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조선귀족)
구한말 관료, 일제강점기 친일 조선귀족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08:52
구한말의 관료이자 이조판서 김보현의 아들. 과거에 급제하여 민씨 세력의 신임을 얻어 형조판서, 시종원경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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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
한성부 서부 반송방 미동에서 이조판서를 지낸 김보현의 아들로 태어났다.
1872
1872년 과거에 급제한 뒤 병조정랑을 시작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아버지인 김보현이 명성황후의 여흥 민씨 집권 아래 고위직을 역임하여 그도 민씨 세력의 신임을 받아 요직에 임명되었다.
1882
[아버지 김보현 임오군란으로 피살]
아버지 김보현이 임오군란 당시 분노한 구식 군인들에게 피살당했다. 이는 김영철의 배경과 정치적 맥락에 중요한 사건이다.
아버지인 김보현은 선혜청 당상을 거쳐 경기도 관찰사로 근무하다가 1882년 임오군란 때 분노한 구식 군인들에게 현직 선혜청 당상 민겸호와 함께 피살되었다.
1886
민씨 세력의 신임을 받아 1886년 형조판서를 시작으로 판서 벼슬을 두루 역임했고, 1902년 시종원경이 되었다.
1902
1902년 시종원경이 되었다.
1910
1910년 70세 이상의 퇴임 관리를 위한 기로소에 들어갔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합방에 협조한 원로 관료로서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1923
1923년에 사망하였다.
2002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자신의 작위를 습작 받은 아들 김영수와 함께 선정되었다.
2007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포함되어 있다.
2008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자신의 작위를 습작 받은 아들 김영수와 함께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