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 (조선)
왕, 군주,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14:25
문종은 세종대왕의 맏아들이자 조선 최초의 적장자 출신 국왕이다. 7세에 왕세자로 책봉된 그는 탁월한 학문적 재능과 인품으로 평가받았으며, 세계 최초의 측우기를 발명하는 등 과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세종의 병환으로 8년간 대리청정하며 국정을 미리 경험했으며, 즉위 후 언론 활성화와 국방 정비에 힘썼다. 하지만 병약했던 그는 재위 2년 3개월 만에 37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하며 조선에 비극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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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4
조선의 제4대 국왕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훗날 조선 왕조 최초로 적장자로서 왕위에 오르는 인물이 된다.
1421
세종과 소헌왕후의 장자로 태어나, 7세의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세자사 하연을 스승으로 삼아 학문을 닦았고, 어렸을 때부터 관대한 인품과 학문적 열정으로 칭송받았다.
1429
[첫 번째 세자빈 휘빈 김씨 폐위]
왕세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주술을 사용한 사실이 발각되어 첫 번째 세자빈 휘빈 김씨가 폐위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례를 올렸던 첫 번째 세자빈 휘빈 김씨가 세자의 사랑을 얻으려 주술을 이용하다 발각되어 폐위되었다.
1433
왕세자빈 권씨(당시 승휘)가 낳은 첫 왕녀가 한 살이 되기도 전에 사망하여 왕실에 애도를 표했다.
1436
두 번째 세자빈 순빈 봉씨는 폭력적인 성품을 보였고, 궁녀와 동침하는 등 동성애적 행위가 발각되어 폐위되었다.
1441
[세계 최초 측우기 발명]
가뭄을 걱정하던 세자가 강우량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측우기를 발명하여 뛰어난 과학적 재능을 선보였다.
세자가 가뭄을 걱정하여 비가 올 때마다 빗물의 양을 측정하고자 노력했고, 결국 구리로 그릇을 만들어 빗물 괴인 푼수를 실험하는 측우기를 발명했다. 이는 세계 최초의 정량적 강우량 측정기로, 세자의 천문학과 산술에 대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단종 탄생]
세 번째 세자빈 현덕왕후 권씨가 훗날 조선 6대 임금이 될 단종을 낳아 왕실의 대를 이을 중요한 혈통이 탄생했다.
세자빈 권씨가 원손(훗날 단종)을 낳아 대사면령이 내려지는 등 왕실의 경사였다.
[현덕왕후 권씨 사망]
단종을 낳은 지 하루 만에 세자빈 현덕왕후 권씨가 산후병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여 왕실은 큰 슬픔에 잠겼다.
원손 단종을 낳은 다음 날, 세자빈 권씨가 산후병으로 졸(卒)하여 왕실에 비극이 닥쳤다.
1442
세종이 병환으로 국사를 돌볼 수 없게 되자, 세자는 8년간 아버지 세종을 대신하여 국사를 처리하며 사실상 국왕의 업무를 수행했다. 이 기간 동안 문신과 무신을 고루 등용하고 언관의 언론에 관대한 정치를 펼쳐 민심을 파악하는 데 힘썼다.
1445
승휘 홍씨의 딸인 왕녀가 4살에 사망하여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1450
[세종 승하 및 즉위]
29년간 왕세자로 아버지를 보필하고 8년간 대리청정을 한 후, 세종이 승하하자 조선의 제5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오랜 기간 왕세자로서 세종의 정치를 보필하고 대리청정을 통해 국정을 경험한 후, 세종이 승하하자 조선의 제5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대리청정 덕분에 즉위 후 정사 처리에 공백이 없었다. 그는 조선 최초의 적장자 출신 국왕이었다.
즉위 직후 명나라에 책봉 주청사를 보냈으며, 그해 음력 5월 명나라로부터 정식 국왕으로서의 책봉 고명을 받았다.
1451
궁인 양씨의 딸인 왕녀가 2살에 사망하여 왕실의 슬픔을 더했다.
1452
[병으로 인한 승하]
아버지 세종과 어머니 소헌왕후의 삼년상을 연이어 치르며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즉위 2년 3개월 만에 37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했다.
아버지 세종과 어머니의 삼년상을 연속적으로 치르면서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즉위한 지 2년 3개월 만인 37세를 일기로 경복궁 천추전에서 승하하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어린 단종에게 큰 위협으로 작용하게 된다.
1512
현덕왕후 권씨는 원래 소릉에 안장되었다가 계유정난 이후 폐위되어 재궁이 버려졌었다. 이후 중종 7년인 1512년에 문종의 현릉에 합장되어 비로소 함께 안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