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고대 군주, 예언자, 음악가, 시인, 군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1-16- 12:03:35
다윗은 기원전 1010년부터 970년까지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한 제2대 왕이자 위대한 예언자입니다. 목동 시절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며 이름을 알렸고, 통일 이스라엘의 기반을 다지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종교적, 문화적 번영을 누렸으나, 밧세바 사건과 아들 압살롬의 반란 등 개인적인 시련도 겪었습니다. 그는 메시아의 조상으로도 불리며 성경에 깊은 영향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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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k
[다윗,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다]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난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목동으로 성장하며 음악과 시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훗날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될 그의 삶이 시작된 순간입니다.
다윗은 기원전 1040년경 베들레헴에서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목동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시적인 감성을 키웠습니다.
[다윗,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다]
목동이던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를 조롱하던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무릿매 돌 하나로 쓰러뜨렸습니다. 이 승리로 다윗은 일약 영웅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의 용기와 신앙이 돋보인 세계적인 사건입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 중, 아무도 상대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조롱했습니다. 이때 어린 목동 다윗은 무릿매와 돌 다섯 개를 들고 나아가, 정확히 이마를 맞춰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죽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사울 왕에게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윗,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다]
사울 왕의 질투를 피해 도망자 신세가 되었던 다윗은 사울 왕의 사망 후, 그의 지지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유다 지파의 왕으로 먼저 즉위했습니다. 이는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기틀을 다지는 첫걸음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사망한 후,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7년 6개월 동안 유다 지파만을 통치하며 백성들의 신뢰를 얻었고, 훗날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다윗,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되다]
유다 지파의 왕으로 7년간 통치한 다윗은 온 이스라엘 지파의 추대를 받아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제2대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는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7년 6개월간 통치한 다윗은, 이후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지도자들의 추대를 받아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총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으며, 이 시기는 이스라엘 왕국의 황금기로 기록됩니다.
BC 10C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다]
다윗은 출애굽 이후 약 400년간 정복되지 못했던 시온성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주변을 정복하여 수도로 삼았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를 확립하는 중요한 업적이었습니다.
다윗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된 후, 오랜 기간 정복되지 못했던 여부스 족의 시온성을 성공적으로 점령했습니다. 그는 이곳을 '다윗성'이라 명명하고 예루살렘을 통일 왕국의 수도이자 종교적 중심지로 확립하여 이스라엘의 안정과 번영을 이끌었습니다.
[다윗, 밧세바와 우리아 사건으로 죄를 짓다]
왕이었던 다윗은 전쟁터에 나간 군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겁간하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에서 죽도록 조치하는 중대한 죄를 범했습니다. 예언자 나단을 통해 죄를 깨달은 다윗은 회개했지만, 그의 집안에 재난이 닥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군인들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우연히 본 밧세바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녀를 불러 겁간했습니다. 이후 밧세바가 임신하자, 다윗은 이를 은폐하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의 최전선에 보내 죽게 만들었습니다. 예언자 나단의 책망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달은 다윗은 깊이 회개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다윗의 집안에는 여러 재앙이 끊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반란을 일으켜 다윗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떠나 피신해야 했지만, 요압 장군의 활약으로 반란을 진압하고 왕위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에 대한 반란을 계획하고, 헤브론에서 스스로 왕이 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유능한 모사 아히도벨을 끌어들여 예루살렘으로 진격했고, 다윗은 한때 예루살렘을 떠나 피신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충신들과 요압 장군의 활약으로 압살롬의 반란은 결국 진압되었고, 다윗은 왕권을 회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들 압살롬의 죽음으로 다윗은 큰 슬픔을 겪었습니다.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사망하다]
다윗은 자신의 생애 마지막까지 백성과 하나님을 위해 봉사했으며, 하나님을 위한 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이후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다윗은 오랜 통치 기간 동안 이스라엘 왕국을 굳건히 세웠으며,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한 토지와 자재, 설계를 마련했습니다. 그는 노년에 이르러 아들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왕위를 계승하게 한 후, 기원전 970년경 예루살렘에서 사망했습니다. 그의 아들 솔로몬은 다윗의 유업을 이어받아 성전을 건축하고 이스라엘 왕국의 번영을 지속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