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1894년)

경찰관, 친일반민족행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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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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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친일반민족행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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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경찰로 복무하며 만주사변과 중일 전쟁 등 일본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하여 훈장을 받았다. 해방 후 대한민국 경찰 고위직을 역임했으나,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되었다. 그의 행적은 한국 근현대사의 복잡한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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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김종구 출생]

일제강점기 경찰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알려진 김종구가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태어났다.

1894년 2월 8일,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면 평암리에서 김종구가 태어났다. 그는 이후 일본식 이름인 가나가와 하루노리(金川治德)를 사용하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경찰로 활동했다.

1914

[조선총독부 순사보 임명]

김종구가 조선총독부 순사보로 임명되며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김종구는 1914년 9월 10일 조선총독부 순사보로 임명되어 본격적으로 식민 통치 기구의 일원이 되었다.

1919

[조선총독부 순사 임명]

김종구가 순사보에서 승진하여 조선총독부 순사로 임명되었다.

1919년 8월 20일, 김종구는 조선총독부 순사로 임명되며 경력을 이어갔다.

1922

[조선총독부 경부보 임명]

김종구가 다시 승진하여 조선총독부 경부보가 되었다.

1922년 5월 24일 김종구는 조선총독부 경부보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평안남도 용강, 평양, 강동 경찰서 등에서 근무하며 일제 식민 통치에 기여했다.

1930

[조선총독부 경부 임명]

김종구가 경부보에서 한 단계 더 승진하여 조선총독부 경부로 임명되었다.

1930년 10월 15일, 김종구는 조선총독부 경부로 임명되어 주요 보직을 맡기 시작했다. 그는 평안남도 대동경찰서, 경찰부 경무과, 안주경찰서, 진남포경찰서 등에서 경부로 재직하며 일제 식민 통치에 깊이 관여했다.

1931

[만주사변 협력 공로 상신]

만주사변 당시 철도 경비와 군수품 징발 등 일본군의 작전 수행에 적극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위로(慰勞)에 상신되었다.

1931년,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김종구는 평안남도 경부로 재직하며 군대 및 군수품 수송을 위한 철도 경비 업무를 담당하고 군용 자동차와 군수품을 징발하는 등 일본군의 작전에 적극 협력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위로(慰勞)에 상신되는 기록을 남겼다.

1935

[시정25주년기념표창 수상]

일제 식민 통치 25주년을 기념하는 시정25주년기념표창을 수상하며 일본에 대한 충성심을 인정받았다.

1935년 10월, 김종구는 일제강점기 25주년을 기념하는 시정25주년기념표창을 받았다. 이는 그가 식민 통치에 기여한 바를 일본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1937

[중일 전쟁 협력 및 선전 활동]

중일 전쟁 시기 군사 수송 철도 경비, 방공 훈련 지도, 시국 범죄 단속 및 강연회 강사로 활동하며 일본의 침략 전쟁 선전에 적극 협력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김종구는 군사 수송을 위한 철도 경비 업무를 담당하고, 방공을 위한 등화관제 훈련을 직접 지도했다. 또한 시국 범죄 방지 명목으로 민간인을 검거, 단속하고 강연회 및 좌담회 강사로 참여하여 일본의 침략 전쟁 선전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1939

[중일 전쟁 협력 공로로 훈8등 서보장 수상]

중일 전쟁에 적극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훈8등 서보장을 수여받았다.

1939년 9월 23일, 김종구는 중일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훈8등 서보장이라는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는 그의 친일 행적이 공식적으로 평가받았음을 의미한다.

1940

[공로 상신]

일본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신되었다.

1940년, 김종구는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다시 한번 일본 정부에 의해 공로(功勞)에 상신되었다. 이는 그의 친일 행적이 지속적으로 평가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1942

[평양 선교경찰서 경부로 전근]

평안남도 평양 선교경찰서 경부로 자리를 옮겨 근무했다.

1942년, 김종구는 평안남도 평양 선교경찰서 경부로 옮겨 근무를 이어갔다.

1944

[고등관 7등 승진]

일제강점기 고위 공무원 등급인 고등관 7등으로 승진했다.

1944년 2월, 김종구는 고등관 7등에 오르며 일제강점기 경찰 조직 내에서 더욱 높은 직위에 올랐다.

[평안남도 경부로 재임명]

평안남도 경부로 다시 임명되어 식민 통치 말기까지 경찰 간부로서 활동을 이어갔다.

1944년 2월 17일, 김종구는 평안남도 경부로 재임명되어 일제강점기 말기까지 일본의 식민 통치에 기여했다.

1945

[평안남도 도경시 승진 및 퇴직]

해방 직전 평안남도 도경시로 승진한 후 조선총독부 경찰에서 퇴직하며 일제강점기 경력을 마무리했다.

1945년 7월, 김종구는 평안남도 도경시로 승진한 직후 조선총독부 경찰에서 퇴직하며 약 30년에 걸친 일제강점기 경찰 경력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다.

[평안남도 경시로 단기 근무]

조선총독부 평안남도 경시로 임명되어 단 이틀간 근무했다.

1945년 7월 25일부터 7월 26일까지, 김종구는 조선총독부 평안남도 경시로 임명되어 매우 짧은 기간 근무했다. 이는 해방 직전 그의 마지막 경찰직이었다.

1951

[경기도 포천경찰서장 임명]

해방 후 대한민국 경찰 경감으로 경기도 포천경찰서장에 임명되며 한국 경찰 재건에 참여했다.

해방 후 1951년 5월, 김종구는 경감으로서 경기도 포천경찰서장에 임명되어 대한민국 경찰 조직에 합류하며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1952

[경기도 양주경찰서장 임명]

대한민국 경찰 총경으로 승진하여 경기도 양주경찰서장에 임명되었다.

1952년 8월, 김종구는 총경으로 승진하여 경기도 양주경찰서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해방 후에도 높은 직위를 유지하며 한국 경찰의 주요 직책을 맡았다.

1953

[경기도 안성경찰서장으로 전보]

경기도 안성경찰서장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했다.

1953년 8월, 김종구는 경기도 안성경찰서로 옮겨 서장으로 근무를 이어갔다.

[안성경찰서장 퇴직]

경기도 안성경찰서장으로 근무한 지 한 달 만에 퇴직했다.

1953년 9월, 김종구는 경기도 안성경찰서장으로 근무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퇴직하며 대한민국 경찰에서의 경력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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