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서예가)

서예가, 전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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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25- 17:5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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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전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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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농(鐵農) 이기우는 한국 근현대 서예와 전각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한 거장입니다. 위창 오세창의 문하에서 전통의 맥을 정통으로 계승하면서도, 건축학적 조형미를 접목해 전서와 예서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체를 완성했습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과 한국전각협회 창설을 통해 전각을 독립된 예술 장르로 격상시켰으며, 독립기념관 현판 등 수많은 금석문을 통해 민족의 기개를 돌과 종이에 영원히 새겨 넣었습니다. 그의 예술은 전통의 보존을 넘어 현대적 미감으로 승화된 한국 전각 예술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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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

[서예계 거목의 탄생]

대한민국 서예와 전각의 역사를 새롭게 쓴 철농 이기우가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술적 가풍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붓과 먹을 가까이하며 전통 예술에 대한 감각을 익혔습니다.
이 탄생은 훗날 한국 전각 예술이 현대적 미감으로 재탄생하는 위대한 시작점이 됩니다.

이기우는 서울의 지성적인 환경에서 성장하며 전통 예술에 대한 깊은 소양을 쌓았습니다.
그의 호인 철농(鐵農)은 쇠를 일구는 농부처럼 전각 칼로 예술의 밭을 일구겠다는 굳은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가문 대대로 이어온 학문적 배경은 그가 서예의 깊은 이치를 깨닫는 데 결정적인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1940

[건축학을 통한 공간 이해]

경성공립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며 공간 구성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건축학에서 배운 균형과 조화의 원리는 훗날 그의 전각 작품 속 공간 경영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예술과 공학적 기술이 조화된 독특한 시각을 갖추게 된 중요한 교육적 배경입니다.

당시 명문이었던 경성공립공업학교에서 현대적인 건축 설계와 구조 역학을 익혔습니다.
건축의 정밀한 선과 면의 분할은 전각의 좁은 공간 속에 큰 세계를 담아내는 조형미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학업 배경은 그가 기존 서예가들과 차별화되는 구조적이고 탄탄한 조형미를 갖게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1945

[위창 오세창의 문하 입문]

근대 서화계의 거두인 위창 오세창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서예와 전각을 사사했습니다.
전통의 맥을 잇는 동시에 근대적인 예술관을 정립하는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서화와 인장의 일체감을 깨닫고 전각 예술의 길로 매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세창 선생은 이기우에게 단순한 서화 기술이 아닌 문사 철학이 담긴 예술의 본질을 전수했습니다.
위창 선생이 수집한 방대한 서화 골동에 대한 안목을 곁에서 지켜보며 예술적 심안을 넓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 시기 얻은 학문적 깊이는 이기우가 한국 전각의 정통 계승자로 인정받는 가장 강력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1949

[제1회 국전 참가]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창설과 함께 서예 부문에 작품을 출품하며 공식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신생 국가의 예술적 기틀을 마련하는 자리에 주역으로 참여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후 국전을 중심으로 한국 서예의 현대적 발전을 이끄는 선구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제1회 국전 참가는 그가 공식적인 예술가로서 대중 앞에 선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해방과 전쟁 전후의 혼란기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창작 활동에 전념하여 예술적 열정을 보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국전 무대에서 매회 주목받으며 전통 서예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습니다.

1955

[국전 추천작가 선정]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서예 부문 추천작가로 위촉되었습니다.
신진 작가에서 중견 예술가로 그 위상이 공식적으로 격상되며 작품 세계를 공고히 했습니다.
전업 작가로서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구축하고 전각과 서예를 결합한 실험을 지속했습니다.

추천작가 선정은 그가 한국 서예계의 중심 인물로 진입했음을 미협과 학계에서 공인한 것입니다.
이 시기부터 전서와 예서의 장점을 결합한 독창적인 '철농체'의 원형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국전의 권위를 세우는 주요 작가로서 매년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이며 평단의 끊임없는 기대를 모았습니다.

