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 (야구인)
야구인, 야구 선수, 야구 코치, 야구 감독, 국가대표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10:00
KIA 타이거즈의 상징적인 내야수이자 감독을 역임한 야구인입니다. 현역 시절 뛰어난 수비와 빠른 발로 2002년 도루왕과 2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국가대표로 1994년 아시안게임 은메달, 2002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WBC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습니다. 은퇴 후 코치와 감독으로 활동했으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감독직에서 계약 해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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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
1973년 9월 14일, 대한민국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94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아시안 게임 야구 종목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6
[해태 타이거즈 입단 및 첫 출장]
고려대학교 졸업 후 해태 타이거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으며, KBO 리그에서 첫 경기를 치렀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해태 타이거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광주무등경기장에서 열린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경기에서 KBO 리그에 처음으로 출장했다.
2001
해태 타이거즈가 모기업 변경과 함께 KIA 타이거즈로 재창단되면서 선수로서 KIA 타이거즈에 합류하게 되었다.
2002
[도루왕, 골든글러브, 아시안게임 금메달 동시 석권]
50도루로 도루왕에 올랐고 2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리그 정상급 수비수임을 입증했다. 또한 부산 아시안게임 야구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시즌 50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했고,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여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같은 해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 야구 종목에서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며 최고의 한 해를 만들었다.
2003
삿포로에서 개최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6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고참 선수로 참여하여 팀의 4강 진출과 동메달 획득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008
KBO 리그 통산 1,000안타를 달성하여 이종범과 함께 공로패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2009
[선수 은퇴 및 마지막 경기]
KBO 리그에서 선수로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우승 멤버 4인방 중 가장 먼저 은퇴를 선언했다.
잠실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경기가 선수로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으며, 같은 해 팀의 우승 멤버였던 장성호, 이종범, 이재주 중 가장 먼저 현역에서 은퇴했다.
2010
야구 선수 은퇴 후 곧바로 KIA 타이거즈의 2군 플레잉코치로 임명되며 지도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2011
KIA 타이거즈의 1군 수비코치로 활동하며 팀의 수비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 역할은 2013년까지 이어졌다.
2014
KIA 타이거즈의 작전 및 3루주루코치를 맡아 선수들의 주루 플레이와 작전 수행을 지도했다. 이 보직은 2021년까지 유지되었다.
2019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작전코치로 활동하며, 2019년 프리미어 12 등 국제 대회에서 대표팀을 지도했다. 이 역할은 2021년까지 이어졌다.
2021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로 활동하다가 12월 5일에 KIA 타이거즈의 제10대 감독으로 선임되어 팀을 이끌게 되었다.
2024
[KIA 타이거즈 감독 계약 해지]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영장 신청 사실이 파악되어 KIA 타이거즈 감독직에서 계약 해지되었다.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KIA 타이거즈는 김종국 감독과의 계약을 해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