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창 (1953년)
야구선수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26:55
이해창은 1970년대 아마추어 야구에서 국가대표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획득한 뛰어난 외야수였다. 1983년 MBC 청룡에서 프로 데뷔 후 KBO 리그 득점왕을 두 차례, 도루왕을 한 차례 차지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삼성, 청보, 태평양을 거치며 맹활약하다 1988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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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대한민국 경기도 인천시(현 인천광역시)에서 전 KBO 리그 외야수이자 지명타자인 이해창이 태어났다.
1975
1975년부터 1976년까지 농협 야구단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1975년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는 그의 첫 번째 주요 국제 대회 메달이다.
1977
1977년부터 1979년까지 육군 경리단 야구단에서 활동하며 군 복무를 겸했다.
1979
1979년부터 1982년까지 실업 롯데 야구단 소속으로 활약하며 아마추어 최강팀 중 하나인 롯데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1
1981년 샌타클래라에서 열린 월드 게임 야구 단체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82
1982년에 한국화장품 야구단에서 활약하며 프로 입단 전 마지막 아마추어 팀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 금메달 획득]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대한민국을 빛냈다. 이 대회 활약으로 프로 입단이 1년 연기되기도 했다.
1982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 단체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전력 유지를 위한 대한야구협회의 설득으로 KBO 리그 입단이 1년 뒤로 연기되었다.
1983
KBO 리그 원년인 1982년에 입단이 논의되었으나, 1982년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 출전으로 1년 뒤인 1983년에 정식으로 MBC 청룡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로 전향했다. 1983년부터 1984년까지 MBC 청룡에서 활동했다.
1983년 시즌 동안 65득점을 기록하며 KBO 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984
1984년 시즌 동안 62득점을 기록하며 전년도에 이어 2년 연속 KBO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1985
1984년 시즌 후 투수 이선희를 상대로 삼성 라이온즈에 트레이드되었다. 1985년부터 1986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동했다.
1987
1986년 시즌 후 청보 핀토스로 이적하여 1987년 시즌을 준비했다. 1987년에 청보 핀토스에서 활동했다.
1987년 시즌 동안 54도루를 기록하며 KBO 리그 도루왕에 올랐다.
1988
태평양화학이 청보 핀토스를 인수하며 1988년에 태평양 돌핀스 소속이 되었다. 1988년에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동했다.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약했던 1988년 시즌 후 현역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이후 방송 해설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91
1991년 KBS 라디오 야구 해설위원으로 데뷔했으며, 한때 MBC TV 야구 해설위원 후임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2019
2019년 KBS1 《TV는 사랑을 싣고》에 전 야구선수 홍성흔의 은인으로 출연하여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