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각 (조선)
조선 관리, 무신, 군인, 임진왜란 관련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22:55
조선 중기의 무신 이각은 임진왜란 발발 당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였습니다. 그러나 부산진 전투 불참, 동래성 전투에서 성을 버리고 도주하는 등 전쟁 초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일관했습니다. 결국 임진강에서 도주 중 체포되어 선조의 명으로 참수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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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발발과 경상좌병사 임명]
임진왜란 개전 당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울산 병영에 주둔했으나, 부산진 전투에 제때 합류하지 못하며 전황을 악화시켰다.
임진왜란 개전과 동시에 조선의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 울산 북쪽의 병영에 주둔했으나, 부산진 전투에는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해 조선군 전력에 큰 손실을 입혔다.
동래성 전투에서 도주한 후, 경주성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는 이미 자신의 임지와 휘하 병사들을 버리고 달아난 행위로 인해 조선 조정으로부터 책임을 추궁당하게 되었다. 이는 그의 비겁한 행위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동래성 전투에서 성을 버리고 도주]
동래성 전투에서 왜군이 밀려오자, 성 수비를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맡긴 채 자신은 전투 도중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임진왜란 중 동래성 전투가 발발하자, 이각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서 성을 방어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비 책임을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전가하고 자신은 전투 현장을 이탈하여 도주했다. 이는 동래성 함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도주 중 체포되어 참수당함]
한성부가 왜군에게 함락된 후, 도원수 김명원이 주둔한 임진강 진영으로 도망치려다 체포되어 선조의 명에 의해 참수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한성부가 왜군에게 함락된 이후, 이각은 임진강에 주둔하고 있던 도원수 김명원의 진중으로 도주를 시도했다. 그러나 도주 중에 체포되었고, 선조의 지시를 받은 선전관에 의해 음력 5월 14일(양력 6월 23일)에 참수되면서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