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알베르토 수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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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2-08- 1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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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출신의 세계적인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는 뛰어난 득점력과 결정력으로 여러 빅클럽을 거치며 수많은 우승과 개인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핵이빨', '신의 손'과 같은 기행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압도적인 실력으로 모든 것을 증명해낸 축구계의 아이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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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우루과이 살토에서 태어남]

우루과이 살토에서 7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으며, 7살 때 가족과 함께 몬테비데오로 이사하여 어린 시절부터 축구 실력을 키웠습니다.

루이스 알베르토 수아레스 디아스는 1987년 1월 24일 우루과이 살토에서 7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7살 때 가족이 몬테비데오로 이사했으며, 9살 때 부모가 결별했습니다. 몬테비데오에서 길거리 축구를 통해 기술을 익혔으며, 형인 파올로 수아레스 또한 프로 축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991

[아르티가스 데 살토 유소년팀 입단]

아르티가스 데 살토 유소년팀에 입단하여 축구 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1991년경 아르티가스 데 살토 유소년팀에 입단하며 축구 선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94

[우레타 유소년팀 합류]

우레타 유소년팀에서 축구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1994년경 우레타 유소년팀에 합류하여 축구 훈련을 계속했습니다.

2001

[클루브 나시오날 유소년팀 가입]

클루브 나시오날 데 푸트볼 유소년팀에 가입하며 본격적인 프로 선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2001년경 자신이 살던 지역의 명문 팀인 클루브 나시오날 데 푸트볼의 유소년팀에 가입하여 체계적인 훈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음주 파티가 적발되어 코치로부터 진지하게 축구를 하지 않으면 경기를 뛸 수 없다는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2005

[클루브 나시오날 1군팀 데뷔 및 리그 우승 기여]

18세의 나이로 클루브 나시오날 1군팀에 데뷔하며 프로 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후 리그에서 10골을 넣으며 나시오날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18세의 나이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주니어전에서 클루브 나시오날 1군팀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9월에는 첫 득점을 기록했으며, 리그 27경기에 출장하여 10골을 넣는 활약으로 나시오날의 2005-06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도왔습니다.

2006

[유럽 진출, 네덜란드 흐로닝언 이적]

유럽 무대 진출을 위해 네덜란드의 FC 흐로닝언으로 이적했습니다. 이는 당시 여자친구였던 소피아 발비가 바르셀로나에 있었기 때문에 유럽으로 떠나고 싶어 했던 그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기도 했습니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네덜란드 팀 FC 흐로닝언의 스카우트 눈에 띄어 80만 유로에 이적했습니다. 여자친구 소피아 발비가 바르셀로나에 있었기에 유럽 진출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7

[네덜란드 명문 아약스 이적]

흐로닝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명문 구단 AFC 아약스로 이적했습니다.

흐로닝언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후, 2007년 네덜란드의 명문 구단 AFC 아약스로 이적하여 더 큰 무대에서 기량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 데뷔 및 퇴장]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우루과이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가졌으나, 85분경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며 강렬하지만 아쉬운 데뷔를 치렀습니다.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우루과이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경기 85분경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며 좋지 않은 첫인상을 남겼습니다.

2010

[아약스 리그 득점왕 및 KNVB컵 우승]

아약스에서 주장을 맡아 리그 35골로 득점왕, 네덜란드 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석권했습니다. 공식 경기 49골을 기록하며 팀의 KNVB컵 우승을 이끌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2009-10 시즌 AFC 아약스의 주장을 맡아 에레디비시에서 33경기 35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왕과 네덜란드 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에 수상했습니다. 또한 공식 경기 49골을 넣는 압도적인 활약으로 아약스의 2009-10 KNVB컵 우승을 견인했습니다.

['핵이빨' 첫 등장, 상대 선수 물어뜯는 기행]

아약스 소속으로 PSV와의 경기 중 상대 선수 오트만 바칼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기행으로 7경기 출장 금지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핵이빨' 논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AFC 아약스에서 뛰던 당시 PSV 에인트호번과의 경기에서 상대팀 선수들과 언쟁을 벌이던 중 PSV 선수 오트만 바칼의 왼쪽 목덜미를 물어뜯는 엽기적인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네덜란드 축구협회로부터 7경기 출장 금지 조치를 당했으며, 이는 그의 경력에서 반복될 '핵이빨' 논란의 첫 사례였습니다.

[2010년 월드컵 '신의 손' 사건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다]

2010년 FIFA 월드컵 8강 가나전에서 연장전 막판 결정적인 골 찬스를 고의적인 핸드볼 파울로 막아 퇴장당했으나, 상대의 페널티킥 실축으로 팀은 4강에 진출했습니다. 이는 '2010년판 신의 손'으로 불리며 큰 논란을 낳았습니다.

