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작가, 소설가, 미국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58:57
미국의 소설가로, 32세에 발표한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청춘의 소외감과 순수함의 상실을 다루며 많은 젊은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샀다. 작품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은둔적인 삶을 살았고, 1965년 이후로는 작품 발표를 중단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문학적 가치와 함께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며 여러 국가에서 금지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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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1919년 1월 1일 미국 뉴욕주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났다. 그는 훗날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1934
샐린저는 1934년경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하여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1936
샐린저는 1936년 뉴욕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다음 해에 중퇴하며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1937
1937년 샐린저는 뉴욕 대학교를 중퇴하게 된다.
1939
1939년, 샐린저는 컬럼비아 대학교 창작문학 과정에 입학하여 작가 휘트 버넷이 가르치는 야간 수업을 수강하며 문학적 역량을 길렀다.
1940
샐린저는 1940년 초,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부터 단편들을 출판하기 시작하며 문학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42
1942년 봄, 컬럼비아 대학교 중퇴 직후 샐린저는 미국 육군 군대에 징병되어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역 중 하나인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가하며 전쟁을 겪었다.
1945
1945년, 샐린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는 것을 직접 목격하며 전쟁의 마지막을 경험했다.
1947
1947년 봄, 샐린저는 미국 육군 하사로 예편하며 군 복무를 마무리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왔다.
1948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출판]
단편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을 《더 뉴요커》에 출판하여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은 그의 후속 작품의 중요한 발상이 되었다.
1948년, 샐린저는 단편 소설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을 권위 있는 잡지 《더 뉴요커》에 출판하였다. 이 작품은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의 이후 작품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51
[《호밀밭의 파수꾼》 출판 및 대중적 성공]
샐린저의 대표작이자 첫 소설인 《호밀밭의 파수꾼》이 출판되어 곧바로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청춘의 소외감과 순수함의 상실을 다루며 많은 젊은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51년 7월 16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첫 장편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출판되었다. 이 소설은 출판 즉시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서술을 통해 청춘기의 소외감과 순수함의 손실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어 특히 젊은 독자들에게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이 책은 한 해 약 25만 부가 판매되는 등 널리 읽히게 된다.
1953
1953년, 샐린저는 단편집 《아홉가지 이야기》를 발표하였다.
1957
[《호밀밭의 파수꾼》의 사회적 영향력 확대]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모든 청소년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이자 냉담한 불만을 표출하는 필수적인 지침서로 자리 잡았다.
이안 해밀턴의 전기 작가에 따르면,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0년대 후반까지 '모든 음침한 청소년들이 사야 하는 책이 되었고, 냉담한 스타일의 불만을 얻을 수 있는 필수적인 매뉴얼이 되었다.' 이는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비교되기도 했다.
1961
1961년, 샐린저는 단편집 《프래니와 주이》를 발표했다.
1963
1963년, 샐린저는 단편집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를 발표했다.
1965
[마지막 작품 발표 및 은둔 시작]
《뉴요커》에 중편소설 《Hapworth 16, 1924》를 실었으나,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출판작이 되었고 이후 모든 작품 발표를 중단했다.
1965년, 샐린저는 《뉴요커》에 중편소설 《Hapworth 16, 1924》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그의 가장 최근 출판된 작품이자 사실상 마지막 공개 작품이 되었고, 이후 그는 대중의 관심에서 완전히 벗어나 은둔적인 삶을 살며 더 이상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1970
[《호밀밭의 파수꾼》 검열 논란]
1970년대에 《호밀밭의 파수꾼》을 가르치던 일부 고등학교 교사들이 해고되거나 사직을 강요당하는 등 작품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었다.
1970년대, 《호밀밭의 파수꾼》을 선정한 미국의 몇몇 고등학교 교사들이 해고를 당하거나 사직을 강요당하는 일이 발생하며 이 소설이 일으킨 사회적 파장이 여전했음을 보여주었다.
1979
[《호밀밭의 파수꾼》 최다 검열 도서 기록]
검열에 대한 연구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이 미국에서 가장 자주 검열된 책인 동시에 공립 고등학교에서 두 번째로 가장 자주 가르치는 책으로 발표되었다.
1979년, 검열에 대한 한 연구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이 "미국에서 가장 자주 검열된 책인 동시에 공립 고등학교에서 두 번째로 가장 자주 가르치는 미심쩍은 책"으로 언급되며 그 독특한 지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존 스테인백의 <생쥐와 인간> 다음으로)
1980
[모든 인터뷰 중단]
1965년 이후 작품 활동을 중단한 데 이어 1980년 이후로는 언론과의 인터뷰도 일절 가지지 않는 완전한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샐린저는 1965년 이후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고, 1980년 이후로는 인터뷰도 가지지 않으며 대중과의 모든 접촉을 끊고 철저한 은둔 생활을 유지했다.
[존 레논 총살 사건과 《호밀밭의 파수꾼》]
존 레논을 총살한 마크 데이비드 채프만이 《호밀밭의 파수꾼》에 빠져 있었고, 홀든 콜필드와 관련된 망상이 범행 동기 중 하나였음이 드러났다.
1980년 12월, 싱어송라이터 존 레논을 총살한 마크 데이비드 채프만은 《호밀밭의 파수꾼》에 깊이 빠져 있었으며, 그의 주된 범행 동기 중 하나가 레논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불만과 홀든 콜필드와 관련된 망상이었음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2004
[《호밀밭의 파수꾼》 천만 부 판매 기록]
2004년 기준, 《호밀밭의 파수꾼》이 매년 약 25만 부 이상 팔리고 전 세계적으로 1000만 권 이상 판매되었다고 기록되며 스테디셀러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2004년 현재, 《호밀밭의 파수꾼》은 매년 약 25만 권 이상 팔리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1000만 권 이상 팔린다"고 기록되어 그야말로 시대를 초월한 베스트셀러임을 입증하였다.
2010
2010년 1월 27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미국 뉴햄프셔주 코니시에 있는 자택에서 91세의 나이로 노환으로 사망하며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