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 (신라)

인물, 왕족, 씨족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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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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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은 신라 경순왕과 고려 태조의 딸인 낙랑공주 왕씨의 아들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고려 시대에 언양군에 봉해졌다고 전해진다. 그의 존재는 1784년 발견된 《김은열 묘지명》에 주로 의존하나, 이 묘지명은 사료적 신빙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1981년 언양 김씨 족보에서 시조로 소원(遡源)되었다. 신라 봉사손과의 연관성 및 김수(金壽)와의 관계 또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역사적 고증에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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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7

[언양 김씨 《정해보》 간행 및 시조 기록]

언양 김씨의 족보인 《정해보》가 간행되었으며, 이 족보에는 고려 시대 신호위 별장 동정 김수(金壽)를 시조로 기록하고 있다. 김수는 거란군 격퇴 등의 공을 세워 언양군에 봉해졌다고 설명되어, 당시에는 김수가 언양 김씨의 시조로 인정받고 있었다.

1767년에 간행된 언양 김씨 《정해보》에 따르면, 시조는 고려조 신호위 별장 동정 김수로 되어 있었다. 그의 증손인 판이부사 김취려가 거란군의 침입을 격퇴하고 한순 다지 등의 반란을 평정하는 공을 세워 수태위중서시랑평장사판병부사에 이르고 언양군에 봉해졌다고 기록되어, 사실상 김수가 언양 김씨의 시조로 인정받고 있었다.

1784

[《김은열 묘지명》 발견 및 김선 등장]

정조 8년에 개성의 한 산기슭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에 김선이 신라 경순왕의 7번째 아들로 처음 등장한다. 이 묘지명은 김선에 대한 유일한 초기 기록이지만, 배위 및 생애 등 상세 정보가 누락되어 완전하지 않으며 사료적 신빙성이 의심받고 있다.

1784년(정조 8) 개성 어느 산기슭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에 김선이 경순왕 7자라며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김선은 《김은열 묘지명》 이외 『고려사』 등의 문헌이나 그 어떤 금석문 자료에도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 실재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또한 묘지명 형태도 배위 및 생애 등이 누락되어 있고, 단지 형제 서차만 기술되어 있을 뿐 완전하지 않아 사료로서의 신빙성에 의심을 받고 있다. 이후 경주 김씨 일문 족보류에 등재되기 시작하였으나, 족보에 옮기는 과정에서 개명 및 작호 등 가필이 심하게 이루어져 현재 이러한 문헌들은 사료로서의 신빙성에 의심을 받고 있다.

1981

[언양 김씨, 김선을 시조로 소원]

언양 김씨 신유보가 편찬되면서, 선계(先系)를 김선-김진-김정보-김경숙-김수로 새롭게 정립하고, 김선(金鐥)을 언양 김씨의 시조로 소원(遡源)시키는 결정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김선은 언양 김씨의 공식적인 시조로 인정받게 되었다.

1981년 언양 김씨 신유보가 발행될 때, 선계를 김선-김진-김정보-김경숙-김수(金鐥-金進-金精寶-金鏡淑-金壽)로 새롭게 정립하고, 김선(金鐥)을 언양 김씨의 시조로 소원(遡源,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감)시켰다. 이는 이전에 김수를 시조로 삼았던 것과 대비되는 중요한 계보 변화로, 김선은 언양 김씨의 공식적인 시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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