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조선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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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관료, 일제강점기 친일 조선귀족 + 카테고리

구한말의 관료이자 이조판서 김보현의 아들. 과거에 급제하여 민씨 세력의 신임을 얻어 형조판서, 시종원경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사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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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41

[김영철 출생]

한성부 서부 반송방 미동에서 이조판서 김보현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성부 서부 반송방 미동에서 이조판서를 지낸 김보현의 아들로 태어났다.

1872

[과거 급제와 관직 시작]

과거에 급제한 뒤 병조정랑을 시작으로 관직에 나아가 민씨 세력의 신임을 받아 요직을 역임했다.

1872년 과거에 급제한 뒤 병조정랑을 시작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아버지인 김보현이 명성황후의 여흥 민씨 집권 아래 고위직을 역임하여 그도 민씨 세력의 신임을 받아 요직에 임명되었다.

1882

[아버지 김보현 임오군란으로 피살]

아버지 김보현이 임오군란 당시 분노한 구식 군인들에게 피살당했다. 이는 김영철의 배경과 정치적 맥락에 중요한 사건이다.

아버지인 김보현은 선혜청 당상을 거쳐 경기도 관찰사로 근무하다가 1882년 임오군란 때 분노한 구식 군인들에게 현직 선혜청 당상 민겸호와 함께 피살되었다.

1886

[주요 판서직 역임]

민씨 세력의 신임을 바탕으로 형조판서를 시작으로 여러 판서 벼슬을 두루 역임했다.

민씨 세력의 신임을 받아 1886년 형조판서를 시작으로 판서 벼슬을 두루 역임했고, 1902년 시종원경이 되었다.

1902

[시종원경 취임]

대한제국 시기 최고 관직 중 하나인 시종원경에 임명되었다.

1902년 시종원경이 되었다.

1910

[기로소 입소]

70세 이상의 퇴임 관료를 위한 기로소에 들어갔다.

1910년 70세 이상의 퇴임 관리를 위한 기로소에 들어갔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과 남작 작위 수여]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자, 일본 정부로부터 합방에 협조한 원로 관료로서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합방에 협조한 원로 관료로서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1923

[김영철 사망]

1923년에 사망하였다.

1923년에 사망하였다.

2002

[친일파 708인 명단에 선정]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아들과 함께 선정되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자신의 작위를 습작 받은 아들 김영수와 함께 선정되었다.

2007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 포함]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포함되어 있다.

2008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등재]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작위를 습작받은 아들 김영수와 함께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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