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백자

도자기, 공예품, 문화재

num_of_likes 0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1:05:20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도자기, 공예품, 문화재
report
Edit

한국 백자는 고려 말 송나라 정요의 영향을 받아 시작되어 조선시대에 전성기를 맞음. 고려 시대에는 청자에 밀렸으나 독자적인 양식으로 발전. 조선 시대에는 명나라 백자와 흰색 숭상 풍조에 따라 꾸준히 발전. 임진왜란으로 일본 백자의 모태가 됨. 소박하고 정적인 매력을 지닌 한국만의 특색을 가짐. 청화백자는 조선 후기 백자의 주류를 이룸.


본 문서는 위키백과 한국 백자 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편집되었으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배포됩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350

[한국 백자의 시작]

한국 백자가 송나라 정요의 영향을 받아 고려 말기에 시작됨.

한국 백자는 고려 말기에 송나라 정요의 영향을 받아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초기 고려 백자는 고려청자에 압도되어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송과 원나라 백자의 영향을 받으며 점차 독특한 양식을 갖추게 된다.

1400

[조선 백자의 전성기 시작]

조선 시대에 이르러 한국 백자가 전성기를 이루며 발전하기 시작함.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명나라 백자의 영향과 흰 것을 숭상하던 일반적 풍조에 따라 백자는 초기부터 꾸준히 발전하여 전성기를 이루게 되었다. 초기에는 고려에서 시작된 화문자기에 밀려 주류를 이루지 못했으나, 이후 점차 위상을 확보했다.

1433

[백자 제조 기술 완성 추측]

세종실록 지리지에 전국 136곳의 자기소 기록, 백자 기술 완성 추측.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전국에 136군데의 자기소가 있었고, 185군데의 도기소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 시기를 백자 기술이 기술적으로 완성된 시기로 추측하고 있다.

1460

[백자 사용 규제]

세조 때 청료 수입 문제로 백자 사용이 주기(술잔) 외에는 금지됨.

세조 재위 기간 동안 코발트청(청료)의 수입이 어려워지자, 백자는 주기(술잔) 외에는 사용을 금지하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는 당시 백자 생산과 소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465

[한국 최초 청화백자 생산 기록]

순천에서 국산 토청이 채취되어 최초로 청화백자가 생산된 기록이 확인됨.

세조 10년인 1465년에 순천에서 국산 안료인 토청이 채취되었고, 이를 사용하여 청화백자를 만들었다는 최초의 확실한 기록이 남아있다. 이로써 청화백자의 발생 시기는 15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1468

[국산 청료 채취 지시]

예종 때 한국 내 청료 채취를 지시, 국산 안료 사용을 독려함.

예종 때에는 국내에서도 코발트청(청료)을 채취하도록 지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수입에 의존하던 청료 문제를 해결하고 국내 백자 생산을 장려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1592

[임진왜란과 백자의 전파]

임진왜란으로 인해 백자 제조가 위축되었으며, 기술이 일본에 전파되어 일본 백자의 모태가 됨.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란을 겪으면서 조선의 백자 제조는 크게 위축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거나 자발적으로 건너가 백자 기술을 전파했고, 이는 일본 백자 발전의 모태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890

[조선 백자의 근대적 변화]

조선 백자가 화문 자기풍으로 변하며 근대에 이르렀음.

임진왜란 이후 조선 백자는 화문 자기풍으로 변화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근대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