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 (후한)
삼국시대 인물, 관료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21:41
후한 말 형주 자사 유표의 아들로, 부친 사후 잠시 형주를 다스렸다. 그러나 조조의 대규모 남하에 직면하자 결국 항복을 택하며 형주 지배권을 넘겨주었다. 이는 그의 짧고 결정적인 정치적 생애를 규정하는 주요 사건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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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 산양군 고평현 사람으로, 형주 자사 유표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확한 출생 연월일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208년 부친 유표가 사망할 즈음에는 이미 성년이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208
[유표 사후 형주 후계자 계승]
유표 사망 후, 그의 아들 유종은 채모와 장윤 등 외척 세력의 지지를 받아 형주의 후계자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항전파 일부는 그의 태도에 실망하여 유비와 유기 세력으로 넘어갔다.
208년 유표 사망 후, 유종은 채모, 장윤 등의 주도 하에 형주 목의 지위를 계승했다. 하지만 조조의 남하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많은 항전파 인사들이 유종에게서 등을 돌리고 유비와 유기 세력으로 합류하는 결과를 낳았다.
[조조 휘하 관직 임명]
조조에게 항복한 후, 유종은 간의대부 참동군사라는 관직에 임명되어 조조 휘하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조조는 유종의 인품을 높이 평가했다고 전해진다.
조조에게 항복한 유종은 간의대부 참동군사에 임명되었다. 조비가 쓴 '전론'에 따르면 조조는 유종을 "생각이 높고 뜻이 맑으며 앎이 깊고 헤아림이 넓으며 영화를 가볍게 여기고 의를 무겁게 본다"고 평가하며 그의 인품을 높이 샀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조에게 항복]
조조의 남하가 시작되자, 유종은 부손, 한숭, 괴월, 왕찬 등 여러 신하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조조에게 항복했다. 이로써 형주는 조조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208년, 유표의 죽음과 동시에 조조가 남하를 시작하자, 유종은 형주를 지킬 방법을 모색했다. 결국 부손, 한숭, 괴월, 왕찬 등 주요 인사들의 항복 권고를 수용하여 조조에게 투항했다. 이 결정은 유종의 역사적 역할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