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준 (국악인)
국악인, 거문고 연주가, 음악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19:32
백낙준은 1884년 출생하여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한 거문고 산조의 명인이다. 가야금 산조 양식을 본떠 거문고 산조를 창작하고 연주하며 전통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의 음악은 제자들을 통해 전승되었으며, 남긴 음반은 오늘날 그의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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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
[거문고 명인 백낙준 출생]
근세 조선의 거문고 산조 명인 백낙준이 충청도 청양군 정산면 덕성리에서 백명수와 박길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백낙준은 1884년 충청도 청양군 정산면 덕성리에서 부 백명수와 모 박길주의 장남으로 태어나, 잠시 연기군 소정면에서 유아기를 보낸 후 논산군 연산면 연산리 본가에서 성장했다.
1893
[거문고 산조 국악 입문 및 활동 시작]
10세의 나이로 거문고 산조 국악에 본격적으로 입문하여 국악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가야금 산조 양식을 본떠 거문고 산조를 작곡하고 연주하여 주목받았다.
고종 치세 중후기인 1893년(당시 10세)에 백낙준은 거문고 산조 국악에 본격 입문하며 국악 활약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전해오던 가야금 산조 양식을 본따 거문고 산조를 작곡하여 연주했으며, 새로운 시도에 대한 비난과 함께 갈채를 받았다.
1926
[한국독립당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 역임 시작]
1926년부터 이듬해까지 한국독립당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 직위를 역임하며 정치적 활동에도 관여했다.
1926년부터 이듬해인 1927년까지 백낙준은 한국독립당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 직위를 지내며 국악 활동 외에도 사회 참여적인 면모를 보였다.
1929
[거문고 산조 음반 취입]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거문고 산조 음반 3장을 취입하여 그의 음악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산조는 진양조-중모리-엇모리-자진모리로 구성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백낙준은 거문고 산조 음반 3장을 취입했다. 이 음반들은 그의 독특한 산조 음악 양식(진양조-중모리-엇모리-자진모리)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승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1932
백낙준은 1932년 이후 폐렴과 위장병의 합병증이라는 지병으로 투병 생활을 시작했으나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1936
1932년부터 지병(폐렴과 위장병의 합병증)으로 투병하던 백낙준은 건강 회복을 하지 못하고 1936년에 향년 53세로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면 연산리에서 병사했다. 그의 산조 음악은 제자 김종기, 박석기, 신쾌동에 의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