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H 사건
노동운동, 민주화 운동, 시위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8- 22:17:17
YH 사건은 1979년 YH 무역 여성 노동자들이 폐업에 항의하여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한 사건입니다. 경찰의 강제 해산 과정에서 노동자 김경숙이 추락사했으며, 이는 박정희 정권 종말의 도화선이 된 중요한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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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
[YH 사건, 박정희 정권 종말의 도화선이 되다]
YH 사건은 1970년대 일대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으로, 사건 직후 야당 및 민주화 운동 세력이 반유신 투쟁에 나서는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김영삼 의원 제명 파동, 부마민중항쟁, 그리고 10·26 사태로 이어지며 박정희 정권 종말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YH 사건은 단순한 노동 쟁의를 넘어 1970년대 대한민국 여성 노동운동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사건 직후 야당인 신민당과 다양한 민주화 운동 세력은 공동전선을 형성하여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YH 사건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국회의원 제명 파동을 촉발했고, 이는 부마민주항쟁으로 번져나갔습니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10·26 사태와 연결되며 박정희 유신 정권의 종말을 불러오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YH 무역 폐업 공고]
대한민국 최대 가발수출업체였던 YH 무역이 경영난 심화 끝에 1979년 3월 폐업을 공고했습니다. 사장 장용호는 회사의 재산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1970년대 초 수출 순위 15위였던 YH 무역은 1970년대 중반부터 수출 둔화, 업주의 자금 유용, 무리한 기업 확장 등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들었습니다. 결국 1979년 3월 폐업을 공고하며 사장 장용호는 재산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YH 노동조합 장기 농성 돌입]
1975년 설립된 YH 무역 노동조합은 폐업 위기에 맞서 회사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고 노력을 기울였으나, 회사 측과 정부 당국의 무성의한 태도에 1979년 4월 13일부터 장기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1975년 설립 이후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YH 무역 노동조합은 회생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회사 측과 정부 당국이 시종일관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자, 1979년 4월 13일부터 장기 농성을 시작하며 항의의 뜻을 밝혔습니다.
[YH 노동자 신민당 당사 농성 시작]
YH 무역 노동자 172명은 도시산업선교회의 알선으로 사회적 파급효과를 고려하여 1979년 8월 9일 서울 마포구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을 감행했습니다. 당시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이들을 위로하며 지지를 약속했습니다.
1979년 8월 9일부터 YH 무역 노동자 172명은 도시산업선교회의 도움을 받아 당시 야당인 신민당의 당사가 위치한 서울 마포구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농성 현장을 찾은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여러분이 마지막으로 우리 당사를 찾아 준 것을 눈물겹게 생각한다", "우리가 여러분을 지켜주겠으니 걱정말라"며 노동자들을 안심시키고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경찰의 신민당 당사 강제 진압 및 김경숙 노동자 추락사]
1979년 8월 11일 새벽, 경찰 1천-2천여 명이 투입되어 신민당 당사 농성을 강제 해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김경숙(당시 21세)이 추락사했으며, 김영삼 신민당 총재도 강제로 연행되었습니다. 경찰은 초기 투신 자살로 발표했으나, 후에 강제 진압 과정에서의 추락사로 밝혀졌습니다.
1979년 8월 11일 새벽 2시경, 경찰은 신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치안상의 이유를 들어 1천-2천여 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20여분 만에 신민당 당사 농성을 강제 해산시켰습니다. 신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몸싸움을 벌였으나 역부족이었고, YH 무역 노동자들은 모두 강제 연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건물 옥상에 있던 노동자 김경숙(당시 21세)이 몽둥이에 맞아 추락사했습니다. 경찰은 처음에는 투신 자살로 조작 발표했으나,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 경찰의 강제 진압 과정에서 추락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 역시 경찰에 의해 상도동 집으로 강제로 끌려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 10여명, 신민당원 30여명, 취재기자 12명 등 총 52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YH 사건 주동자 및 배후조종자 구속]
YH 사건이 발생한 직후인 1979년 8월 17일,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회사 노조간부들을 주동자로 구속하고, 배후조종자로 도시산업선교회 소속 인명진 목사 등 7명을 구속했습니다.
1979년 8월 17일, 경찰은 YH 사건의 주동자로 회사 노조 간부들을 구속하고, 이들의 배후를 조종한 혐의로 도시산업선교회 소속 인명진 목사를 비롯한 7명을 구속하였습니다. 이 구속 조치는 사건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