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 (후한)
후한 인물, 군벌 모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20:19
신평은 후한 말 군벌 원소의 모사로, 원소 사후에는 원담의 편에 서서 원씨 가문의 내분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그의 부추김으로 원씨 내분은 더욱 심화되었고, 이는 결국 원씨 세력 멸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가족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으나, 신평 본인의 정확한 생사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원담을 위해 항복 사자로 나섰다가 의심받아 죽음을 맞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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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원소 진영 임관 추정]
후한 말 군벌 원소의 모사로, 초평 2년(191년) 전후에 임관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같은 현 출신인 조조의 모사 곽가와도 동향입니다.
원소가 한복으로부터 기주를 빼앗은 초평 2년(191년) 전후에 원소 진영에 임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조의 모사 곽가와는 같은 현 출신이며, 곽도, 순심, 순욱과는 같은 군 출신입니다.
200
[관도대전 패배 후 심배 실각 시도]
관도대전에서 원소가 조조에게 패배한 후, 심배가 참언을 받자 곽도 등과 함께 심배를 실각시키려 했으나, 봉기의 변호로 심배는 유임되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원소 진영에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건안 2년(200년), 원소가 관도대전에서 조조에게 크게 패배한 이후, 심배가 맹대와 장기의 참언을 받자, 신평은 곽도 등과 함께 심배를 두둔하며 그를 실각시키려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봉기의 변호로 심배는 유임되었고, 신평이 원소 진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때부터였습니다.
202
[원소 사망과 원씨 내분 발생]
원소가 5월에 급사하자, 신평과 곽도는 원담을 후계자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심배와 봉기는 원상을 추대하며 정권을 장악했고, 이에 불복한 원담이 거기장군을 자칭하면서 원씨 가문에 본격적인 내분이 시작되었습니다. 신평은 원담 편에 섰습니다.
건안 7년(202년) 여름 5월, 원소가 유조 없이 급사하면서 후계 문제로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신평과 곽도는 당시 원담과 가까이 지내며 그를 후계자로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원담의 집권을 경계하던 심배와 봉기는 원상을 추대하고 정권을 장악했으며, 이에 원담은 불복하여 거기장군을 자칭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이로 인해 원씨 가문은 원담과 원상 세력으로 나뉘어 내분이 격화되기 시작했고, 신평은 원담을 지지하는 핵심 인물이 되었습니다.
[조조 침공 중 일시 화해 및 재내분 유도]
조조의 침공에 원담과 원상이 잠시 화해했으나, 원상이 원담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자 원담은 분노했습니다. 이때 신평은 곽도와 함께 심배를 참언하며 원담을 부추겨, 원담이 다시 원상을 공격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결국 원담은 패배하고 평원으로 쫓겨났습니다.
건안 7년(202년) 8월, 조조가 북상하여 하북을 침공하자, 원담은 원상의 후계를 승인하며 일시적으로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조조군을 격퇴했으나, 원상은 원담의 조조 추격 제안을 거부하고 청주로 돌아가지 않던 원담에 대한 군사 지원까지 중단했습니다. 이에 크게 분노한 원담에게 신평은 곽도와 함께 심배의 참언을 들어 원담을 부추겼고, 결국 원담은 군사를 일으켜 원상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원상의 반격을 받아 대패하고 평원으로 쫓겨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204
[신평 가족의 감금 및 죽음]
204년 2월, 업을 수비하던 심배는 원담의 공격이 실패하자 신평의 가족들을 붙잡아 감금했습니다. 이후 조조에게 업이 함락되기 직전, 심배는 원씨 세력 멸망의 원한을 품고 신평의 가족들을 모두 죽이도록 지시했습니다.
건안 9년(204년) 2월, 원담이 원상을 공격했다가 패하고 달아난 후, 원상파의 심배는 업을 수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곽도와 신비의 가족은 탈출했으나, 신평의 가족은 붙잡혀 감금되었습니다. 이후 조조에게 업이 함락되기 직전, 원씨 세력의 멸망을 초래한 곽도와 신평 형제에 대한 깊은 한을 품고 있던 심배는 신평의 가족들을 모두 죽일 것을 지시했고, 결국 그들은 살해당했습니다.
205
[원담과 곽도 멸망 및 신평의 행방 불명]
205년 1월, 원담과 곽도가 남피에서 조조에게 멸망했습니다. 하지만 신평의 생사 여부는 이때까지도 기록되어 있지 않아, 그가 원담과 함께 최후를 맞았는지, 아니면 그 이전에 사망했는지 불분명합니다.
건안 10년(205년) 1월, 원담과 곽도는 남피에서 조조의 공격을 받아 최후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까지 신평이 원담과 함께 있었는지, 혹은 그 이전에 사망했는지 등 그의 생사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아 그의 최후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