가나와의 2010년 FIFA 월드컵 8강전에서 1-1로 비기고 있던 연장전 종료 직전, 가나의 결정적인 골 찬스를 고의적으로 손으로 쳐내어 퇴장당하고 페널티킥을 내주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의 아사모아 잔이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우루과이는 승부차기 끝에 4강에 진출했습니다. 이 사건은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일으킨 '신의 손'에 비유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2011

[맨유 에브라와 인종차별 논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비수 파트리스 에브라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는 혐의로 8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는 남미와 유럽의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로 밝혀졌지만,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리버풀 이적 후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맨유 수비수인 파트리스 에브라에게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했다는 혐의로 법정에까지 몰렸습니다. 이는 남미에서 흔히 흑인들에게 친근한 표현을 쓴 것이었으나, 에브라는 인종차별적 언어로 인식하여 잉글랜드 축구협회로부터 8경기 출장 금지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이적]

2,650만 유로의 이적료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리버풀 FC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합류는 리버풀의 시즌 성적 반등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650만 유로(약 404억 원)의 이적료를 받고 리버풀 FC로 이적했습니다. 시즌 중 참가한 그의 도움으로 1월 중순까지 리그 12위였던 리버풀은 6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2011 코파 아메리카 우승 및 최우수 선수 선정]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4골을 기록하며 우루과이의 15번째 우승을 이끌었고, 개인적으로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며 남미 최고의 선수임을 입증했습니다.

새로운 소속팀 리버풀에서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마친 뒤 2011년 코파 아메리카 우루과이 대표팀에 소집되었습니다. 페루와의 조별예선 1차전에서 동점골을 넣고, 4강전에서 2골, 파라과이와의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넣어 우루과이의 우승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으나, 득점왕은 5골을 넣은 파올로 게레로에게 1골 차이로 아쉽게 놓쳤습니다.

2012

[리버풀에서 첫 우승 트로피 획득]

리버풀 소속으로 풋볼 리그 컵 2011-12에서 우승하며 잉글랜드 무대에서 첫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2012년 2월, 풋볼 리그 컵 2011-12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리버풀에서 개인 첫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에버튼전 '다이빙 세레머니' 논란]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에버튼 감독의 비난에 맞서 선제골을 넣은 뒤 '다이빙 세레머니'를 선보이며 또 다른 논란을 만들었습니다.

2012년 10월 머지사이드 더비를 앞두고 에버튼의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수아레스와 같은 다이버들이 잉글랜드 축구 팬들을 떠나게 한다"고 비난하자, 그는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모예스 감독 앞으로 달려가 실제 다이빙 세레머니를 선보였습니다.

2013

[첼시전 '핵이빨' 재발, 10경기 중징계]

첼시와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의 팔을 물어뜯는 충격적인 행동으로 10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으며 '핵이빨' 논란이 재점화되었습니다.

2013년 4월, 첼시 FC와의 경기에서 또다시 상대 선수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의 팔을 깨무는 행위를 하였습니다. 비록 경기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했지만, 잉글랜드 축구협회로부터 10경기 출장 금지라는 중징계를 당하며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우루과이 역대 최다 득점 선수 등극]

35골을 기록하며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선수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2013년 6월 23일, 국가대표 경기에서 총 35골을 기록하며 우루과이 역대 최다 득점 선수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최다 해트트릭 기록 수립]

프리미어리그에서 5번째 해트트릭을 기록, 17.4 경기마다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빠른 해트트릭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3년 12월 4일,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5번째 해트트릭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17.4 경기마다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프리미어리그 사상 가장 잦은 해트트릭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2014

[월드컵 남미 예선 최다 득점 기록 수립]

2014년 FIFA 월드컵 남미 지역 예선에서 총 11골을 기록하며 에르난 크레스포의 기록을 넘어 남미 지역 예선 역사상 최다 득점자에 등극했습니다.

2014년 FIFA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에서 총합 11골을 기록하여 기존의 최다 득점자인 에르난 크레스포의 9골 기록을 제치고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 역사상 최다 득점자가 되었습니다. 이 기록은 리오넬 메시, 곤살로 이과인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달성한 것이어서 더욱 빛났습니다.

