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대장경, 불교 경전, 문화유산, 국보, 세계기록유산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05:37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 시대 몽골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16년간 조판된 불교 경전 목판입니다. 현존하는 세계 대장경 중 가장 오래되고 내용이 완벽하며, 총 81,352매의 방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1962년 대한민국 국보,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며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경판을 보관하는 해인사 장경판전 또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일반에게도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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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
거란의 침입에 맞서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고려 현종 때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서 조판을 시작하여 문종 때 완성된 최초의 대장경이 고려 고종 19년(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 소실되고, 일부만이 일본에 전해졌다.
초판 대장경의 소실과 비슷한 시기,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 요나라, 일본에서 수집한 불경들을 바탕으로 편찬했던 1,010부 4,740여 권의 방대한 '속대장경' 역시 몽골의 병화로 인해 거의 대부분 없어지고 일부만 전해지게 되었다.
1236
[몽골 침입에 맞서 팔만대장경 조판 착수]
몽골 침입을 불력으로 막아내고자 고려 고종 23년에 강화도에 장경도감을 설치하고 대대적인 팔만대장경 조판 사업에 착수했다.
계속되는 몽골의 침입에 맞서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고려 고종 23년(1236년) 강화도에 장경도감을 설치하고, 총 16년에 걸쳐 완성될 팔만대장경의 대대적인 조판 사업을 시작했다.
1251
[16년간의 대역사, 팔만대장경 완성]
1236년에 시작된 팔만대장경 조판 사업이 16년 만인 고려 고종 38년에 총 81,137매의 대장경으로 마침내 완성되었다.
1236년(고종 23년) 강화도에서 시작된 팔만대장경 조판 사업이 총 16년의 대장정을 거쳐 고려 고종 38년(1251년)에 마침내 81,137매에 달하는 대장경으로 완성되었다. 이는 현존하는 세계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1962
[해인사 대장경판, 대한민국 국보 지정]
합천 해인사에 보관된 대장경판이 대한민국 국보 제32호 '해인사대장경판'으로 공식 지정되었다.
고려 시대의 귀중한 문화유산인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이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 국보 제32호 '해인사대장경판'으로 지정되어 국가적인 보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1995
[해인사 장경판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95년, 팔만대장경의 경판을 오랜 세월 동안 안전하게 보존해 온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이 그 뛰어난 건축학적, 과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01
동국대학교 역경원이 1965년부터 조계종의 주요 사업으로 추진했던 한글대장경 번역 및 간행 사업이 장장 36년이라는 긴 노력 끝에 2001년에 총 318권으로 마침내 완간되었다. 이는 팔만대장경 완성에 걸린 시간보다 두 배 이상 긴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2007
[팔만대장경,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이 인류의 귀중한 기록 유산으로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이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독보적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2010
[국보 제32호 명칭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으로 변경]
국보 제32호의 명칭이 '해인사대장경판'에서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으로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962년에 대한민국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었던 '해인사대장경판'의 공식 명칭이 2010년 8월 25일 문화재청 고시를 통해 현재의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문화재 명칭의 일관성과 명확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