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

피아니스트,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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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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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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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11세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일찍이 국내외 무대에서 활약했습니다. 줄리어드 스쿨을 거쳐 다양한 스승들에게 사사하며 음악적 깊이를 더했고, 나움부르크 콩쿠르 우승 등 국제 대회에서 인정받았습니다. 다양한 레퍼토리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광범위한 음악 활동을 펼쳤으며, 호암상, 문예공로훈장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습니다. 가족으로는 배우 윤정희(사별)와 딸 백진희가 있습니다. '북괴피납' 사건과 같은 인생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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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피아니스트 백건우, 서울에서 출생]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음악계에 발을 들였다.

백건우는 1946년 5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부터 음악적 재능을 드러내며, 11세에는 국립 교향악단과 협연하는 등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의 출생은 훗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서의 긴 여정의 시작점이 되었다.

1956

[11세에 국립 교향악단과 협연하며 천재성 발휘]

11세의 나이에 국립 교향악단과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며 피아노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을 세상에 알렸다. 이른 나이부터 그의 활발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백건우는 11세 때 국립 교향악단과 에드바르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며 뛰어난 재능을 일찍이 선보였다. 이 사건은 그의 음악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모데스트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등 다양한 곡들을 공연에 올리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1961

[줄리어드 음악학교 유학, 로지나 레빈 사사]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세계적인 스승 로지나 레빈을 사사하며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그의 음악적 성장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1961년 백건우는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인 로지나 레빈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 시기는 그가 음악가로서의 기량을 더욱 발전시키고 국제적인 시야를 넓히는 중요한 시기였다.

1967

[런던 유학 및 나움부르크 콩쿠르 우승]

런던으로 건너가 일로나 카보스를 사사했으며, 같은 해 나움부르크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는 그의 경력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1967년 백건우는 런던으로 가서 일로나 카보스, 귀도 아고스티, 빌헬름 켐프 등 저명한 스승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같은 해에 나움부르크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발판을 마련했다.

1969

[리벤트리 콩쿠르 결선 진출 및 부소니 콩쿠르 입상]

리벤트리 콩쿠르 결선에 진출하고 부소니 콩쿠르에 입상하며 국제적인 콩쿠르에서 꾸준히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재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기다.

1969년 백건우는 리벤트리 콩쿠르 결선에 올랐으며, 같은 해에 부소니 콩쿠르에도 입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나갔다. 이 시기 그는 세계 주요 음악당에서 리사이틀 연주회를 가지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1976

[배우 윤정희와 결혼]

한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윤정희와 결혼하여 예술가 부부로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는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개인적인 사건이었다.

백건우는 1976년에 한국의 유명 배우 윤정희와 결혼하며 예술계의 대표적인 부부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의 결혼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으며, 이후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 활동을 지지하며 긴 시간을 함께했다.

1977

[북한 피랍 시도 사건 발생, 극적 탈출]

재불 화가 이응노의 둘째 부인 박인경의 음모로 부인 윤정희와 생후 5개월 된 딸 백진희와 함께 북한으로 피랍될 뻔했으나, 백건우가 눈치를 채고 극적으로 탈출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당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1977년 7월 29일, 백건우, 윤정희 부부는 생후 5개월 반 된 딸 백진희를 데리고 취리히를 거쳐 자그레브까지 유인되었다. 북한 공작원과 연계된 재불 화가 이응노의 둘째 부인 박인경의 음모로 북한으로 납치될 뻔했으나, 백건우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만 24시간 만에 극적으로 탈출했다. 파리로 돌아와 백건우는 주프랑스 대사관에서 사건의 전모를 밝히며 "조선민항"이라고 쓰인 항공기를 봤다고 증언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사건은 당시 대한민국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예술가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다.

1998

[강석희 헌정 피아노 협주곡 초연]

강석희에게 헌정받은 피아노 협주곡을 초연했으며, 이 공연은 라디오 프랑스에서 실황 중계될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의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준 사건이다.

1998년 2월, 백건우는 작곡가 강석희에게 헌정받은 피아노 협주곡을 초연했다. 이 공연은 라디오 프랑스에서 실황 중계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으며, 현대 음악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와 뛰어난 해석력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0

[호암상 예술상 수상]

호암상 예술 부문을 수상하며, 한국 사회에 기여한 예술가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는 그의 예술적 업적에 대한 중요한 표창이었다.

2000년 백건우는 호암상 예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호암상은 한국의 학술, 예술,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사에게 수여되는 권위 있는 상으로, 그의 오랜 예술 활동과 뛰어난 업적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슈발리에 수훈]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하며 프랑스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는 국제적인 예술가로서 그의 위상을 보여준다.

2000년 백건우는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했다. 이 훈장은 프랑스 문화에 뛰어난 공헌을 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것으로, 그가 프랑스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양국 간 문화 교류에 기여한 바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2006

[펜데레츠키 피아노 협주곡 '부활' 아시아 초연 참여]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피아노 협주곡 '부활'의 아시아 초연에 참여하여 다시 한번 현대 음악 해석의 대가임을 입증했다.

2006년 10월, 백건우는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피아노 협주곡 '부활'의 아시아 초연에 참여했다. 이는 그가 고전뿐만 아니라 현대 음악에서도 폭넓은 스펙트럼과 깊이 있는 해석을 선보이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공연이었다.

2007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 개최]

예술의 전당에서 8일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베토벤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헌신적인 노력을 보여주었다.

2007년 12월 8일부터 15일까지 백건우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개최했다. 이 연주회는 베토벤의 방대한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소화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그의 뛰어난 기량과 음악적 통찰력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많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2009

[제5회 경암학술상 예술부문 수상]

제5회 경암학술상 예술부문상을 받으며, 그의 예술적 성과와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았다.

2009년 백건우는 제5회 경암학술상 예술부문상을 수상했다. 경암학술상은 한국의 학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이들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그의 예술적 업적이 학술적 가치로도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2010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수훈]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2등급)을 수훈하며 국가로부터 그의 예술적 공로를 높이 평가받았다. 이는 한국 문화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상징한다.

2010년 백건우는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2등급)을 수훈했다. 은관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에 현저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되는 훈장으로, 그의 오랜 기간 이어진 음악 활동과 국제적인 활약이 한국 문화예술계에 미친 지대한 영향과 공로를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2011

[리스트 탄생 200주년 기념 공연]

30년 만에 프란츠 리스트 탄생 200주년을 맞아 리스트 작품만으로 공연을 펼쳤다. 이는 그의 리스트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해석을 보여주었다.

2011년 6월, 백건우는 프란츠 리스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무려 30년 만에 리스트 작품만으로 구성된 공연을 선보였다. 이는 그의 리스트 음악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오랜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완숙한 연주로 청중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2023

[배우자 윤정희 사별]

배우자 윤정희와 사별하며 개인적으로 큰 아픔을 겪었지만, 여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 백건우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배우자이자 한국 영화계의 거장인 윤정희와 사별했다. 이 상실은 그의 인생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지만, 그는 음악가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예술을 통한 위로와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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