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희 (일제 강점기 관리)
일제강점기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13:31
강동희는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관료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입니다. 진산군 서기를 시작으로 만경금융조합장, 도평의원 등을 역임하며 식민 통치에 협력했습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활동하며 일제에 적극적으로 동조했습니다.
본 문서는 위키백과 강동희 (일제 강점기 관리) 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편집되었으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배포됩니다.
1886
강동희는 1886년 10월 8일 태어났으며, 본관은 진주이다.
1910
1910년 10월 1일부터 1912년 1월 23일까지 전라북도 진산군 서기를 역임하며 지역 행정에 관여했다.
1912
1912년 8월 1일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 병합 기념장을 받았다. 이는 그가 일제에 협력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1913
1913년 전라북도 만경군 서기로 재직했다.
1914
1914년부터 1920년까지 전라북도 김제군 서기로 재직했다.
1920
1920년 12월 20일 전라북도 민선 도평의회원으로 임명되어 지역 주민의 대표로서 도정에 참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25
1925년 동진수리조합 실행위원을 역임하며 농업 생산력 증대라는 명목 아래 일제의 식민 정책에 기여했다.
1933
1933년 만경금융조합장을 역임하며 지역 금융 시스템 운영에 참여했다.
[전라북도 민선 도회의원 역임 시작]
전라북도 민선 도회의원으로 선출되어 지역 현안을 논의하고 일제의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했다.
1933년 5월 19일부터 1936년 1월 24일까지 전라북도 민선 도회의원을 역임했다. 이는 그가 일제 식민 통치 체제 안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았음을 보여준다.
1935
1935년 김제군 성덕면협의회원과 전라북도 김제군 학교평의원을 역임했다.
1936
1936년 2월 4일 전라북도 관선 도회의원으로 임명되었다.
1937
1937년 5월 11일 전라북도 관선 도회의원으로 다시 임명되었다.
1938
1938년 김제어업조합장을 역임했다.
1939
1939년 조선유도연합회 평의원과 전라북도 유도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친일 단체 활동에 참여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역임 시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어 일제의 식민 통치 자문 기관에서 활동하며 적극적인 친일 행적을 보였다.
1939년 6월 3일부터 1942년 6월 2일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 중추원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협력자를 포섭하는 역할을 했다.
1941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을 역임하며 일제의 태평양 전쟁을 지원하고 내선일체, 황민화 정책을 선전하는 데 앞장섰다.
[부여신궁 공사 근로봉사 참여]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일원으로 부여신궁 공사 근로봉사에 참여하여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 등 황민화 정책에 동조했다.
1941년 6월,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여신궁 공사 근로봉사에 참여했다. 이는 일제의 식민 통치와 황민화 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의 일환이었다.
1964
강동희는 1964년 7월 12일 사망했다. 해방 후 그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