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
철학자, 교육자, 사회학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8- 14:24:16
오스트리아 출생의 영국 철학자 칼 포퍼.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철학자로, 고전적 귀납법을 비판하고 '반증 가능성' 개념을 제시했다. '열린 사회' 이론으로 전체주의를 비판하며, 합리적 비판과 토론을 통한 지식의 성장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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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
칼 라이문트 포퍼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빈에서 유대 혈통의 개신교 중산층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부모로부터 루터교 신앙을 물려받았으나, 생애 내내 인종이나 혈통에 의해 사람을 분류하는 것을 반대했으며 자신을 유대인으로 분류하는 것을 거부했다. 나치즘과 시오니즘 모두 반대했다.
1919
[마르크스주의를 거쳐 사회자유주의 지지]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어 학생 사회주의 협회에 가입하고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당원이 되었으나, 곧 회의를 품고 탈당하여 사회자유주의를 지지하게 되었다.
포퍼는 1919년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어 학생 사회주의 협회에 가입하고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당원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유물론에 회의를 품게 되어 탈당하였으며 이후 사회자유주의를 지지하였다.
1928
포퍼는 1928년에 심리학 박사 학위를 획득하였다.
1934
[첫 주요 저서 《과학적 발견의 논리》 출간]
그의 첫 주요 저서인 《과학적 발견의 논리》를 출간하여 심리주의, 귀납론, 논리실증주의 등 기존의 철학적 관점에 대한 비판을 서술했다.
포퍼는 1934년 첫 저서 《과학적 발견의 논리》를 출간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심리주의, 자연주의, 귀납론, 논리실증주의 등에 대한 자신의 비판을 서술하였다.
1937
[나치를 피해 뉴질랜드로 이민]
나치의 준동과 오스트리아 병합으로 인해 뉴질랜드로 이민하여 캔터베리 대학교에서 철학 강사로 활동했다.
1937년 나치의 준동과 오스트리아 병합으로 인해 포퍼는 뉴질랜드로 이민하여 캔터베리 대학교의 철학 강사가 되었다.
1945
[대표작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출판]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대표작인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출판하여 큰 영향을 주었다.
1945년에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을 출판하여 전체주의를 비판했다.
1946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LSE) 강의 시작]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에서 논리학 및 과학적 방법론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자 1946년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대학교의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에서 논리학 및 과학적 방법론을 강의하였다.
1949
1949년 교수에 임용되었다.
1965
1965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 서임.
1976
1976년 런던 왕립 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82
[영국 컴패니언 오브 아너 서훈]
영국 컴패니언 오브 아너(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 CH) 서훈을 받으며 국가적 영예를 얻었다.
1982년 컴패니언 오브 아너(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 CH) 서훈.
1994
1994년 9월 17일, 잉글랜드 런던에서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