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작가)

철학자, 수필 작가, 대학 교수, 백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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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2-04- 15: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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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수필 작가, 대학 교수, 백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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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철학자, 수필 작가, 대학 교수이자 백세인. 1920년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태어나 서양 철학 1세대로 불리며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를 역임했다. 기독교적 실존주의를 바탕으로 한 철학적 수필로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규칙적인 생활과 절제로 건강을 유지하며 백세 철학자로 존경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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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김형석 작가 출생]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출생하여 평양 만경대 일대에서 성장했다.

1920년 4월 23일,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출생한 뒤 평양 만경대 일대인 일제 시대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송산리(현재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괴 영토의 수도 평양시의 만경대구역)에서 성장하였다.

1938

[숭실고보 자퇴]

숭실고보에서 윤동주와 함께 도산 안창호에게 사사한 후 숭실고보를 자퇴했다.

숭실고보에서 윤동주와 함께 도산 안창호에게 사사했으며, 이후 1938년 2월 숭실고보를 자퇴했다. (참고: 1990년 12월 서울 숭실고등학교 명예 졸업장 수여)

1939

[평양제3고보 졸업]

평양제3고보를 졸업했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43

[일본 조치대학교 철학과 졸업]

일본 로마 가톨릭교회가 세운 조치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당시 대학 후배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수학했다.

1943년 3월, 일본 로마 가톨릭교회가 세운 조치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당시 대학 후배 김수환 추기경과 같이 함께 수학하기도 했다.

1944

[부친상]

병으로 부친상을 치렀다.

1944년에 병으로 부친상을 치렀다.

1945

[을유광복 (8.15 해방)]

태평양 전쟁에 주요 참전했던 일제가 패하며 망한 뒤, 을유광복을 맞이했다. 이로써 북한에 소군정이 들어서며 공산주의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1945년 8월 15일 을유 광복(8·15 해방)으로써, 태평양 전쟁에 주요 참전했던 일제가 패하여 망한 뒤에, 갑작스레 북괴에 소군정이 들어와서 북한이 갈수록 소련으로부터 공산주의화가 되어갔다.

1947

[북한 탈출 시작]

공산주의화 되어가는 북한을 벗어나기 위해 과부 홀어머니, 부인, 자녀들, 그리고 동료 안병욱 교수 가족 등 8명과 함께 평양 탈출을 감행했다. 황해도 수안군 예성강 선로에서 배를 타고 벽란도 항에 도착, 다시 배를 갈아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1947년 2월 8일, 장로교 평신도인 그는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위해 과부 홀어머님, 부인 김옥수, 큰딸 김성예 교수, 큰아들 김성진 교수 등 일가족들과 동갑내기 동료 프로테스탄트 평신도 안병욱 교수와 그의 가족 등 총 8명이 평안남도 룡강을 탈출하여 평양으로 잠시 피신했다. 이후 황해도 수안군에 당도하여 예성강 선로에서 허름한 배를 얻어 타고 경기도 개풍군 벽란도항에 도착했다.

[서울로 월남 성공]

황해 해상 삼팔도선 남쪽으로 당도한 후 경기도 강화군 교동면을 거쳐 중고 어선을 타고 영종도를 경유, 인천 제물포 월미도에 최종 도착했다. 이후 경인선 열차를 타고 미군정 시대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특별자유자치시로 무사히 월남했다.

경기도 강화군 교동면에서 마지막으로 중고 어선을 빌려 갈아 탑승한 직후, 영종도를 마지막으로 경유하여, 경기도 인천부 제물포 월미도에서 항로를 최종 당도함에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중고 어선에서 모두 마지막 발을 떼어, 수중에 남아 있는 액수로써, 자신의 일행들 8명 모두 경인선 열차를 무작정 탑승하여, 1947년 3월 5일 당시, 재조선 미국 육군사령부 군정청 미군정 시대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특별자유자치시로 월남했다.

[안병욱 교수 일족, 춘천으로 이동]

김형석 교수와 함께 월남한 동갑내기 친구 안병욱 교수가 자신의 모친, 외조모와 함께 38선 이남 강원도 춘천 지역의 친누나 시댁으로 잠시 피신하여 기거했다.

1947년 3월 5일 월남 이후 사흘 지난 1947년 3월 8일, 그의 동갑내기 붕우(朋友)인 이당 안병욱 교수는 잠시나마 자신의 모친과 외조모, 이토록 함께 셋이서만 동반하여, 38선 이남 강원도 춘천 지역으로 떠난즉, 지난 1937년 아직 일제강점기 일제 시대 강원도 춘천군으로 시집 떠난, 1947년 당시 을묘년생 만32세 친누나 순흥 안씨 부인의 남쪽 강원도 시댁이기도 한 지역의 순흥 안씨 부인의 강원 춘천 시댁으로 잠시만 떠나 가서, 세명의 식객(食客)인양 강원도 춘천 지역에 잠시 피신 및 기거하였었다.

[서울중앙중·고 교사 및 교감 재직]

월남 후 서울중앙중학교와 서울중앙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와 교감으로 약 7년간 재직했다. 정진석 추기경이 당시 중앙중학교의 걸출한 제자 중 한 명이었다.

1947년 9월부터 1954년 2월까지 만으로 어언 7년 남짓 동안, 서울중앙중·고에서 국어 교사와 교감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정진석 추기경이야말로 본인(김형석)의 서울중앙중학교 교사로 재직 당시 상당히도 걸출한 제자 중 한 명이었다.

1954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임용]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1985년 2월까지 교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중도적 성향이 짙은 기독교 색채의 철학적 수필을 다수 발표하며 독자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1954년 8월부터 1985년 2월까지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1985년 2월 이후 동교 철학과 명예교수·1988년 8월 당시 동교 명예 철학박사 취득)로 교단(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비롯한 각자각자의 애제자(愛弟子)들을 길렀다. 수많은 중도주의 중도적 성향이 짙은 개신교 색채의 철학적인 수필을 발표하여 뭇 독자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1959

[수필집 《고독이라는 병》 출간 및 베스트셀러 등극]

수필집 《고독이라는 병》을 간행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의 수필은 기독교적 실존주의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삶의 지표를 제시하며 인간성이 넘치는 인본주의를 추구한다.

특히 1959년 7월 6일 당시에 간행한, 수필집 《고독이라는 병》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그의 수필은 현대인의 삶의 지표를 제시하기 위해 기독교적 실존주의를 배경으로써 하여금 현대 서구적 사회의 인간성이 넘치는 인본적 인문주의의 조건을 추구하여 부드럽고 시적인 문장으로 엮어, 뭇 독자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

1985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임용]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는 2020년 1월 이후 백세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5년 2월 이후부터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를 지내고 있다. 그는 2020년 1월 이후 백세인이다.

1988

[연세대학교 명예 철학박사 학위 취득]

연세대학교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8년 8월 당시 연세대학교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

[홀어머님 별세]

홀어머님께서 별세하셨다.

2003년 3월 홀어머님이 하세하셨다.

[부인 김옥수 여사 별세]

부인 김옥수 여사와 사별했다.

2003년 5월 부인 김옥수 여사와 사별했다.

2020

[백세인 등극]

100세를 맞아 백세인이 되었다.

2020년 1월 이후 백세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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