[2014년 월드컵 이탈리아전 '핵이빨' 사건과 중징계]

2014년 FIFA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상대 수비수 조르조 키엘리니의 어깨를 물어뜯는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국제 경기 9경기 출전 금지 및 4개월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핵이빨' 이미지를 굳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4년 FIFA 월드컵 본선 마지막 경기인 이탈리아전에서 센터백 조르조 키엘리니의 어깨를 깨무는 행위를 하였습니다. 비록 심판에게 발각되지는 않았지만 비디오 판독을 통해 밝혀졌고, FIFA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벌금 10만 스위스 프랑, A매치 9경기 출전 정지, 4개월 선수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는 2010년 PSV전, 2013년 첼시전에 이은 세 번째 '핵이빨' 사건으로, 그의 축구 경력에 오점을 남겼습니다.

[세계적인 명문 FC 바르셀로나로 이적]

당시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였던 FC 바르셀로나와 5년 계약을 체결하며 이적했습니다. 그는 징계 이후 팀에 합류하여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2014년 7월 11일, 수아레스는 FC 바르셀로나와 5년 계약을 체결하며 세계 최고의 공격 트리오 'MSN'(메시, 수아레스, 네이마르)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징계에서 풀려난 후 팀에 합류했습니다.

2015

[바르셀로나 이적 첫 시즌, 역사적인 트레블 달성]

바르셀로나 이적 첫 시즌, 41경기 24골 20도움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팀의 라리가, 국왕컵, UEFA 챔피언스리그 트레블 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14-15 시즌, 바르셀로나에 합류한 수아레스는 시즌 41경기 24골 20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팀이 라리가, 국왕컵, UEFA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석권하는 역사적인 트레블을 달성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우승에 일조했습니다.

2016

[라리가 득점왕 등극, 메시-호날두 양강체제 붕괴]

2015-16시즌 라리가에서 40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8년간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양분하던 라리가 득점왕 자리를 깨뜨리며 세계 축구계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2015-16 시즌 스페인 BBVA 라리가에서 한 시즌 40득점을 기록하며 득점 부문 1위를 차지했습니다. 8년간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만 허락되었던 라리가 득점왕 경쟁을 8년 만에 깨뜨리며 세계 축구계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2020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

FC 바르셀로나를 떠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팀에서 9번 등번호를 배정받고 다시 한번 자신의 기량을 증명할 준비를 했습니다.

2020년 9월 23일, FC 바르셀로나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의 이적이 발표되었습니다. 9월 25일 최종적으로 2년 계약을 체결하고 등번호 9번을 배정받으며 새로운 라리가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202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적 첫 시즌, 라리가 우승 주역]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적 첫 시즌, 팀의 핵심 공격수로 활약하며 라리가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득점력은 팀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적 첫 시즌인 2020-21 시즌, 리그에서 21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라리가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바르셀로나를 떠나 새로운 팀에서 다시 한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2022

[프로 데뷔팀 나시오날로 복귀]

오랜 스페인 생활을 마치고 자신의 프로 데뷔 팀인 우루과이의 클루브 나시오날로 복귀하며 고국 팬들에게 뜨거운 환영을 받았습니다.

2022년 7월, 스페인 생활을 청산하고 프로 데뷔 팀인 클루브 나시오날로 복귀했습니다. 이는 많은 우루과이 팬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2022 월드컵 가나전 앞두고 '신의 손' 발언 논란]

2022년 FIFA 월드컵 조별리그 가나전 직전, 12년 전 '신의 손' 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받자 "사과할 필요 없다. 페널티킥 놓친 건 가나다"라고 답해 다시 한번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2022년 FIFA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가나전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12년 전 '신의 손' 핸드볼 파울 사건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과할 필요 없다. 페널티킥 놓친 건 가나다"라고 답하며 가나에 대한 존중 없는 거만한 태도를 보여 다시 한번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결국 이 인터뷰가 발단이 되어 우루과이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습니다.

[브라질 그레미우와 계약]

클루브 나시오날과의 계약 종료 후 브라질의 그레미우와 계약하며 브라질 무대로 진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의 짧은 복귀 시즌을 마친 후, 2022년 12월 31일 브라질 세리이 A의 그레미우와 계약을 맺으며 브라질 무대에 진출했습니다.

2023

[미국 인터 마이애미 입단, '바르셀로나 동료'들과 재회]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의 인터 마이애미에 입단하며 FC 바르셀로나 시절 동료였던 리오넬 메시, 세르히오 부스케츠, 조르디 알바와 재회했습니다.

2023년 12월 22일, 메이저 리그 사커의 인터 마이애미에 입단하며 자신의 바르셀로나 시절 동료들이었던 리오넬 메시, 세르히오 부스케츠, 조르디 알바와 다시 한 팀에서 뛰게 되었습니다. 이는 전 세계 축구 팬들의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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