1960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역임]

국전의 초대작가로 추대됨과 동시에 심사위원으로서 후진 양성과 작품 선별의 중책을 맡았습니다.
한국 서예의 예술적 기준을 정립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권위 있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공정한 심사와 날카로운 비평을 통해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며 서예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초대작가로서의 명성은 그를 당대 최고의 서예가 반열에 확고히 올려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심사 과정에서 그는 전통에 기반한 혁신을 강조하며 한국 서예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의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지도는 많은 후배 작가들에게 예술적 지표가 되었으며 서예의 현대화를 앞당겼습니다.

1974

[한국전각협회 창립 주도]

한국 전각 예술의 체계적인 발전을 위해 한국전각협회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서예의 부수적인 장르로 치부되던 전각을 독립적인 예술 분야로 격상시키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전각 연구와 전시를 활성화하여 전각 예술의 대중화와 전문성 강화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전각협회 창립은 한국 예술사에서 전각이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독립한 역사적 변곡점입니다.
그는 회원들을 독려하여 정기 전시회를 열고 전각 이론을 체계화하여 학문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회장직을 수행하며 한국 전각의 독자성을 세계에 알리고 한·중·일 전각 교류의 물꼬를 텄습니다.

1980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선출]

예술인 최고의 영예인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어 그 업적을 국가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평생에 걸친 예술적 헌신과 공로가 사회적으로 가장 높게 평가받은 순간이었습니다.
예술계 원로로서 국가 예술 정책에 자문하고 서예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는 데 전념했습니다.

예술원 회원 선출은 이기우가 한국 현대 예술을 상징하는 인물임을 국가가 공식화한 것입니다.
그는 예술원 활동을 통해 서예 교육의 표준화와 전통 예술 보존 사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원로로서의 무게감을 바탕으로 서예계의 화합을 도모하고 전통의 현대적 계승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1987

[독립기념관 현판 휘호]

민족의 성지인 독립기념관의 대형 현판 글씨를 직접 써서 민족의 기개를 드러냈습니다.
웅장하고 강건한 그의 필치는 독립 정신의 숭고함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국가의 상징적인 건축물에 자신의 예술적 혼을 영구히 남기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현판 글씨 작업에는 그의 평생에 걸친 서예 철학과 뜨거운 민족애가 고스란히 투영되었습니다.
수많은 파지를 내며 고심 끝에 완성된 필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장엄함과 경외심을 느끼게 합니다.
오늘날까지도 독립기념관을 찾는 국민들에게 그의 글씨는 민족의 자부심을 일깨우는 상징으로 존재합니다.

1990

[전국 금석문 집대성]

전국 각지의 주요 유적지와 기념비에 그의 글씨가 새겨지며 금석문 예술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영구히 기록하는 비석에 그의 필체가 채택되어 공익적 가치를 실천했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역사를 기억하는 통로로서 그의 예술이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전국 곳곳의 전적비와 공덕비 등 국가적 중요성을 가진 비석의 명문 작업을 도맡아 수행했습니다.
돌에 새겨지는 글씨인 만큼 한 획마다 혼신을 다한 그의 장인 정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그가 남긴 금석문들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예술의 영원성을 증명하며 곳곳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1993

[거장의 서거와 예술적 유산]

한국 서예와 전각의 큰 스승인 철농 이기우 선생이 향년 73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타계 소식에 예술계는 거대한 별을 잃은 슬픔에 빠져 대대적인 추모를 이어갔습니다.
육신은 떠났으나 그가 남긴 방대한 작품과 제자들은 한국 서예의 든든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평생 먹향과 함께하며 지조를 지켰던 그의 삶은 후배 예술가들에게 커다란 귀감이 되었습니다.
장례는 예술계 인사들의 애도 속에 엄숙히 치러졌으며 그의 공적을 기리는 전시가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한국 전각의 현대화와 독자적 미학을 강조하며 예술에 대한 진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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