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 (양왕)

왕족, 반란 지도자, 역사 인물

num_of_likes 0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21:20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왕족, 반란 지도자, 역사 인물
report
Edit

• 후한 초, 신나라 말의 인물로, 아버지 유영의 뒤를 이어 양왕으로 옹립되었습니다. • 후한 광무제와 맞서 천자를 자칭하고 싸웠으나, 여러 차례 패배했습니다. • 결국 자신의 휘하 병사에게 암살당하며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본 문서는 위키백과 유우 (양왕) 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편집되었으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배포됩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29

[양왕으로 옹립]

아버지 유영이 광무제와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경오에게 암살당한 후, 소무와 주건에 의해 양나라 왕으로 옹립되었습니다. 이때 아버지로부터 제왕의 작위를 받은 장보는 유우를 황제로 추대하려 했으나, 막빈 왕굉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아버지 유영이 광무제와 싸우다 지고 수하 장수 경오에게 암살당하자, 수혜취로 달아난 아버지의 장수 소무와 주건에 의해 양나라 왕으로 옹립되었습니다. 한편 아버지에게서 제왕의 작위를 받은 장보는 유우를 황제로 추대하려 했으나, 막빈 왕굉의 반대로 뜻을 접었습니다.

[연이은 도피와 기회 포착]

교강에게 달아났으나, 교강이 두무의 공격을 받자 해서왕 동헌에게 다시 도주했습니다. 이후 광무제가 동헌을 공격하게 한 방맹이 모반하여 갑연을 공격하자, 유우는 이를 기회 삼아 방맹을 도와 도성 포위를 시도했습니다.

건무 5년(29년)에 유우는 교강에게 달아났지만, 교강이 표기대장군 두무의 공격을 받으면서 해서왕 동헌에게 달아났습니다. 광무제는 갑연과 방맹에게 동헌을 공격하게 했는데, 방맹이 모반하고 갑연을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유우는 이를 듣자 하비에서 난릉으로 옮기고 소무와 교강을 보내 방맹을 도와 동평군 도성(桃城)을 포위하게 했습니다.

[수혜취 포위 및 패배]

광무제의 포로장군 마무와 기도위 왕패에게 주건과 함께 수혜취에서 포위당했습니다. 소무의 구원을 받아 싸웠지만 패배했고, 주건의 조카 주송이 모반하여 성문을 걸어잠그는 바람에 셋은 뿔뿔이 흩어져 도주했습니다.

건무 4년(29년) 가을, 광무제의 포로장군 마무와 기도위 왕패에게 주건과 함께 수혜취(垂惠聚)에서 포위당했습니다. 소무의 구원을 받아 함께 마무와 싸웠지만 패배했고, 주건의 형의 아들 주송이 모반해 성문을 걸어잠가 유우, 소무, 주건 셋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습니다.

[도성 포위 실패 및 대패]

방맹을 도와 동평군 도성을 20여일 간 맹공격했으나 함락하지 못했습니다. 광무제와 오한에 대적했으나 결국 패배하며 전세가 더욱 불리해졌습니다.

유우는 소무와 교강을 보내 방맹을 도와 동평군 도성을 포위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광무제와 오한이 각각 도성을 구원했고, 유우 측 군대는 도성을 20여일 간 맹공격했으나 함락하지 못한 채 광무제와 오한에 대적했으나 패배했습니다.

[최후의 패배와 암살]

연이은 패배로 달아날 곳을 잃고, 건무 5년 8월 담성이 함락되자 결국 자신의 휘하 병사였던 고호에게 목이 베여 암살당했습니다.

이후에도 유우는 패배를 거듭하다가, 건무 5년 8월에 담성(郯城)이 함락되자 달아날 곳을 잃고 자신의 휘하 병사였던 고호(高扈)에게 머리를 베였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