백을 숨겨주기도 했다.
[유방의 핵심 참모가 되다]
한나라 공자 한성이 항우에게 살해되자 유방에게 귀순하여 그의 핵심 참모가 되었으며, 홍문연에서 유방의 목숨을 구하고 한신을 천거하는 등 유방의 천하 통일에 크게 기여하기 시작했다.
유방이 군사를 일으키자 장량은 옛 한나라 공자 한성을 한왕에 옹립하고 그의 사도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한성이 항우에게 죽임을 당하자, 장량은 유방에게 귀순하여 그의 가장 중요한 참모가 되었다. 이 시점부터 장량은 홍문연에서 유방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명장 한신을 유방에게 천거하는 등 뛰어난 계책으로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고 천하를 통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유후에 봉해지다]
한 고조로부터 "군막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극찬을 받으며 공신으로서 유(留) 땅을 봉읍으로 받아 유후(留侯)에 봉해졌다.
한나라 건국 후, 고조 6년에 공신들에게 포상할 때 장량은 뛰어난 책략으로 천하 통일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제나라의 3만 호 봉읍을 사양하고, 고조를 처음 만난 유(留) 땅을 봉읍으로 받아 유후에 봉해졌다. 그의 봉읍은 1만 호로, 다른 공신들에 비해 매우 큰 규모였다. 이후 그는 정치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후계자 문제에 여후에게 자문하는 역할만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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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한 시기의 전략가이자 정치가로, 한 고조 유방의 천하 통일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장량이 세상을 떠났다. 사후 그의 아들 장불의가 유후의 지위를 계승했으나 후에 면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