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교육자, 학생, 임시정부 관계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13:46
충남 서천 출생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상하이에서 유학생 활동을 주도하고 축구를 통해 세계에 독립 의지를 알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국내 독립자금 모금 활동 전개.
독일 유학 중에도 고려학우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 지속.
귀국 후 교육 및 민족 자본 육성 등 다양한 형태로 조국 독립에 헌신.
1993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어 공훈을 인정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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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독립운동가 김갑수, 서천에서 출생]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김갑수가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애는 조국 독립을 위한 헌신과 희생으로 점철되었다.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독립운동가 김갑수가 1894년 9월 3일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났다.
1915
[상하이 유학 중 독립운동 활동 개시]
이상재와 함께 상하이 남양대학에 유학하며 여운형 등과 교류, 해외 조선인유학생회를 주도하고 중국대학 축구 대표로 세계에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알리는 등 본격적인 독립운동 활동을 시작했다.
1915년, 월남 이상재와 중국 상하이 남양대학으로 건너가 여운형, 서병호, 조동호 등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의 뜻을 키웠다. 여운형이 이끄는 전 중국대학 축구 대표선수로 선발되어 필리핀 원정을 통해 일제 침략의 부당성과 민족의 자주성을 세계에 알렸다. 또한, 상하이 재해외 조선인유학생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1918
[국내 독립운동 동지 규합 시도 중 탈출]
애국 동지들을 규합하기 위해 국내에 진입했으나 군산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한국인 간수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탈출하여 상하이로 복귀하며 독립운동 의지를 꺾지 않았다.
1918년, 국내에 진입하여 애국 동지들을 규합하려 했으나 군산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다. 다행히 한국인 간수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 상하이로 다시 돌아갔다.
1919
[임시정부 수립 참여 및 독립자금 마련 노력]
상하이에서 초대 의정원 의원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으며, 임시정부 발행 채권을 가지고 국내에 들어와 전북 임피 등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는 데 힘썼다.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초대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임시정부 발행 채권을 가지고 국내에 잠입, 전북 임피 등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21
[독일 유학, 유럽 지역에서 독립운동 활동 전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선으로 독일 뷔쯔부르크 대학에 유학하며 베를린 고려학우회를 조직하는 등 유럽 지역에서도 독립운동 활동을 이어가며 국외 활동의 폭을 넓혔다.
192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선으로 독일 뷔쯔부르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중 베를린 고려학우회(高麗學友會)를 조직하여 유럽에서도 활발한 독립운동 활동을 전개했다.
1926
[귀국 후 교육자 및 민족 산업 육성에 기여]
귀국 후 이상재의 권유로 배재학교 교감으로 7개월간 재직했으나 일경의 탄압으로 북간도 용정 동흥학교 교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1927년에는 전북 완주 봉동의 봉우산업조합 이사로 참여하며 민족 자본 육성에도 힘썼다.
1926년 귀국한 김갑수는 이상재의 권유로 배재학교 교감으로 7개월간 근무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학교를 떠나 북간도 용정의 동흥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했다. 1927년에는 다시 귀국하여 전북 완주 봉동에서 윤건중이 설립한 봉우산업조합에 이사로 참여, 민족 자본 육성에 기여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1938
[독립운동가 김갑수, 43세의 나이로 별세]
민족자본 육성을 위한 봉우산업조합 활동 중 1938년 8월 16일에 별세하였다. 조국 독립을 위한 그의 열정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1927년부터 봉우산업조합 이사로 활동하던 중, 1938년 8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43세.
1993
[정부, 독립운동 공훈 기려 건국포장 추서]
대한민국 정부는 고 김갑수 독립운동가의 공훈을 기려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희생과 헌신은 후대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김갑수 선생의 공로를 인정하여,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