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고려)

고려 문신, 경주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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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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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문신, 경주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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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의 문신 이준은 1357년 성균시 장원, 1360년 문과에 급제하며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공민왕 시대 홍영통의 횡포로 파직되거나, 우왕 시대 목인길의 무고로 투옥되는 등 여러 고난을 겪었다. 이후 간관으로서 사전 부활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 호조전서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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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8

[이준의 탄생]

고려 말의 문신 이준이 태어났다.

고려 말의 문신 이준이 1338년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경주 이씨로 이달충의 장남이다.

1357

[성균시 장원 합격]

어사대부 신군평이 주관한 성균시에 장원으로 합격하며 관직 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다.

공민왕 6년, 어사대부 신군평이 주관한 성균시에서 장원으로 합격했다. 이는 그의 관직 생활의 중요한 시작점이었다.

1360

[문과 급제]

23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정식으로 관직에 올랐다.

23세의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고려의 문신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367

[홍영통의 횡포와 파직]

헌납으로서 팔관회에 참석했다가 홍영통의 횡포로 부상을 입었고, 신돈에게 의지한 홍영통의 보복으로 왕명을 어겼다는 명목으로 파직당했다.

공민왕 16년, 헌납으로 팔관회에 참석했으나 홍영통의 횡포로 좌사의대부 신덕린, 헌납 박진손, 정언 정리, 안면과 함께 부상을 입었다. 우사의대부 탁광무가 홍영통을 탄핵했으나, 홍영통이 신돈에게 의지하여 처벌을 면했다. 오히려 이준 등은 왕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377

[목인길의 무고로 투옥]

지윤이 처형된 후 목인길의 무고로 순군옥에 갇혔으나, 곧 석방되었다. 이는 과거 토지 문제로 목인길과 틈이 생긴 것이 원인이었다.

우왕 3년, 지윤이 처형되자 목인길이 이준과 이전 형제를 그의 일당이라고 무고하여 순군옥에 갇히게 했으나, 곧 석방되었다. 이는 목인길이 일찍이 이준·이전 형제와 토지 문제로 다투다가 틈이 생기자 그들을 중상하려고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389

[사전 부활 반대와 호조전서 역임]

간관으로서 사전(私田)을 부활시켜서는 안 된다고 글을 올려 간쟁했으며, 이후 관직이 호조전서에 이르렀다.

창왕 원년, 간관 중 한 명으로서 사전(私田)을 부활시켜서는 안 된다고 글을 올려 임금에게 간언했다. 이후 관직이 호조전서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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