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
승려, 역사가, 작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5- 10:57:02
일연은 고려 충렬왕 때의 승려이자 학자로, 속명은 전견명입니다. 보각국사로 추대된 그는 한국 고대 역사와 문화를 집대성한 『삼국유사』를 저술하여 후대에 귀중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불교 관련 서적 80여 권을 저술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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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
일연은 1206년 7월 18일(음력 6월 11일) 고려 경산(현재 경상북도 경산시) 장산에서 속명 전견명으로 태어났으며, 훗날 '일연'이라는 자를 사용하게 됩니다.
1208
일연은 잠시 경주 옥산에서 유아기를 보냈으나, 1년 후인 1209년에 직계 일가족과 함께 고향인 경산 장산으로 돌아와 성장했습니다.
1214
일연은 1214년, 9세의 나이에 해양(海陽) 무량사(無量寺)에 들어가 학문에 정진하기 시작했습니다.
1219
일연은 1219년에 대웅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승려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1227
1227년, 일연은 승려들이 치르는 과거 시험인 승과에 합격하며 공식적인 승려로서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1246
1246년에 일연은 선사(禪師)의 직위에 올라, 불교 계율과 수행에 대한 깊은 이해를 인정받았습니다.
1249
1249년, 일연은 남해 정림사에서 불도 수행에 힘쓰는 한편, 남해의 분사 대장도감에서 팔만대장경의 조판 사업에 참여하며 불교 문화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259
1259년, 일연은 승려 최고직인 대선사(大禪師)에 오르며 불교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졌습니다.
1261
1261년(원종 2년), 일연은 국왕의 부름으로 개경에 올라가 선월사(禪月寺)의 주지(住持)가 되었으며, 이로써 목우화상(牧牛和尙)의 법통을 정식으로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1268
[대장경 낙성회 개최]
왕명을 받아 운해사에서 100여 명의 고승들과 대장경 낙성회를 개최하고 그 맹주가 되어 불교계의 큰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1268년(원종 9년), 일연은 왕의 뜻을 받아 운해사(雲海寺)에서 선교(禪敎)의 고승 1백여 명을 모아 대장경 낙성회(大藏經落成會)를 성대하게 개최하고 그 중심 인물인 맹주가 되어 불교계의 큰 영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277
1277년(충렬왕 3년), 일연은 충렬왕의 명으로 운문사(雲門寺)의 주지(住持)에 취임하며 불교계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1281
1281년경, 일연은 충렬왕에게 불법의 가르침을 강조하였고, 이 시기에 한국 고대 역사를 집대성한 『삼국유사』의 저술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1283
1283년, 일연은 충렬왕에 의해 국존(國尊)으로 추대되고 '원경충조'라는 호를 받으며 최고의 영예를 얻었습니다. 같은 해,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효심을 보였습니다.
1284
1284년, 일연은 조정으로부터 토지 백경(百頃)을 하사받아 경상도 군위의 인각사(麟角寺)를 중건하는 불사를 일으켰습니다. 또한 궁궐에 들어가 구산 문도회(九山門都會)를 개최하여 불교계의 화합과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1289
일연은 1289년 7월 26일(음력 7월 8일)에 경상북도 군위의 인각사(麟角寺)에서 향년 83세로 입적했습니다. 그의 장례는 관후서사 전척이 주관했습니다.