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리오 이글레시아스
가수, 작곡가, 영화배우, 축구선수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19:39
*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배우.*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 골키퍼였으나 자동차 사고로 음악인의 길 선택.* 14개 언어로 80장의 음반 발매, 전 세계 3억 장 이상 판매 기록.*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 음악가 중 한 명.* 낭만적인 음악으로 전 세계 라틴 팝 열풍을 주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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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오렌세 출신의 산부인과 의사인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푸가의 아들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출생하였다.
1963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와 진로 변경]
레알 마드리드 CF의 2군 팀에서 골키퍼로 활약하던 중 자동차 사고를 당해 1년 반 동안 병원 치료를 받았다. 이 사고가 그의 가수 인생 전환점이 되었다.
레알 마드리드 CF의 2군 팀이었던 AD 플루스 울트라에서 골키퍼로 활약하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10월 22일 자동차 사고를 당해 1년 반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투병 생활 동안 간호사가 선물한 기타를 연주하고 라디오를 들으며 슬프면서도 낭만적인 곡들을 직접 작곡하기도 하면서 가수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1968
[가수 데뷔 및 성공적인 시작]
대학 졸업 후 바인도튼 스페니시 송 페스티벌에 참가해 자작곡 'La Vida Sigue Igual'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콜롬비아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가수로 데뷔했다.
대학 졸업 후 바인도튼 스페니시 송 페스티벌에 참가해 자작곡 'La Vida Sigue Igual'로 그랑프리를 수상하였고, 이 성공으로 콜롬비아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었다. 이후 스페인을 대표하여 브라쇼프 가요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등에 참가하며 명성을 높여갔다.
1969
[데뷔 앨범 'Yo Canto' 발매]
성공적인 데뷔 후 첫 정규 음반인 'Yo Canto'를 발매하며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그랑프리 수상과 콜롬비아 레코드사 계약 이후, 첫 정규 음반인 'Yo Canto'를 발매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1978
[세계 무대 진출의 서막]
CBS 인터내셔널과 계약을 맺으며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로 앨범을 제작하고 미국과 영국 시장을 목표로 하는 등 세계적인 가수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CBS 인터내셔널과 계약을 맺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진출하였다.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로 앨범을 제작했고, 미국과 영국 시장을 목표로 하여 영어로도 앨범을 녹음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79
배우자 이사벨 프레이슬레르와 이혼하였다.
1984
[앨범 '1100 Bel Air Place' 세계적 대히트]
듀엣 모음집 '1100 Bel Air Place'를 발매하여 미국 내에서만 300만 장 이상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그의 절정기를 알렸다. 'Begin the Beguine'이 넘버원 히트를 치는 등 이전부터 성공은 시작되었다.
듀엣 모음집 '1100 Bel Air Place'가 발매되어 미국 내에서만 3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성공은 앞서 'Begin the Beguine'이 넘버원 히트를 친 데 이어 그의 절정기를 확고히 했다.
2010
미란다 린스부르게르와 재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