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 (1486년)
성리학자, 문신, 정치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09:52
조선 중기의 개혁 성리학자이자 문신 김정. 1507년 문과에 장원급제하며 관직에 올랐고, 조광조와 함께 미신 타파, 향약 시행 등 개혁 정치를 주도했다. 폐비 신씨 복위를 주장하다 유배되기도 했으며, 1519년 기묘사화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사후 청백리에 녹선되어 그의 절의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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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6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인 김정이 태어났다. 자는 원충, 호는 충암, 시호는 문간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1500
김정의 아버지인 호조정랑 김효정이 사망했다.
1504
김정이 사마시에 합격하며 학문적 재능을 증명했다.
1507
김정이 문과에 장원 급제하며 조선의 엘리트 관료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정언, 순창 군수 등을 지냈다.
1513
1512년 내직으로 돌아온 후, 1513년 독서당에 들어가 학문 연구에 매진했다.
1514
1514년 (중종 9년) 순창군수에 제수되어 지방관으로 부임했다.
1515
1515년 (중종 10년)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가 사망하자, 담양부사 박상과 함께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신씨를 복위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다. 이는 왕의 노여움을 사 김정은 고향 보은의 함림역으로 유배되었다.
1516
1515년 유배되었던 김정이 1516년 다시 등용되어 부제학, 동부승지, 도승지, 이조참판, 대사헌, 병조판서 등 요직을 역임했다.
1519
[기묘사화로 인한 죽음]
조광조와 함께 추진했던 개혁 정치로 인해 기묘사화에 휘말려 금산으로 유배, 다시 제주도로 이배된 후 사약을 받고 사망하다.
1516년 재등용된 후 조광조와 함께 미신 타파, 향약 시행 등 개혁 정치에 힘썼으나, 1519년 발생한 기묘사화로 인해 몰락했다. 충청도 금산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제주도로 이배되었고, 위리안치된 뒤 사약을 받고 사사당했다.
1576
김정이 사망한 지 55년이 지난 1576년 (선조 9년) 문간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로써 그의 명예가 회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