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추자
가수, 록 음악가, 대한민국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20:10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 '섹시 디바' 김추자는 1970년대를 풍미한 대한민국 대표 가수다. 신중현 사단으로 데뷔해 독보적인 가창력과 퍼포먼스로 대중을 사로잡았으나, 매니저 피습, 긴급조치 9호 및 대마초 혐의로 여러 차례 시련을 겪었다. 역경 속에서도 꾸준히 재기에 성공하며 한국 록 음악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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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1951년 1월 2일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약사동)에서 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춘천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 시절 응원단장, 강원도 배드민턴·기계체조 선수로 활약했다. 또한 춘천향토제에서 전통 창인 <수심가>를 불러 3위에 입상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였다.
1969
[데뷔 음반 <늦기전에> 발표 및 가요계 데뷔]
신중현의 곡을 받아 데뷔 음반 <늦기전에>를 발표하며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 197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1969년 10월 20일 신중현의 곡을 받아 데뷔 음반 <늦기전에>를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가창력과 섹시한 춤을 겸비한 김추자는 197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고,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까지 생겨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1971
1971년 구혼을 거절당한 매니저 소윤석이 휘두른 깨진 소주병에 얼굴을 베여 큰 부상을 입고, 성형수술을 여섯 번이나 받아야만 하는 안타까운 사건을 겪었다.
1975
[긴급조치 9호 및 대마초 혐의로 활동 금지]
긴급조치 9호에 따른 가요 규제조치와 대마초 소지 혐의로 모든 노래가 금지곡이 되고 활동 금지 선고를 받으며 큰 위기를 맞았다.
1975년 4월 긴급조치 9호인 가요 규제조치가 발표되면서 그녀의 모든 노래는 금지곡으로 묶이고 신중현, 이장희, 윤형주 등과 함께 가수활동 전면 금지의 선고를 받는다. 당시 가수들에겐 유행과도 같았던 대마초를 소지한 혐의였다.
1978
[재기 리사이틀 성공적 컴백]
여러 차례 재기를 시도한 끝에 대한극장에서 리사이틀을 열어 성공적으로 가요계에 복귀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여러 차례의 재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가 1978년 6월 대한극장에서 열린 재기 리사이틀로 성공적인 컴백을 하며 팬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1981
[박경수와 결혼 및 가요계 잠정 은퇴]
박경수와 결혼하며 가요계를 잠시 떠났다가, 1986년 한 차례 방송 출연 후 다시 활동을 중단했다.
1981년 박경수와 결혼하며 가요계를 떠났다가, 1986년 1월 KBS TV [백분쇼]에 단 한 차례 출연한 뒤 다시 가요계를 떠나며 한동안 팬들 곁을 떠났다.
1988
1986년 방송 출연 이후 다시 가요계를 떠났던 김추자는 1988년 앨범 <세월만 가네>를 발매하며 공식적으로 복귀하였다. 이 앨범은 오아시스 레코드의 오리지널 마스터로 500장 한정반으로 프랑스에서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