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 (1914년)
독립운동가, 항일운동가, 정치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09:41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가. 의열단 간부학교를 졸업하고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했다. 조선민족혁명당 창립을 주도했으며 조선의용대에서 복무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전위원과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해방 후에는 삼선개헌 반대, 유신헌법 반대 등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사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본 문서는 위키백과 김재호 (1914년) 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편집되었으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배포됩니다.
1914
전라남도 나주군에서 김재호가 출생하였다.
1933
[의열단 간부학교 입학 및 항일 운동 시작]
중국 난징에서 의열단이 세운 간부학교에 입학하며 항일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학교를 제2기로 졸업하고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했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1933년 경 난징에서 의열단이 세운 간부학교에 입학하면서 항일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학교를 제2기로 졸업한 뒤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였다.
1935
조선민족혁명당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후에는 산시성 일대에서 선무공작에 종사했다.
1940
김구가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전부를 구성했을 때, 15인의 선전위원 중 한 명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때 초대 선전부장은 김규식이 맡았다.
1941
1941년에 조선의용대에 입대하였으며, 조선의용대 제1지대 제1전구 사령부에서 복무했다.
1942
[임시정부 발행부 주임 겸임 및 임시의정원 의원 선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행부 주임을 겸임하고, 임시의정원 전라도 의원으로 선출되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42년부터 발행부 주임도 겸임하였으며, 임시의정원 전라도 의원으로도 선출되었다.
1943
1943년 임시정부 내무부 사회과장을 지냈다.
1944
1944년 임시정부 총무과장 등을 지냈다.
1969
1969년 삼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74
제4공화국에서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민주회복국민선언에 독립유공자를 대표하여 참여한 바 있다.
1976
김재호는 1976년 7월 6일 사망했다.
1980
사망 후인 198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 받았다.
1990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