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 (교동왕)
전한의 제후왕, 종실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21:40
전한의 마지막 교동왕.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했으나, 왕망의 신나라 건국으로 작위를 잃었다. 아우 유쾌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기여하며 왕망에게 용서받았으나, 봉국 폐지로 결국 작위를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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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C
전한 교동공왕 14년인 기원전 15년, 아버지 유수 교동공왕이 사망하자, 유은은 그의 뒤를 이어 교동왕의 작위를 계승하였다. 이는 그가 교동왕으로서의 통치를 시작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8
교동왕 은의 재위 23년인 기원후 8년, 당시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왕망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건국하였다. 이로 인해 유은은 제후왕의 작위를 잃고 부숭공으로 강등되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9
유쾌의 반란이 진압된 기원후 9년, 왕망의 신나라 정책에 따라 유은의 봉국인 교동국이 완전히 폐지되었다. 이로 인해 유은은 앞서 강등되었던 부숭공 작위마저 최종적으로 상실하게 되었고, 전한의 제후왕으로서의 모든 지위는 사라졌다.
[아우 유쾌의 반란 진압]
아우 유쾌가 수천 명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즉묵을 포위하자, 유은은 스스로 옥에 들어가 성을 닫고 백성들과 함께 반란을 진압했다. 이에 왕망은 유은과 연루자들을 용서하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했다.
시건국 원년인 기원후 9년 4월, 유은의 아우 유쾌가 수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즉묵을 포위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유은은 성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 옥에 들어가 왕망에 대한 충성심을 보였다. 즉묵의 백성들은 유은과 함께 힘을 모아 유쾌의 반란군을 물리쳤고, 유쾌는 도주 중 사망했다. 왕망은 이러한 유은의 행동을 높이 사 유은과 유쾌의 처자식을 비롯한 사건 연루자들을 용서하고 사망자들의 장례까지 지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