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고구려 무신, 장군, 부마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20:59
고구려의 무신이자 평원왕의 부마. '바보 온달'로 불리던 미천한 신분에서 평강공주와 혼인하며 학문과 무예를 익혀 일국의 장군으로 성장했다. 북주 침입을 막아내며 큰 공을 세웠고,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이북 땅을 되찾으려 출전했다가 아단성에서 전사했다. 그의 이야기는 온달설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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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
[평강공주와의 운명적인 혼인]
바보 온달로 불리던 온달은 평원왕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을 찾아온 평강공주와 혼인하며 미천한 신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공주의 도움으로 학문과 무예를 익히며 장군이 될 기반을 마련했다.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는 어린 시절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는 왕의 농담을 들으며 자랐다. 성장하여 왕의 다른 혼인 제안을 거절하고 실제로 '바보 온달'이라 불리던 온달을 찾아가 혼인했다. 공주의 지혜와 온달의 노력이 합쳐져 온달은 점차 무예와 학문에 정진하여 고구려의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게 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온달 설화의 핵심을 이룬다.
570
[고구려를 지켜낸 무장, 대형 온달]
온달은 고구려에 침입한 북주(北周) 군대를 맞아 선봉에 서서 크게 물리쳐 전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그는 고구려의 최고 관직 중 하나인 대형(大兄) 작위를 받으며 명성을 떨쳤다.
온달은 평강공주와 혼인 후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북주 무제(武帝)가 고구려에 침입했을 때 진가를 발휘했다. 그는 용감하게 앞장서서 전투에 임했고, 뛰어난 무용으로 적군을 크게 격파하며 고구려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이 전쟁에서의 혁혁한 공로로 온달은 왕으로부터 대형 작위를 수여받아, '바보 온달'이라는 과거의 오명을 씻고 고구려의 자랑스러운 무신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590
[조국을 위해 스러진 영웅, 아단성에서의 최후]
영양왕 즉위년(590년), 온달은 신라에 빼앗긴 한강 이북의 땅을 수복하기 위해 출전했다. 그는 아단성(아차산성)에서 신라군과의 전투 중 적의 화살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590년, 영양왕이 즉위하자 고구려는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이북의 영토를 되찾기 위한 대규모 군사 작전을 계획했다. 온달은 이 전쟁에 자원하며 "계립령 서쪽과 죽령 이북의 땅을 고구려에 귀속시키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아단성(아차산성)을 공격하던 중 신라군이 쏜 화살에 맞아 전장에서 사망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의 관이 움직이지 않자 평강공주가 찾아와 위로하자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